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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Nov 18. 2016

#48까미노데산티아고-부대찌개를 끓이자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오스피탈 데 라 콘데사

처음 까미노를 시작했을 때, 나는 살아남기 위해 생존 스페인어를 익힐 예정이었다. 

생장에서의 첫 날엔 주변 외국인들은 죄다 불어로만 이야기했고 이틀째는 불어와 스페인어가 반반쯤 섞이더니 그 다음날부터 사람들은 모두 스페인어로만 이야기했다. 아마도 이건 비수기에 걸었던 것과, 우연히 내가 만난 사람들이 그랬던 영향이 큰듯 했다. 그러나 처음 며칠간 얼굴만 익히고 지내던(서로 대화를 하려했으나 언어장벽으로 실패했다) 프랑스인 할아버지 그룹이 다른 사람을 통해 '끝까지 걸으려면 스페인어든 프랑스어든 해야겠다'라고 충고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달을 혼자 살아남으려면 스페인어는 좀 배워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알베르게에서 주운 스페인어 회화책을 들고 다니며 읽고나면 기억에 남지않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곤 했다. 그러다 A와 J를 만나고 함께 걷게 되면서 둘 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알았고, 특히 J가 길을 물어보고 음식 주문을 해주고 사람들과 농담하고 그 농담까지 번역해줘 말을 배우려는 의지는 곧 사라졌다. 


그러다 부르고스에서 J와 헤어지게 되고는 다시 스페인어를 배워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J만큼은 못해도 A 역시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고, J만큼 열심히 도와주진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해’의 눈빛으로 쳐다보면 귀찮아하면서도 도와주기에 다시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의지는 사그라 들었다.   


그러던 중 내 다리가 아파오고, A는 나를 귀찮아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정말 헤어지겠구나 싶자 이젠 정말 스페인어를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거창하게 배워 그 사람들과 농담을 하거나 십년지기처럼 우정을 쌓겠다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그 곳은 어떻게 가는지, 이 음식은 뭔지, 이건 얼만지 묻고 답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 때부터 A에게 묻기 시작했다. 맥주는 스페인어로 무엇인지,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음식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A가 사람들에게 길을 묻거나 가격을 물을 때면 뭐라고 하는지 귀 기울여 듣곤 했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면 어떤 말이 들리는지를 듣곤 했었다. 가끔 들리는 아는 단어들로 문장의 내용을 유추해냈지만 워낙 기초가 없는 상태라 그 수준은 형편없었다. 물건 가격이 40(콰렌타)센트라 하는 것을 4(콰트로)로 듣고 '엇 이거 좀 비싼데' 하면서 4유로를 낸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그런 일이 겪으며 할 줄 아는 단어와 문장은 하나씩 늘어가곤 했다. 


오늘은 그 며칠간의 노력 끝에 습득한 생존 스페인어를 제대로 써먹어봤던 이야기다. 

이 날의 동행은 전날 같이 걸었던 신학생과 자주 만나던 한국인무리 중 두명인 J언니와 L언니, S씨였다. 그동안 얼굴은 서로 알고 있었고 같이 밥을 먹거나 바에 가거나 한 일은 꽤 있었지만 함께 걷는 것은 이틀째였다. 최근 내가 알고있는 한국인들의 얼굴은 늘었다. 부르고스에서 하루걸러 한 번 꼴로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고,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봤던 한국인무리 다섯명에, 레온에서부터 길을 시작했다는 신학생과, 역시 레온에서부터 길을 시작한 S씨까지. 그 외에도 다른 얼굴들이 보이긴 했지만 이들과 걷는 속도가 비슷했는지 이 사람들과는 계속해서 만나고 그러다보니 같이 걷는 날도 생겼다. 처음 내가 A를 매일같이 만나고 밥도 같이 먹고 하다 어느 순간 함께 걷게 된 것처럼. 


함께 걷게되면 밥을 먹거나 알베르게에서 볼 때와는 또다른 얘기를 하게 된다.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며, 길을 걸으며 하는 이야기들은 그 나름의 결을 가지고 있어, 함께한 시간의 종류에 따라 다른 관계의 끈으로 엮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는 꽤 많이 어울리고 웬만한 얘기는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함께 걸으니 의외로 할 얘기가 많았다. 함께 걷다보니 그 전의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그동안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자꾸 궁금해졌다. 그렇게 각자의 기초호구조사와 간단한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렇게 걷다 오후가 되자 다들 지쳐갔다. 마치도 그 전에 A와 J와 걸으면서 했던 것처럼 몸이 지치면 이 날 알베르게에 들어가 할 일을 만들어내곤 한다. 알베르게에 들어가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야지,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 먹어야지, 와 같은 사소하지만 그날의 전부같은 이야기들. 이날은 먹고싶은 음식에 대한 얘기를 하다 누군가 한식이 먹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아마도 나는 입맛만은 세계인인지, 거의 미맹에 가깝기 때문인지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다. 어딜가서 뭘 줘도 (가끔 배탈은 났지만)잘 먹었다. 그리고 여행을 나가면 시각 청각의 자극이 식욕을 잊게 하는지 그냥 배만 채우면 됐지 뭔가가 간절히 먹고싶다거나 뭔가를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번엔 장기여행을 나온다며 비상용 튜브고추장과 닭갈비 양념도 챙겨나왔지만 두달이 다 돼가는 그 때까지 한식은 그리 그립지 않았다. 짐 부피를 줄이겠다며 고추장으로 밥을 비벼먹기도 했지만 그저 먹을 것이라는 의미외에 그닥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에게 고추장을 나눠주고 닭갈비 양념을 나눠주고 하면서 다니고 있었는데 이들은, 특히 남자들은, 달랐다. 한식이 너무 먹고싶단다. 

