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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꾸신발 Dec 02. 2022

01. 의사도 우울증에 걸리나요?

비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투병기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감기만큼 흔하게 찾아올 수 있다는 표현이지만, 감기처럼 며칠 앓다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x년에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의대-수련의-전공의를 거치는, 장장 11년 과정의 장대한 마침표였다. 11년간의 목표는 오로지 '전문의 자격증'이라고 적힌 한 장의 종이였다. 그 이후의 삶은 행복만이 가득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힘든 시간들도 자주 있었고, 어떨 때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으로 극복해 왔었다. 우울증이 문을 두드린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우울증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사건은 전문의가 되고 몇 년 뒤에 찾아왔다. 당시에는 소위 말하는 '블랙'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처리하기 벅찬 엄청난 업무를 견디다 보니 불안, 불면증이 찾아왔다. 출근하기 전에는 미쳐버릴 것 같고, 퇴근할 때는 녹초가 되었고,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일 때문에 불안했다. 나 말고 누군가는 옆에서 묵묵히 그 일을 견디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전문의가 되면 모든 고생길이 끝나고 행복한 인생만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배신당한 기분. 하지만 다행히 과로사하지 않고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일을 그만두고 임신 중인 와이프와 프랑스로 떠났다. 2주간의 여행, 2주간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직장은 이전보다 일이 적었고,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지만 훨씬 덜했다.


 겨울에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가 시작되었다. 육아는, 해 본 사람들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과는 별개로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나의 자유시간은 빠르게 사라졌고,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그것을 풀어줄 적절한 방법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우울증은 나의 약해진 마음의 빈틈을 비집고 빠르게 들어왔다.


 이젠 시간이 좀 지나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 느낀 증상은 '우울감'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흥미의 감소'와 '집중력 결여'가 찾아왔다. 하루 종일 미드 몰아보기를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드라마 한 화를 집중해서 보지를 못했다. 아니 드라마나 영화 보는 일 자체에 흥미가 떨어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나는 또 한 번 직장을 옮겼다. 벌써 1년 사이에 세 번째 직장. 그때서야 나는 나의 마음이 정상이 아님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식은땀도 자주 흘렸다. 두 번째 직장을 자의로 그만둔 것이 아니어서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돈은 벌어야 하니까 세 번째 직장을 구했지만 일을 해 나갈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나 스스로 책을 찾아보면서 스스로 내린 진단은 '적응 장애'.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정도가 약하고, 더 중요한 차이점은 증상을 유발한 원인이 매우 명확하다는 점(나의 경우는 육아와 잦은 이직), 원인이 해결되는 경우 빠르게 증상이 호전된다는 점이었다. 당시의 우울감은 나을 온전히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고 일하면서 약간의 지장이 생기는 정도였다. 친한 정신과 전문의 형의 조언으로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경도의 우울감을 동반한 적응장애에서도 약물치료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항 우울제 '렉사프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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