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D-1일의 기록

by 게으르니스트

아들이 만 네 살하고도 2개월 차가 되던 2022년 1월, 회사에 육아휴직을 통보했다.


업무 미팅이 끝날 즈음 약간 뜸을 들이다가 툭 내려놓듯 '저 육아휴직 들어가려고 합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팀장님은 신기하게도 '정말요 ?'라는 반문 한 번 말고는, 특별히 격한 반대나 나의 결정을 되돌리려는 시도 없이 순순히 육아휴직에 동의해 주셨다.


그것이 그동안 회사에 나름의 기여를 했기에 잠깐 쉬어도 괜찮다는 뜻인지, 길지도 짧지도 않게 전략적(?)으로 선택한 9개월이라는 애매한 육아휴직 기간 덕택이었는지, 아니면 이제 나이 먹고 속이 곯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잉여 인력이 되었다는 뜻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팀원들도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한 사람 분의 업무공백에 대한 약간의 걱정 외에는 다들 육아휴직을 축하해 주며 하나 둘 내가 하던 업무를 받아갔다. 나의 육아휴직은 팀 내에서 그렇게 가볍게 기정사실로 안착했다.


팀원들이 준 휴직 축하(?) 편지. 함께 큰 선물도 주었지만 이 편지가 더 고마웠다. 물론 적당히 놀고 얼른 다시 와서 일하라는 뜻이겠지...


물론 쉽사리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남편들의 육아휴직이 저출산 해결책입니다'라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수시로 들려오는 나라에서, 보수적이기로는 업계 상위를 항상 고수하는 회사 문화를 무릅쓰고 이렇게 쉽게 육아휴직을 가도 되는 것인지 약간은 얼떨떨했다. 누군가 한 명쯤은 '미쳤냐 ?'라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동안 하도 육아휴직 가겠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의 일시적 부재를 만류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뒷맛이 약간 개운치 않은 것과 아주 깔끔한 것이 절반씩 섞인 느낌이었는데, 어차피 지른 것이니 길게 고민하지 않고 깔끔한 뒷맛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사뿐한 승인절차를 닮았던 걸까, 한 달 남짓 정도 되는 인수인계 기간 동안 시간은 부지불식간에 훌렁훌렁 지나가 어느덧 육아휴직 개시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주섬주섬 남은 짐을 꾸리고, 팀 내외의 동료들과 잠시 동안의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점심 때가 조금 지난 무렵 사무실을 나섰다. 의외로 무거운 짐짝은 어깨가 빠지도록 힘들었지만, 발걸음 하나는 가벼웠다. '회사일의 모든 시름과 번뇌는 여기 회사 로비에 잠시 떨궈놓자', 그 생각 하나로 성큼성큼 회사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유래 없이 화창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발걸음은 가벼웠으리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는 드라마의 대사라도 슬쩍 읆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짤을 꼭 한 번 쓰고 싶었다. 몇 년 전 이직하던 때는 이게 없었거든. 근데 다시 돌아와야 하는 육아휴직이라는 게 함정. Source: moccona.co.kr


일단 그렇게 몸이 사무실을 떠나니 회사일은 빠르게 일상에서 사라져갔다. 내가 되려 걱정이 되어서 회사 메일을 확인하고 몇 차례 업무 가이드를 보냈을 뿐,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할께요 !'라던 팀원들은 두어차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 외에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코로나-19가 일과시간과 집안일을 진작에 경계 없이 섞어버린 터.

혹시나 하는 전염에 대한 걱정으로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지 않은 아들이 서재로 뛰쳐들어오는 것을 처리(?)하며 오전의 화상회의를 마무리한 후, 후다닥 점심을 차려 아들과 함께 먹는 재택근무 상황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역으로, 아들 또한 아빠가 해준 볶음밥과 주먹밥 점심, 일하던 중간에 잠깐 나와 품 안에 안아주는 아빠의 간지럽고 덥수룩한 수염이 더 이상 생경한 일상이 아닌 듯 했다.


