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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꾸신발 Dec 06. 2022

04. 우울감 vs. 우울증

비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투병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깨닫는 것을 전문 용어로는 insight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자아존중감, 사회경제적인 상태, 주변의 도움, 정신건강의학과의 접근성 등이 영향을 끼친다.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 환자의 1/3 정도는 스스로의 상태애 대한 적절하지 못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15% 정도는 치료 과정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울증에 관해 올바르지 못한 인식은 결국 치료를 지연시키고, 병의 경과를 길게, 그리고 나쁘게 만든다.


아래의 표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이다. 전문가의 분류가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음을 참고 바란다.



우울감과 우울증의 가장 주요한 차이는 증상의 지속 기간과 내용 및 심각성이다. 우울감은 대부분 특별한 원인(예컨대 이별/실직/사회생활에서의 스트레스 등)에 의해 촉발되며 경과가 짧고, 원인이 해소되면 우울감도 자연히 완화된다. 이러한 경우에서 심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정신과학에서는 따로 '적응장애'라는 카테고리도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울증은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한다. 나의 경우도 처음 발병 시 스트레스를 받는 이벤트가 있기는 했지만 생에 처음 겪어본 일도 아니었고, 상황이 해소되었지만 증상이 지속되었다. 기간은 2주 이상이라고 적었지만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흔하다.


우울증 환자들이 겪는 증상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하루 종일 우울하고, 본인의 의지로 이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무기력이 심해지면 아침에 일어나는 일조차 버겁고, 침대를 벗어나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행위도 즐겁지가 않고, 정신적으로/육체적으로 매우 피로하다. 심한 경우에는 사고력/집중력이 감소되어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워진다. 스스로는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대로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자살 사고는 우울증 환자에서 겪는 가장 극단적인 증상으로 끝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희망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음밖에는 길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우울증 증상을 드러내지 않는 가면성 우울증 환자의 경우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이라 하더라도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가족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필요하지 않으면 나의 증상을 숨기는 편이다. 음지에 있는 사람을 양지로 끌어내는 방법은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한 명이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우울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치료를 받는다면 호전이 될 수 있다. 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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