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을 빼먹은 부실공사의 최후
잘 지은줄 알았던 내가 무너지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회사 근처 정신건강의학과였다. 회사는 삼성역 근처에 있었는데, 놀라웠던 사실은 근처에 정신건강의학과 병원들이 밀집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MZ고, 번아웃이고, 화병이고 상관없이 현시대 직장인들은 정신질환을 반려질병처럼 달고 사는 게 사실이구나 생각했다.
가장 가까워서 들린 첫 병원에서는 퇴짜를 맞았다. 자신들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받아 줄 수 없다며 웃으면서 나를 내쫓았다. 두 번째 병원도 다를 바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웃으면서 대화를 끊고 나와버렸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내과나 이비인후과처럼 당일 방문은 안 되는 건가?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환자들은 1분 1초가 고통인데, 정신과 의사들도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런 조치를 취했겠지만 환자인 나는 급급했다.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병원에 갔다. 왠지 여기는 로비가 조금 한산하다. 생긴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병원이었다(건축가니까 인테리어 마감을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직감적으로 여기는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병원 원장님이자 병원의 유일한 의사인 선생님께서 진료를 봐주시기로 했다. 나는 이전 타임 환자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 아주 길고 많은 질문의 설문지를 작성했다.
나의 상태와 먹는 약, 가족력, 현재 가지고 있는 질병들, 장애여부, 정신과를 와본 적이 있는지 등 기본적인 설문지가 있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불안감, 우울, 공황증상을 있는 데로 그리고 염려하는 그 느낌 그대로 썼다. 물론 내가 조금 악필이라 의사 선생님이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살짝 들었지만, 뭐 그것도 나의 상태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다.
진료를 접수할 때 공황 때문에 왔다고 하니 간호사분이 추가로 설문검사가 있다고 했다. 설문의 이름은 기억은 못하지만 공황, 불안, 우울, 일상상태 등을 측정하는 듯한 설문검사였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질문들을 답하면서 내가 우울감과 불안감, 그리고 공황발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지니고 있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가 치료 가능한 수준이기를 빌었다. 객관적으로 내가 와르르가 아니라 와장창 무너진 것이면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어떤 방에 들어가서 팔목과 발목, 내 몸 이곳저곳에 센서를 달아놓고 어떤 파장을 측정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천천히, 크고 깊게 숨을 쉬면서 10분을 눈감고 검사에 임했다.
호명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라고 안내를 받았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병원 제일 깊숙한 곳에 있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은 아직 초여름이었지만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았고, 하얀 가운은 입은 생머리에 단발을 한 눈이 크고 아주 비싼 브랜드의 목걸이를 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나는 선생님 맞은편에 앉았다. 다리가 불안한 듯 떨렸다(이미 불안한 상태였으니 당연했다).
의사 선생님은 심리 상담사가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답게 검사결과와 지표들로 나의 상태를 설명했다. 나는 모든 설문에서 “건강한” 범주는 모두 벗어나는 위엄을 과시했다.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이 불안하고 우울했으며 자신감도 떨어져 있었다(하지만 웃기게도 그 사이에 내 자존감은 정상이랜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 대한 기능도 많이 떨어져 있고, 당연히 수면이나 성생활, 식욕 또는 폭식욕구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못 먹고 버리는 상태랄까). 너무 웃기게도 이 지경이 되었는데 나는 내가 “정상”범주에 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심박수와 자율신경계를 측정한 검사의 결과도 있었는데 심박수는 내가 심호흡을 하면서 검사를 받았음에도 남들보다 1분에 15번은 심장이 더 뛰고 있었고, 자율신경의 균형은 와장창 무너져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으로는 내 몸의 상태는 지금 매일이 위협을 받는 상태에 있는 것처럼 긴장해 있고 이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출근길에 호랑이가 날 쫓아오는 것처럼 온 근육이 줄행랑 혹은 싸우기 위해 준비되어 있고, 심장은 두근거리며 혈액순환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각성상태인 것이다. 뭐 그랬으니 그 전날 밤을 꼴딱 세운게 이해가 갔다.
나 : 선생님! 저는 도대체 어떡해야 하나요.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의사 선생님과 나는 긴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내가 자라온 환경이 어떤지, 어떤 이력을 갖고 있는지, 어떤 성격인지, 강박이 있는지, ADHD증상이 있는지, 스트레스를 어디서 어떻게 받고 어떻게 푸는지 디테일하게 물어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신 건 역시나 회사에서 많은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걸 꽁꽁 숨기고 꾹꾹 눌러 참았기에 내 마음이 더 이상 못 버티고 신체적으로 증상을 나타낸다고 설명하셨다. 회사 업무가 당연히 쉽지 않고, 생계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정신적 질환까지 얻었다는 것에 놀랐다. 건축사사무소 일이 정신질환을 유발했어도 다른 대안책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하면 빨리 정상으로 돌아와 일상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나 : 선생님! 병가를 좀 쓰고 잠시 쉬면서 치료를 하면 금방 나아질까요?
