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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 그리고 부러움.

챕터 :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by 재민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에는 다양한 인터뷰가 있다. 총 10명의 개인 인터뷰 그리고 1팀의 단체 인터뷰가 나오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당시 나에게 부러움을 사도 마땅한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이야기였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가장 결핍되어 있던 게 바로 주체성 아니었을까? 내가 하지 못했던 사회에서 원하는 선택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유일한 삶을 사는 모습은 내가 이 책에 매료되고 영향을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이야기였다.


이전의 나는 주체적이지 못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어릴 적 태국과 영국에서 생활했음에도 한국의 군대 탓인지 회사 탓인지 타인과 상사에 맞춰진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다. 그것이 더 좋을 때도 있었고 우월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해서 집에 가는 것. 사실 이러한 몇몇 부분에서 성과를 내며 짜릿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성취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따르고 지시에 따라 일하면서도 특별한 나만의 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걸 꼭꼭 숨겨두면서 단체주의적인 꼰꼰 건축 문화에 녹아들고 있었다. 나름 주체적인 삶은 퇴근 후에나 할 수 있었다. 저녁 메뉴를 정하고, 사고 싶은 걸 고르고, 주말에 어디를 놀러 갈지를 선택하는 정도로 말이다.


요즘사 책에서 한 인터뷰이가 말하듯 회사에서는 내가 몇 시에 출근할지, 점심은 언제 먹을지, 퇴근은 몇 시에 할지, 어떤 프로젝트를 할지, 누구와 일할지, 심지어 보고서 폰트는 뭘 쓰고 사이즈는 어떻게 할지까지 모두 내가 선택하는 것들이 아니라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들이었다. 회사도 나름대로 타협을 본 게 출근 시간은 A, B, C타입으로 각각 8시, 9시, 10시로 선택권이 있었다. 하지만 철저히 허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윗사람들이 모든 결정권을 가져갔다.


물론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안전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누구를 탓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막내 사원으로서 일하는 나는 계속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고, PM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윗사람이 맞다고 하면 그저 따르기만 하고 있었다. 마치 군대 같았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스물한 살에 뭣도 모르고 들어갔던 군대에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주체적인 권한을 빼앗기고 명령에 따라야 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에 가치관의 충돌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 차츰 익숙해지고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까먹게 되었던 모습까지 다시 떠올랐다. 너무 싫었다.


웃기게도 꼰꼰 건축에서는 나름 군대에 다녀온 사람을 더 우대해주는데, 이유는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하기 때문이다. 왠지 꼰꼰 건축에서 필요한 인재는 시키는 일을 잘해줄 그런 사람인가? 그래서 나를 뽑았나?


나는 책에 나오는 주체적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주체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다르게 말하면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으로 표현해도 나쁘지 않겠다.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하기 싫은 일도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그런 주체성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주체성에 관한 욕구는 내 삶에 존재해왔었고 가장 충족되었었던 대학교 1학년 시절의 내가 생각이 난다. 2010년의 재민은 세상의 중심이었다.


영국에서 신입생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부모님과 1년 동안 떨어져 지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첫 독립에 완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다양했고 신기하게 수업을 듣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놀기도 많이 놀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스스로 공부도 했다. 1학년 마지막 학기에는 한식당에서 설거지 알바를 하면서 배낭여행을 계획했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유럽 배낭여행을 홀로 떠났다.


아직도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자 세상의 중심에 섰을 때를 말하라고 하면 바로 이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로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을 둘러본 2주 반 동안의 시간이다. 정확하게는 처음 가보는 스위스의 자연을 탐험하고 즐겼을 때였다. 자동으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행복했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구나!’라고 소리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스스로 일해서 돈을 모으고 스스로 계획해서 스스로 이루어낸 첫 여행이었다. 여행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주체적인 일상을 꾸려가던 대학교 1학년 시절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고 빛나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 후 입대를 하면서 세상의 중심에서 난 점점 멀어졌지만….


약 10년 뒤인 서른한 살에 삶의 주체성을 되찾고 싶다고 고민할 때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퇴사는 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쉽게 사표를 쓸 순 없었다. 그래서 든 생각은 ‘나도 직급이 오르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였다. 단순히 직급으로 주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럼 글로벌 본부에서 처음 PM을 맡을 수 있는 직급인 과장이 되면 주체적일까? 아니면 PM이 능숙해진 차장이 되면 주체적일까? 아니면 부장? 더 나아가 팀을 이끄는 소장? 내가 보기엔 다들 시키는 걸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니 막막했다. 적어도 10년은 버텨야 일의 주도권이 좀 생길 것 같았다. 과연 내가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건축 설계일을 10년 동안 버티며 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운 고민에 빠졌지만, 앞으로의 10년을 더 일해보지 않고서는 답을 얻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이미 하나의 꿈이 슬금슬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별한 나만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


종종 누군가를 부러워할 때는 그 사람이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걸 가져서 일 때가 있다. 결국 그건 내가 원하는 거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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