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일행은 파랑새와 함께 마지막 목적지인 사하라 사막의 가다미스 오아시스 (Ghadames Oasis) 1)로 향했다. 남쪽 방향으로 날던 그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래 언덕을 넘어 사막 한복판에 있는 가다미스 오아시스를 찾아냈다. 작은 마을로 보이는 그곳에는 이국적인 느낌의 회백색 건물들과 야자수 나무들이 보였다.
장시간 비행을 하며 뜨거운 햇볕에 지친 동물들은 그곳에서 발견한 오아시스로 달려가서 물을 허겁지겁 마셨다. 그렇게 물로 배를 가득 채우고 있을 때였다.
"결국 나를 찾아왔네.”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에 물을 먹던 동물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여우의 모습에 당황했다. 이곳 풍경으로 보아 사자가 찾고 있는 동물은 분명 사막 여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신들에게 인사를 건넨 동물은 이런 곳에서는 찾기 힘든 주황색 털을 가진 보통의 여우였다.
"기린 말이 너는 암호학을 전공한 천재 프로그래머라고 하더라고. 여우, 우리 동물 세계에는 너 같은 수재가 꼭 필요해.”
사자가 나서서 반갑게 인사하자, 여우가 피식 웃더니 이야기했다. 2)
"사자, 나는 이제 다시는 길들여지지 않을 생각이야. 네가 나를 길들일 수 있으면 너는 나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고, 너도 나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겠지만 말이야...”
사자는 여우의 말이 너무 철학적이라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우의 대화방식이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여우는 인간의 기록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이 있기에 꼭 설득해 오라고 한 기린의 말이 생각났다.
"너를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비밀을 말해줄게. 비밀은 간단해. 인간들은 진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 쫓지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
여우의 말을 같이 듣고 있던 너구리가 살그머니 사자에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쟤는 말하는 게 좀 이상한 거 같아. 우리 그냥 가자.”
사자는 다른 팀원들의 의견이 궁금해 뒤를 돌아보았는데, 고양이 그리고 카피바라 역시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사자가 팀원들의 반응을 보고 고민하던 차에 이번에는 파랑새가 사자의 어깨에 날아와 앉더니 또 귓속말로 이야기하였다.
"쟤 이상한 거 맞을 거야. 예전에 학을 자기 집에 초대해 놓고 접시에다 음식을 대접했다고 하더라고.”
동물들의 의견을 들은 사자는 왠지 여우가 못 미더웠다. 게다가 여우까지 합류시켜 이 덥고 짜증 나는 사막을 건널 생각을 하니 여우를 애써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여우야. 네 말을 들으니 내가 널 길들이려면 왠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
"그래. 이해해. 날 길들이게 되면 결국 제대로 책임져야 할 테니까." 3)
그렇게 사자는 마지막 포섭 대상인 여우를 쿨하게 포기한 채, 오아시스를 떠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1) 가다미스는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사하라의 진주'라고 불린다. 이곳은 흰색 진흙으로 만들어진 독특관 외관의 건물들과 고대무역의 중심지라는 역사적인 중요성을 인정받아 UNESCO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2) 사자는 이때 강렬한 사막 햇볕에 타는 것이 싫어 준비해 온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누굴 따라하려 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