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내가 새해에 들어간 현상은 ‘광양 아파트 현상’이었다. 현상을 하면서 자주 밤을 새웠고 마감이 다가올수록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현상에 참여해서 밤을 새우는 인원은 낮은 연차의 직원뿐만이 아니라 높은 연차의 소장급, 부장급도 있었다. 모두가 다 같이 새벽까지 일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했다. 아무리 건축이 좋아도 너무 힘들었다. 새벽에는 머리가 기능하지 않아도 계속 일 해야 했고, 아침에는 지하철을 타면 나오는 헛구역질을 참으며 출근해야 했다. 일단 몸이 너무 힘드니까 정신도 힘들었다.
그래도 현상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만한 입면 디자인을 만들고 보기 좋은 보고서를 만들어야만 했다. 사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대단하다. 1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여서 2주 동안 만들어가는 보고서와 도면 세트를 보면 뿌듯함도 피어올랐다. 하지만 당장 몸과 마음이 힘드니 뿌듯한 마음은 곧바로 풀이 죽어버렸다.
마지막 날에는 밤새워서 만든 보고서를 출력하면 높으신 분들이 제출 및 발표를 한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면 그때야 2주 동안 매일 하던 야근과 주말 출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회사 시스템상 보상 휴가를 13일 정도 받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광양 아파트 현상’이 끝나고 나서 13일은커녕 고작 3일을 쉬고 다시 출근해야 했다.
‘아, 퇴사하고 싶어.’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진지하게 퇴사에 대해 생각했다. 현타가 세게 찾아왔는지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차마 두려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게 내가 선택한 회사의 모습 중 하나였지만 이걸 10년, 20년 할 수 있을까?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회사 사람들은 이게 건축 업계의 전통과 관례라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들 ‘건축하려면 어쩔 수 없어’라는 말만 건네는 것 같았다. 답답한 나는 꼰꼰 건축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시작은 K이라는 친구로 부터였다. 2001년 초등학교 4학년 같은 반 친구였던 K를 2013년에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게되어 짧은 시간 커피 한잔을 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동네 스타벅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K는 그 당시 아무도 타지 않던 킥보드를 타고 온 것이다! 개성이 강한 친구였다. 그 후 K의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염탐하고는 했다. 그러다 K가 인터뷰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현타가 왔던 그 시점에 유튜브에서 K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게 바로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후 요즘사)이라는 채널에서 진행한 인터뷰였다. K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요즘사 채널에 올라온 흥미롭고 다채로운 인터뷰에 빠지게 되었다.
너무 신기했다. 요즘사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는 K 말고도 다양한 사람과 삶이 있었다. 머리가 조금 띵했다. 서울에 올라오고 내가 볼 수 있었던 삶은 꼰꼰 건축에서가 전부였는데 이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색깔의 삶이 많을 줄이야. 영상을 보는 내내 너무 신나고 재밌었다. ‘뭐지? 왜 이런 사람들을 보는데 설레지? 인생 정말 재밌게 사는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주변에도 자신만의 삶을 사는 친구들이 있었다.
2013년 복학하며 만난 친구 V. V와 나는 영국에서 학부생으로 건축을 공부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2017년 다시 건축을 공부하러 영국에 갔을 때 V도 마침 영국에서 석사를 하고 있었다. V는 자신을 건축가가 아닌 글 쓰는 사람으로 항상 소개해 왔는데 결국 석사는 크리에이티브 라이팅(creative writing)이란 과정을 밟고 있었다. 내 주변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던, 첫 독립출판 작가는 친구는 V였다.
고등학교 친구인 J와 N 커플이 있다. 이 친구들은 각각 스웨덴과 태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J와 N은 캐나다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강아지를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N의 인스타그램에 꽃집을 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 중 한 명인 N이 자신의 가게를 연다는 것은 나에게도 너무 기쁜 일이었다. 자신의 일을 찾은 N을 축하해주었고 지금도 꾸준히 응원하고 있다.
석사 때 큰 힘이 되어준 폴란드 친구 A는 약혼자와 함께 런던에 살면서 건축사 사무소를 다닌다. 런던도 경쟁이 치열하고 살기 힘든 도시라는 걸 짐작하게 만들어 준 게 A였다. A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런던 건축가의 삶보다 언어와 문화도 다른 노르웨이에서 삶을 시작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자신의 사무소도 차리고 싶다고 말했었다. 얼마 전 A는 런던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조만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꿈꾸던 삶을 하나씩 이루어 가는 A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어쩌면 모두는 아닐지 몰라도 정말 자기만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많았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 사업을 시작한 친구, 호주에서 유학하고 맥주 사업을 시작한 친구, 패션업계에 일하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친구, 학부부터 박사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는 친구까지. 정말 치열하게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다양한 레퍼런스는 유튜브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도 저마다의 정답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재밌게 살고 싶다’.
요즘사와 주변의 다양한 레퍼런스를 보면서 알았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일상은 재밌는 일상은 아니었구나. 현상을 하면서 현타도 현타였지만 다시 돌아보니 꼰꼰 건축의 이런 삶이 재밌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보니 이렇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재밌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바로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