J언니가 오늘 요리사가 되겠다며 원하는 한식을 해주겠다고 먹고싶은 것을 말하라는데 굳이 생각나는게 없었다. 있다면 삼각김밥정도? 이게 한식이긴 한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요리가능영역과 먹고싶은 영역을 끄집어내 한참 고민하다 부대찌개를 떠올렸다. 이 나라는 싼 햄이 풍부하니 가지고 있는고추장과 합쳐진다면 부대찌개도 가능하다. 그닥 간절하게 그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부대찌개의 말이 나오자 갑자기 국물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의 오늘 목표는 부대찌개.  

열심히 걸어 저녁 때는 부대찌개를 끓여먹겠다는 목표 하나로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 오세브레이오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을 들고있는 S씨의 정보로는 파울로 코엘료가 영감을 받아 책을 썼다는 마을로 S씨가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했다. 산속의 마을은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이 마을의 성당에는 최초로 까미노에 노란 화살표를 도입했다는 사제를 기리는 동상도 상징물도 있다.  

전체적으로 예쁘고 좋았지만, 이 마을엔 슈퍼가 없었다. 그리고 신학생의 가이드북에 나와있기론 이 알베르게엔 부엌이 없다고 했다.   

산이라 곧 날이 저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한참을 부대찌개와 파울로 코엘료 사이에서 갈등하던 S씨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우리와 헤어졌다. 

다음 마을인 오스피탈 데 라 콘데사 까지는 5.5Km. 

지칠 때마다 부대찌개를 주문처럼 외우며 걷고 있는데 생장에서 나눠준 종이엔 적혀있지 않은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알베르게도 없고 작은 바와 몇 채 안 되는 인가가 있는 마을을 지나치며 뭔가 모를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이 다음 마을도 이정도의 규모라 알베르게에 부엌은 있지만 가게가 없으면 어쩌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는지 들르는 마을마다 슈퍼가 있는지를 물어봐야겠다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차를 타고 있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만약 과거의 나였다면 A에게 길을 물어보라고 시켰겠지만, 혼자 있었더라면 쭈뼛거리며 말을 걸지 못하고 그저 그들을 보냈겠지만 지금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수준의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걸었는데 도착한 알베르게 근처에 가게가 없어 찌개를 먹지 못한다면 정말이지 슬플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다가가, 그것도 스페인어 문장으로 질문했다.  

“Donde esta supermercado?” (돈데 에스따 수퍼메르카도?) 

젊은이들이,  

내가 뭐라고 말하는지를 알아들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말을 배우는 아기들이 이런 기분이려나. 

 

젊은이들은 아주 친절하게 우리 바로 뒤에 가게가 있다고 일러주고 떠났다. 들어가보니 시골의 구멍가게처럼 작은 곳이었지만 우리가 찾는 쌀과 치즈, 햄과 같은 재료들은 다 구비되어 있었다. 장을 보고 나와 모두들 날개라도 돋힌 듯 기뻐 걸어갔다. 처음으로 거둔 스페인어 질문의 성공에 기뻐하며, ‘돈데 에스따’는 마법의 주문이라며 극찬하며. 


도착한 다음 마을엔 역시나 우리의 예상대로 가게가 없었다. 때맞춰 나와줬던 우리의 선견지명에 기분이 좋아져 알베르게에 들어서는데 접수장에 낯익은 이름이 있다. A. 그에게 오늘의 성공을 자랑하겠다고 기뻐하며 올라가 보니 이 친구, 라디에이터를 껴안고 거의 죽어가고 있다. 며칠 못 본 사이 대체 뭔 일이 벌어졌던 걸까.   

정말 기운없는 얼굴로 ‘오늘 요리할 거야?’라고 물어 니가 싫어하는 찌개를 할 거라고 했더니 더 기운이 없어지며 요리를 하거든 밥만 나눠달란다. 자기는 오늘 초딩할 거라며 물 말아서 먹겠단다. (그동안 채소를 싫어하고 매운 것 못 먹는 A에게 내가 친절하게 ‘초딩’과 ‘입맛’이란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주며 너는 초딩입맛이라고 놀려왔었다) 


요리를 준비하러 내려간 부엌은 참 열악했다. 쿡탑과 시설은 갖춰져 있는데 조리기구가 전혀 없었다. 접수직원에게 그릇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창고에서 냄비 한 개와 그릇 몇 개, 스푼, 포크 몇 개를 내주는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쿡탑온도를 중간단계 이상 올려버리면 알베르게 전체의 전기가 내려가 버렸다. 천천히 밥을 짓고 냄비를 다시 비워 찌개를 끓여야 했다. 쾌적하지 못한 환경이지만 오후부터 타올랐던 부대찌개에 대한 의지를 사그라뜨릴 수는 없었다. 그 사이 알베르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요리하는 우리를 보며 냄비가 어디서 났느냐며 물어 접수대에서 빌렸다고 했고, 접수대 직원에게 갔던 그 사람은 쟤네 다 쓴 다음에 저 냄비를 쓰라는 말을 들었고, 그래서 자꾸 우리 뒤에서 요리진행상황을 스캔하고 있었고, 시선이 부담스러워 빨리 끓이려 쿡탑온도를 높였다가 몇 번 두꺼비집이 내려가 직원이 다시 올려줬고, 직원은 뭔가 굉장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주시하는 가운데 한 개의 냄비로 밥과 찌개가 완성됐다. 


밥상을 차려놓고 오늘 함께 걸은 신학생도, J언니도, L언니도, 다 죽어가는 A도 다함께 밥을 함께 나눠먹었다.  

대부분 그랬듯이 열악한 환경에 열악한 저녁식사였지만 오늘의 즐거운 기분을 반감시킬 순 없었다.  


다만 A의 상태가 아주 약간 걱정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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