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레짱 Mar 13. 2020

독박 육아, 가정보육의 종결 지점.

조심히 핀 이파리. 어디부터 물들고 어떤 정원으로 바뀔까?

 

      

차 안에서 본 하늘이 파랗다. 하늘이 이렇게 시원했나. 살랑거리는 베이지 꽃무늬 원피스 끝 자락을 스치는 바람이 느낌 설렌다. 아파트 단지에서 보던 하늘과 휴게소에서 보는 하늘을 색깔도 무늬마저 다르다. 엄지손가락만 한 장난감 뽑기 그림판은 든 손은 수필 책에 나오는 추억의 사진이 만들어졌다. 사뭇 달라진 수영장 물놀이 풍경. 바캉스 모자를 쓰고 머리를 틀어 올린 나는 아이를 들어 신나게 놀아주고 정신없이 웃고 있는 아이를 향해 사진을 연신 찍고 있었다. 아이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웃는 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면 뇌 속에 볕이 드는 듯했다. 지나서 보면 웃음이 나올만한 동영상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한바탕 놀고 나니 다들 기다리던 저녁 뷔페 시간이다. 세 사람이 웃으며 자유롭게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이 시간은 초단위로 곱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느낌을 담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새콤하면서 달콤하고 촉촉한 초밥.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입안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기름을 머금고 살짝이 그을임이 있는 LA갈비가 신랑의 접시에서 빠르게 사라져 간다. 양손에 포크와 스푼을 들고 장난치는 아이는 달달한 호박 수프와 몇 가지 재밌는 음식도 좋지만 마지막에 보는 유튜브 키즈를 더 즐긴다. 어느새 어둠이 깔린 정원. 꾸며져 있는 글팸핑촌의 그네에 살짝 기대어 아이의 자갈 놀이를 아쉽게 보고 들어가야 했다. 창가에 바짝 붙어 들어오는 시릿히 바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와인에 치즈를 먹을 수 있게 도와줬다. 아침이 왔다. 올록볼록 봉우리가 연결되어있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바둑 자판 모양의 미로정원. 옅고 넓은 구름이 펼쳐진 하늘 속 아침 햇살을 받은 창가에선 숲을 머금은 산 공기와 함께 가슴으로 들어온다. 아침엔 주로 자는 아이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조식을 기다린다. 바나나, 치킨너겟, 주먹밥, 델리, 우유. 키즈 식단을 눈으로 한껏 즐긴 아이는 아침산책 가는 길이 어리둥절하지 않다.  흐르는 냇물을 따라 생각보다 큰 몸집으로 무리 지어 있는 오리들. 노란 반바지, 끈나시 달랑 걸친 채 팜스 동물원 토끼에게 쭈그려 앉아 건초를 주고 갑자기 소리치는 염소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하고 이빨을 보이는 아이가 얼마나 이쁜지 누가 알까? 주변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는 순간을 언제고 꺼내볼 수 있게 동영상을 찍어놓았다.  정보육의 끝자락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하루를 남길 수 있었다...


