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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르르 무너지다.

참고로 나는 건물을 짓는 사람이었다.

by 재민

회사를 다닌 이후 줄곳 퇴사를 꿈꿨다. 하지만 실제로 퇴사할 마음은 없었다. 그것은 그냥 안정된 직장을 다니면서 생기는 고리타분함을 못 이겨 꺼내는 사치품 같은 말이랄까. 현실은 너무 안정되고 좋은데, 퇴사해서 자유롭고 싶다고 말하는 새빨간 거짓말. 그냥 직장 동료와 나누는 회사 험담 끝에 나오는(그러나 아무도 실천하지 않는) 그런 말이었다, 퇴사는.


첫 회사를 퇴사하고 다시 똑같은 업종의 똑같은 직무의 회사로 들어간 이유는 단순했다. 에세이 작가라는 꿈과 건축가를 동시해 병행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 때문이었다. 딱 봐도 욕심이 많은 투 트랙 전략은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지고 가면서 나의 꿈을 향한 성장도 도모하는 완벽에 가까운 전략이다. 완벽에 가깝기만 한 게 단점이었지만.


작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첫 회사를 퇴사한 이후 항상 있었고, 월급의 안정감을 갖고 싶은 마음은 두 번째 회사를 들어올 때쯤 생겼다. 그래서 두 번째 회사는 정말이지 워라밸에 대한 고심을 많이 하고 들어왔다. 면접에서 나의 능력에 대한 어필보다, 야근은 어떻게 하고 얼마나 하는지에 관한 질문만 던지고 나왔을 정도였으니까. 덕분에 두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독립출판으로 만든 에세이 <사랑한다 요리할 수 있어>를 출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브랜딩을 위해 브런치스토리와 각종 플랫폼에서 소설도 써보고, 에세이 연재도 하면서 작가로서 더딘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매달 25일 이면 월급 300만 원이 따박따박 통장에 찍혔다.


두 번째 회사를 다니고 깨달은 건,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은 나에게 굉장히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하는 조카에게 큼지막한 장난감을 사줄 수 있었고, 본가에 내려가면 부모님께 근사한 브런치를 대접할 수 있었고, 친구들의 생일에 선물을 챙길 수 있었다. 제일로 중요하게 나는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월급은 일정 부분을 주식에도 넣고, 개인연금에도 넣고, 여행자금을 모으는데 썼다. 돈이 주는 안정감이라는 게 매달 겹겹이 쌓였고 나는 페스츄리처럼 달콤한 그 맛에 취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새해가 밝았다. 1월이 되자 사람들은 새롭게 오르는 연봉에 대해 수근거렸다. 나는 운 좋게 만 4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과장으로 진급하게 되었고, 비교적 다른 직원들보다 큰 폭으로 오른 연봉을 인상률에 흡족해했다. 단 하나의 걱정이 있었다면, 기존에 몸담고 있던 팀이 해체되면서(무능력한 팀장이 잘린 게 제일 큰 문제였다. 그동안 덕분에 칼 같은 퇴근을 잘 누렸는데 시원섭섭했다.) 다른 팀으로 부서 이동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새로운 소장과의 첫 면담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소장님 : 넌 과장이 어떤 위치라고 생각하냐?


나 : 저는 중간에서 윗분들과 아랫친구들을 잘 조절하고, 프로젝트 PM(프로젝트 담당자)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위치라고 생각합니다.


소장님 : PM 해보면서 팀 사람들도 잘 챙겨야 하는 팀의 척추 같은 역할이 과장이야. 그리고 이제 과장쯤 돼서 뭘 모르면 쪽팔리는 그런 위치지.


그날 이후 나는 서울의 한 은행의 재건축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처음 해보는 10곳이 넘는 각종 협력업체의 부장님, 소장님들과 조율을 하며 건물을 계획해야 했고, 본 적도 없는 임원분과 함께 각종 회의에 참석해 건축설계는 1도 모르는 클라이언트를 만나야 했고,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르면서 건물을 기능할 수 있게 계획하기에는 내 지식이 부족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소장은 그것도 모른다고 핀잔을 주며 겉핥기 식으로 알려주고, 그러다가 4월에는 기존에 하던 프로젝트와 더불어 한 달 동안 풀야근을 해야 하는 현상설계(공모전 같은 형태의 건축 사업)의 보고서 PM으로 참여해 현상 경험 없는 대리와 사원들을 이끌어 보고서를 만들고, 다시 은행 재건축 프로젝트로 돌아와 밀린 일을 일정 변경 없이 하며, 거기에 소장님은 진작에 고려해야 하는 걸 왜 이제 하냐고 하며, 주변 선배들은 각자 모두 바빠 도와줄 수 없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느 월요일 아침회의 시간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어버리더니 정신이 몸에서 나가는 것 같은 느낌과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우울과 길 가다 소리를 지르는 짜증과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공황발작이었다.


의사 선생님 : 환자분은 왜 그렇게 참으시고, 자신을 이지경까지 몰아붙이셨나요?


나 : 제가요? 설마요-! 저는 죽을 만큼 노력한 것뿐인데.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참아내고 완수하는 것. 그것이 내가 어릴 적부터 정의했던 “노력”이었다. 다들 노력하고 산다길래 나도 그렇게 살아 본거였다. 회사 다니고 싶은 사람은 없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가 참고 사는 게 세상 아니었나. 그냥 힘들어도 참고 노력하는 거지, 내가 응급실을 간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데. 물밀듯이 들어오는 업무와 책임과 부담감을 그저 최대한으로 안은 채 내가 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며 노력했는데….


의사 선생님 : 마음이 그걸 못 버티겠어서 결국 신체적으로 나온 거예요. 건강한 어른이었다면 조절했어야 하는 것을 환자분은 지금 못하시고 계시거든요.


나 : (나는 건강한 어른이 아니라는 건가?) 하하하. 스트레스는 좀 받았지만 제가 전혀 감당을 못하고 있나요?


의사 선생님 : 모든 검사 결과가 그렇게 말하네요. 신경이 망가졌어요.


그 후 여름 끝에 오는 가로수가 뽑히는 태풍이 지나는 것 같은 한 달이었다(당시는 초여름인데 무슨 계절에도 안 맞는 이런 일이…). 공황, 우울, 극도의 불안, 정신과 약 부작용,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이어졌던 태풍이었다. 결론은 퇴사.



언제나 퇴사를 꿈꿨었다. 직장 동료들과 농담으로 이 회사는 답이 없다면서 빨리 퇴사할 거라고 했던,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현실이 되다니. 말이 씨가 돼서 발화한다고 다들 말 조심하라고 했는데, 진짜로 나는 생각에도 없던 갑작스러운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 사유서>를 쓴 작가로서 퇴사 사유를 뭐라고 말해야 하나. 뭐가 되었든 나는 노력에 노력을 더한 결과, 내 마음이 텅 비어버릴 때까지 일하고 말았다. 이게 요즘 MZ들이 많이 겪는다는 그런 번아웃인가. 역시 나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MZ였군. 그나저나 이를 어쩌면 좋을꼬. 밥벌이는 해 먹고살아야 한 텐데.


나의 평범했던 일상은, 건강하다고 생각한 정신머리는, 안정감 있던 수입은, 나를 대변해 주던 회사 생활은 모두 무너졌다. 건물 짓는 일을 했던 나는 폭싹 무너져버렸다. 재건축이 시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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