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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하면 회사 5년은 다니겠는데?

챕터 : 그 전

by 재민

* 꼰꼰 건축, 회사 이름은 가명이며 ‘꼰대’를 표현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2020년도 새해에 맞춰 종합건축사사무소 꼰꼰(이후 꼰꼰 건축)에 공채 18기로 입사했다. 2019년 여름 영국에서 건축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곧바로 취업 준비를 한 후에 얻어낸 결과였다. 건축학과를 나온 졸업생들은 여러 갈래로 진로가 나뉘게 되는데, 나는 당시 건축 설계에 뜻이 있었다고 믿었고 비전이 없는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건축사 사무소에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석사 이전, 2015년 학부를 졸업하고 소위 ‘아뜰리에’라고 부르는 소형 건축사 사무소 세 군데에서 인턴 경험을 했다. 그때와 반대로 이번에는 ‘메이저’로 불리는 대형 건축사 사무소 위주로 이력서를 넣었고 4번의 면접 끝에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메이저 건축사 사무소에 취업한 것은 온전히 나의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빠는 현대 엔지니어링에, 엄마는 삼성 물산에 한번 써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하늘 같은 부모님 뜻에 반하게 대형 건축사 사무소만 지원하기 바빴다. 사실 나는 시공사 취업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대게 부모님들이 원하시는 대기업 취업은 선택지에서 빼놓았다. 다행히도 부모님은 항상 나의 의견과 선택을 존중해주셨기 때문에 꼰꼰 건축에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많이 기뻐해 주셨다. 내 선택으로 바라던 메이저 건축사 사무소에 들어갔고 200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의 길고 긴 청년 취업난에도 2개월 만에 취업에 성공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뜰리에 몇 군데에서 인턴을 하던 당시 근거 없는 주 7일 야근과 이를 겪는 정규직 직원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메이저 건축 회사에 들어간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좀 더 나은 근무 환경과 합리적인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취업에 성공하면서 2019년 12월에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다.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원룸에서 제대로 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20년 1월 1일, 나는 서른이 되었고 며칠 후 회사와 근로계약을 했다. 꼰꼰 건축은 그래도 국내에서는 매출 순위가 높은 10대 메이저 건축사 사무소였다. 특히 주거 분야에서 큰 성과를 보이며 다양한 아파트 설계 사업을 수주받아 하고 있었다. 비록 업계 정상에 있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메이저 건축사 사무소답게 그리고 인턴을 했던 아뜰리에 회사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부서와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에 맞춰 회사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 건축사 사무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건축사 사무소는 보통 건축물을 짓는 공사에 필요한 계획을 한다. 그리고 도면을 그리고 법적 허가 절차(인허가)를 대행하는 일을 한다. 이 프로세스 사이에 구조, 소방, 전기, 조경 등 분야별 전문 협력 업체를 코디네이트 하며 공사에 필요한 도서를 만든다. 또한 건축주의 요구사항에 따라 사업성 검토도 하고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 현상 공모(경쟁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주해 올 수 있는 공모전)를 하는 등 건축 설계에 관련된 일을 종합적으로 수행한다.


사실 같은 건설 업계에 있는 시행사나 시공사에 비하면 내가 하는 설계 일은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은 아니었다. 또한 같이 유학했던 다른 과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연봉이 친구들 사이 평균에 못 미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들에게는 적당히 유명하고 적당히 좋은 회사라고 말하면서 다녔다. 어디 가서 굳이 회사 이름을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만족할 만한 회사에 들어왔고 내 한 몸 책임지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과 시간을 보장받았다.


새해 신입사원 교육 후 긴장하면서 시작한 회사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무난했다. 첫 1년 동안은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배우는 즐거움도 있었다. 아침마다 하루 동안 어떤 일을 할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일일 업무계획’을 만들어서 회사에 제출했다. 제출 후 내 옆자리 동갑내기 사수인 용 대리님의 지시를 받아 일했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수 덕분에 쉽게 설계 일을 배울 수 있었고 나 또한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따라갔다.

사실 신입사원이니까 어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소장(각 팀의 리더)님이나 프로젝트의 PM(프로젝트 매니저)이 용 대리님에게 일을 전달하면 대리님 지시 아래 그저 시키는 일만 시키는 대로 하면 됐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대리님에게 언제나 질문할 수 있었고 이런 상황을 나는 다행이라고 여기며 업무에 충실했다.


꼰꼰 건축에서 팀은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지만, 사원들은 한 프로젝트에 계속 있지 않고 바쁠 때는 팀과 상관없이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를 오가며 일했다. 현상을 할 때는 밤을 꼴딱 새우면서 일하기도 하고 여유로운 프로젝트에 배치되면 저녁 6시에 정시퇴근을 하기도 했다. 프로젝트에 따라 내 퇴근 후 삶도 달라졌지만, 특별히 퇴근 후에 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딱히 문제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본업인 꼰꼰 건축에서 맡은 일을 잘하는 것이 나에게 최우선이었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듯 직장인은 업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믿었다.


많은 사람이 건축사 사무소의 긴 업무시간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학생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아뜰리에 인턴 때 너무 호되게 당했는지 몰라도 꼰꼰 건축의 삶이 꽤 만족스러웠다. 신입사원 3개월 차에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에도 들었고 비슷한 시기에 하나은행에서 한 달에 30만 원씩 넣는 고금리의 적금도 들었다. 월급은 기대한 만큼 만족스럽진 못해도 밀리지 않고 잘 나왔고, 나를 포함한 10명의 동기와 목요일 점심마다 밥을 같이 먹으며 회사 뒷담과 정보를 공유하는 시끌벅적한 동기 모임도 할 수 있었다. 야근하는 날도 많고 바쁠 땐 주말도 없이 일했지만, 회사 시스템에 주 52시간을 넘는 노동에 대하여 휴가로 보상해주는 보상 휴가 제도도 있었다. 평일엔 일하고 퇴근 후에는 저녁을 직접 해 먹고 예능을 보며 쉬고,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 카페에 가거나 집에서 취미 생활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적당한 회사 규모, 적당한 네임밸류, 적당한 월급, 적당한 워라밸, 적당한 복지, 적당한 업무, 적당한 쉼, 적당한 스트레스. 모든 것이 너무 완만하고 평범한 회사 생활이었고 적당한 적당함이었다. 2020년, 나는 삶의 평범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렇게만 하면 회사 5년은 다니겠는데? 그럼 그때 연봉 올려서 이직해야지’.


평범한 삶에 평범한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살다 보니 벌써 12월이 되어 있었다. 회사 사람들은 다들 연말 인센티브가 얼마 나온다며 루머를 생성 중이었고, 나는 12월 24일 종무식 이후에 있을 긴 휴가를 어떻게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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