동굴 육아를 빠져나와 살포시 볕이 들기 시작하면서 자그마한 기쁨에도 삶의 희망이 돋아났다. 여자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일까? 잊어야 살 수 있는 걸까? 한 발짝 한 발짝 뗄 때마다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테스터기에 두줄이 나를 찾아왔다. 병원 검진 후 익순한 종합비타민을 사 왔다. 친구와 아쿠아 필드 물놀이를 하러 가는 길 둘째를 임신했다고 알림을 들은 친구의 표정을 직면한 순간 깨달았다. 다시 동굴로 들어가야 하는구나. 양가 부모님에게 알리고 다양한 반응 속에서 어질어질 정신없을쯤에 어린이집 대기 신청 소식을 가져온 신랑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 가정보육의 시간이 끝났구나. 국립어린이집이나 평판이 좋고 접근성이 높은 어린이집을 들어가야 한다며 가정보육을 지향하지만 육아휴직은 쉽지 않다는 일관된 얘기로 수도 없이 부딪혔던 신랑이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 우울과 방전을 넘나들며 하루하루 가라앉는 내 모습에 힘들어는 해도 상황을 크게 뒤집지 못했던 독박 육아기간. 둘째 임신으로 본인에게 육아 바통이 넘어가려 하자마자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어린이집을 검색했다. 출퇴근 동선이 단축되고 종일반 운영을 하는 어린이집으로 결정하기까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의 머릿속은 흡상 가뭄 속 비 쩍 비 쩍 마르고 있는 논바닥 정경과도 같았다. 감정선의 중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크게 휘청이고 있었다. 하늘이와 단둘이 보냈던 시간, 신랑과 어른들, 친구들과 부대끼고, 조리원에 산후도우미 각종 돌봄 업체의 사람들과 만나는 나날들을 보내며 나는 어디로 온 걸까?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들 속에서 끝에는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오롯이 맞아내며 홀로 남은 그 끝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이전에 나와는 다른 사람이 서서 정수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둘째가 딸이어도 낯설지 않겠네요~"를 뒤집고 임신 5개월째 아들이라는 걸 보았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이제야 아들이라는 기쁨을 신랑은 숨길 수 없었다. 시어머니께서 참지못하고 "너만 아들 있냐? 나도 손주 생겼다고 자랑했다~"며 전면으로 기뻐할 수 없는 둘째 며느리를 향해 위로 담긴 격려를 건냈다. '아니요 어머니, 제가 아니라 어머님 아들이 많이 서운해해요."가 나의 목소리였다. 직접 듣진 않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들이 나왔네. 신경 써서 하나씩 하자"라는 조심스러운 뉘앙스였다고 한다. 이제껏 무슨 일을 해도 아웃 오브 안중, 웃음으로 넘기며 긴장을 받지 못한 신랑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존재감 인정 상황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첫째 딸이 있는 나는 순수히 기뻐하지도 온전히 만족하지도 못하고 시댁 나들이를 맞았다. 세 번의 나들이에 거쳐서 느낀 건 어른들이 이제야 하늘이 자체를 예뻐하고 상하관계 강압교육이 아닌 인격체로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형님과 아주버니의 역변도 놀라웠다. 형님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어른스러운 언행을 장착한채,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살뜰히 챙기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실로 첫째 며느리라 할 수 있었다. 아주버니가 아이 육아에 참견하지도 부모님에게 반기를 들어 싸우지도 않고 착실히 가족모임을 주도했다. 마지막으로 간 설 연휴 가족모임. 아이와 관계없는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해물탕 식당을 형님네 집 근처로 예약했다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싱싱한 해물탕으로 한 상 차려진 냄비의 해산물 껍질들을 형님이 직접 손질했고 아주버니는 핸드폰으로 맛집이라며 신랑에게 포스팅을 선전했다. 아버님은 호탕한 웃음을 띤 채 무슨 말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하며 가족적이라 할 수 있는 식사자리가 차려졌다. 한껏 뛰놀던 아이들은 담담하고 조용하게 자기들 밥을 먹으며, 하늘이의 메뉴 주문을 도와주지만 실상 마음껏 시키기에는 좀 그런 느낌의 저녁 식사가 끝나갔다. 나와 함께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조용히 안 매운 찜을 먹고 돌아가던 어머니는 자꾸만 하이마트에서 김치냉장고나 음료 냉장고를 사고 싶다는 말미를 흘렸다. 눈앞에 떨어진 진실과 상황 변화에 복잡한 감정 기복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곤히 잠든 하늘이를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는 차안,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가 된 것 같았다. 세상에는 뒤집어엎을 수 없는 게 있고, 사람은 바뀔 수 없는 천성이 있으며, 무언가 부딪히는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걸 하고 진흙탕이란 걸 알면서도 또박또박 걸어 가야만 했다. 이왕이면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운 채 말이다. 근데 나에게 주어 진건 그 길 위에서 화내지도, 싸우지도 않아야 하며, 뛰지도 눕지도 말아야 하며, 판단을 내려놓은채 순순히 떠 있어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게 가정보육의 끝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포지션이었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출산 후 겨우 만들어놓은 새로운 자아를 다시 무너뜨려야한다. 이유를 알고 싶지 않은 화가 솓구쳐 올라왔다. 뭘 해도 바뀔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들었다. 신기루 지나가듯이 찾아오는 해방감, 행복감. 그 뒤에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는 현실에 실망했다. 도전, 포기, 타협의 3종 세트가 초단위로 돌아가는 나를 어찌하지 못한 채 둘째 출산준비와 민간어린이집 등원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