의사 선생님 : 재민 님께서 이 상태가 되시기까지 반복했던 선택이나, 생각방식, 그리고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야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재민 님, 지금 휴가 일주일 갔다 오시고 다시 회사 돌아오면 괜찮으실 것 같아요?
나 : 아뇨….
의사 선생님 : 우리가 일을 아주 많이 한다고, 공부를 아주 많이 한다고 해서 번아웃이나 우울이 오는 게 아니거든요? 번아웃, 우울, 탈진 같은 것들은 아주 많이 일했는데 마음에 채워지는 게 없어서 그래요. 성취감이나 재미, 보람 같은 것들이요. 혹시 재민 님은 그런 걸 느끼나요?
나 : 아뇨…. 저는 그저 생계, 돈 때문에 일하는 거고, 건축에 대한 열정이 없는 걸 확인한 지는 이 회사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 : 그렇다면 지금 회사는 돈 때문에 다니는 건데, 월급이 들어왔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거나, 기쁘다거나, 아니면 저축을 차곡차곡해나가면서 뿌듯함을 느끼진 않나요? 그것만으로도 많은 동기가 될 수 있거든요.
나 : 저는 월급이 들어오는 게 기쁘지 않아요.
의사 선생님 : 그럼 재민 님은 어떤 게 즐거우세요?
그리고 나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가지게 된 글을 짓는 작가라는 꿈과 이를 현실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 생계를 책임져줄 건축가라는 직업. 그리고 그 둘을 줄다리기하듯 밸런스를 맞추면서 가져오다가 무너져 버린 나까지.
의사 선생님 : 재민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작가가 하고 싶은데 건축설계일도 엄청 잘하시고 싶어 하시거든요? 건축 설계를 그만두면 미련이 남을까요?
나 : 아뇨. 그건 이미 예전부터 생각해 본 건데, 저는 건축을 그만둬도 후회할 것 같지 않아요.
의사 선생님 : 그런데 왜 그렇게 노력하셨어요? 저는 미련이 많이 남아보이시거든요.
나 : 그냥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야죠. 노력해야 하는 거잖아요.
의사 선생님 : 이번에 넷플릭스 드라마 쓴 웹소설 작가 겸 의사분 계시죠? 그분이 과연 의학연구에 매진하고, 환자를 하루 종일 진료하고 그러면서 글을 쓰셨을까요? 그렇게 하면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죠. 마찬가지예요. 글쓰기와 건축설계 두 개를 모두 잡을 수 없어요.
내가 욕심이 너무 많았나 보다. 의사 선생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작가로 (비록 더딜지라도) 성공하고 싶어 매주 글을 썼고, 소설을 기획하고, 온갖 플랫폼에 업로드했다. 그리고 평일에는 건축가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야근을 하고, 책임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며 도면을 쳤다. 내가 지은 “재민”이라는 건물에 바보같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노력들을 꽉 꽉 채워 넣었다. 시간이 갈수록 노력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으니 그 중량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애초에 그만큼을 견디게 설계되지 않았는데…. 1.5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슬래브 바닥이 2.5 톤의 중량의 받게 된다면 당연히 무너지는 게 건물이고 과학이고 물리고 수학이고 구조설계일 텐데, 건축을 배운 사람이 그것을 간과하고 나라는 건물에 그렇게 많은 걸 올려놓았으니 와르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을 수밖에 없다.
내 마음과 일상과 정신 건강의 붕괴사고 결론은 결국 “욕심”이었다. 무엇이든 노력이면 해낼 수 있다는 욕심, 모든 걸 다 갖게 다는 욕심, 나는 능력이 좋고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욕심. 욕심, 욕심, 욕심. 욕 나온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아프길 바라지 않았고, 내 일상과 업무 능력이 무너져 바보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고 싶었고, 누구보다 노력해서 큰 성취를 하고 성공을 하고 싶었다. 그게 붕괴사고의 이유였다. 그 많고 많은 것을 이루고 싶은 마음. 다 해내고 싶음 마음. 다 잘하고 싶은 마음. 좋은 사람에 멋진 사람이고 싶은 마음. 그게 다 욕심이었다.
이런 것들이 날 아프게 하는 거였으면, 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살 걸. 나 그 자체를 인정하며 살아버릴걸.
PS. 그래도 검사 결과 자존감은 높다고 하니 스스로를 놓을 일은 없겠다 하고 한 시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