사실 그랬다. 굳이 육아휴직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무럭무럭 자라는 아들의 유아기와 직장 생활을 적절히 섞어가며 지금의 인생을 살아 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팬더믹이라는 재난이 사람들의 사회적 유대보다는 거리두기를 강요했기에 가능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코로나 시국을 계기로 세상은 그렇게 변했고,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이 사회는 그것에 그렇게 적응했으며, 앞으로 그 변화를 되돌이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를 잠시 떠나 육아휴직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일명 '허리'라는 말을 들어가며 제일 바쁘게 일할 나이라는 사십대 초반이다. 승진도 했고 회사 내외부에서 상도 받으면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있으니, 이제 커리어의 다음 단계를 고민하며 일에 매진해야 하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슬슬 은퇴 후를 걱정하며, 많지는 않지만 잔고를 쪼개어 노후를 대비한 투자를 해야하고, 그 와중에 무럭무럭 자라며 카드 사용내역을 잠식해 들어오는 아들의 사교육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엄청난 거금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술한 거추장스러운 문제들을 해결해 줄 월급의 부재에 대한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Source: Pexels


그렇게 육아휴직을 시작하기로,

그리고 그 시간의 일상과 생각을 남겨보기로 했다.


화려한 학위와 함께 육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신 소아정신과 박사님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육아에 대한 조언을 쏟아내는 요즘, 평범한 회사원 아빠인 나의 육아휴직 기록은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새로운 시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보냈는지 가능한 자세하게 기록해 보기로 했다.


물론 이 기록이 9개월의 육아휴직이라는 시간의 기억과 경험들을 내 안에 온전히 아로새길 수 있는 행위로써 스스로 가치가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얼굴 모를 어떤 부모들에게, 그리고 좀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나의 글을 발견할지도 모를 내 아들에게, 아직도 '아빠의 육아휴직'이라는 말을 어색하게 받아들이는 이 나라¹에서 그냥 '보통 아빠'인 내가 '9개월의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꼭 전하고 싶다.


전문가들의 솔루션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육아 예능 프로의 '판타지'가 아니라 '다른 집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라는 원초적이지만 당연한 궁금증으로부터 좀 더 좋은 육아의 길을 찾고자 하는 부모들이 있다면, '평범한,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회사원 아빠'가 육아휴직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건너며 만나는 고민거리와 기쁨거리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이 과정이 그들에게 새로운 작은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조금 더 자라있을 '미래의 내 아들'에게는, 다른 누구도 나만큼 진심으로 알려주지는 못할 '아빠됨'를 가르쳐 줄 꽤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만큼은 어떤 육아 전문가와 화려한 자료가 대신할 수 없는, 육아휴직을 한 나 같은 아빠 만이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 대전 신세계 넥스퍼리움


만약 육아휴직을 하신다면, 꼭 기록을 남겨 보세요. 육아휴직은 싱글로 살 때, 부부 둘만 살 때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입니다. 지나가면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니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충분합니다. 앨범처럼요. 일기도 좋고 메모도 좋습니다. 사진도 동영상도 좋습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하셔도 괜찮습니다.

만약 그것을 다른 부모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좋은 육아 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채택하던 채택하지 않던 말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습니다. 행복한 기분을 풀어낸 기록은 가족들과 아이들에게 작은 쪽지 편지로도 쓸 수 있겠지요. 부정적인 기분이 든다면 그 이유를 자세히 풀어 써보세요. 스트레스도 풀 수 있고, 부정적 기분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동글이에게,

네가 언제 아빠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그 때도 육아휴직이라는 게 있을지 모르지만, 너의 아이와 함께 가능한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꼭 갖기를 바란다.

너와 함께 공원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박물관에서 신기한 체험을 함께 하며 아빠는 무척 행복했단다. 회사에서 승진했을 때보다, 어딘가에서 상금을 받았을 때보다 더 행복했단다. 그런 행복들은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이유 없이 마냥 행복했거든. 너의 웃는 눈, 너의 오물대는 입, 그런 것들이 그냥 죽을 때까지 마냥 바라보고 싶을만큼 예뻤단다.

너도 아마 그렇겠지만, 너의 아이도 너의 손을 덜 타고 싶어할 때가 분명히 올거야. 아빠도 그랬거든. 세상은 그걸 사춘기라고 불러. 물론 너의 아이는 철이 들면 다시 너에게 돌아오긴 하겠지만, 네 손을 벗어나고 싶어할 그 때는 아마 조금 아쉬울 지도 몰라. 그 때 네가 너의 아이를 믿고 계속 사랑하게 해 줄 힘이 필요하면, 그 기억들을 다시 불러내 보려무나. 아빠도 그렇게 해 볼 생각이거든. 그러면 아마 잘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1) 참고: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 아빠 100명 중 2명만 쓴다 (동아일보 /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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