일상을 짓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먹지 않은 그릇들이 싱크대 안에서 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까지 수북이 쌓여 있다. 내가 입지 않았던 옷들이 빨래 바구니 속에 수북하다. 내가 마시지 않은 컵들이 식탁 위에 어질러져 있고 내가 먹지 않은 과자 봉지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내가 쓰지 않은 숟가락 젓가락들은 싱크대 안에, 내가 마시지 않은 빈 우유갑들은 싱크대 옆에, 과일껍질들은 음식물 쓰레기 통 안에 가득하다. 내가 쓰지 않은 수건들이 식탁 의자 위에 걸려 있다.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쌓여 있다. 내가 쓰지 않는 폼클렌저와 바디용품, 샴푸, 린스가 화장실에 즐비하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찍 잠이 드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또 가만히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과자봉지, 그릇들을 보면 그들의 자취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엄마 손이 필요해서 엄마를 수없이 불러대던 아기 때가 엊그제 같다. 그 조그맣던 아이들이 혼자 그 모든 것을 엄마 없이 해낼 수 있는 때가 되었다니 감개 무량하다. 엄마가 해 주지 않으면 할 수 없던 일들을 혼자서 해 낼 수 있는 나이. 그러나 아직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치울 수 없는 이 어정쩡한 나이의 사춘기 녀석들.
어른이 되는 첫걸음을 걷는 아이들. 처음엔 뭐든 어설프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남을 사랑하는 것도, 자신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도. 남을 배려하는 것도. 이런저런 일들을 완벽히 해내기에 어른이 되어도 미숙하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의 흔적까지 말끔히 치울 때가 되면 아이들은 내 곁을 떠난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아이들의 흔적까지 사랑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 아침은 이 모든 흔적들이 말끔히 사라지는 그날을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