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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의 취업 2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기

by 재민

- 1편에서 이어집니다 -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22곳 중에는 F&B관련 자리가 제일 많았고, 백화점 판매직이나 주방에서 보조하는 역할도 있었다. 대부분은 이력서를 열람하고 연락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곳은 공고와 다른 직무로 연락이 오는 곳들도 있었다. 나는 그닥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서른다섯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평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과 건축 설계만 해오던 사람이 어떻게 완전 딴일을 할 수 있을지 나로서도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다 보니 3군데에서 면접을 봤다. 아르바이트는 서른다섯이 되어도 면접을 보게해주나 생각했다. 어느 회사의 신입직원이라고 했으면 서류에서 광탈할 많이 늦은 나이였을텐데…. 어찌되었든 세 번의 면접을 연달아 봤다.


처음 면접을 본 곳은 여의도 더현대 백화점에 있는 대기업 산하 음식점이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음식점에 딸린 커피바 바리스타를 뽑는 자리였는데 면접은 아주 간단했다. 커피 서빙이나 포스기를 이용해 봤냐는 이야기와 왜 지원했는지,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지, 나의 특이사항들 등, 기껏해야 15분 남짓의 1대1 짧은 면접을 봤다. 평일에 러쉬타임이 아니라 그런지 매장은 바빠 보이지 않았고 그런 더현대에 있는 내 모습에 요상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였으면 이 시간대의 더현대 뿐만아니라 어느 백화점에도 있을 수 없었을테니까. 백수니까 가능했다.


면접관1 : 그럼 보건증이랑 회사 퇴사만 잘 되시면 되겠네요. 저희랑 일하면 아주 좋을것 같은데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름 면접은 좋은 분위기에서 끝났다. 같이 일하고 싶다는 소리도 들었으니 웬만하면 여기서 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음식점은 끝끝내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두번째는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카페였다. 사실 여기는 첫번재 면접 보다 더 생각없이 갔는데, 예상 외로 아주 많은 질문과 디테일한 대답을 요구하는 면접이었다. 2대2로 무려 1시간이나 진행되었다 — 왠만한 중견기업보다 면접이 길다고 느껴졌다. 면접관은 내 이전 경력과 나이가 마음에 계속 걸려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건축설계 관련 경력만 많고 F&B관련 경력은 학생때 잠깐 카페 알바를 했던 것뿐이라 어필이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조급함에 나는 마지막까지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다며 어필했다.


면접관 2 : 저희는 아르바이트 형태가 아니라 주 40시간씩 정기적으로 일하는 방식이라 뽑히시면 정직원으로 들어오시는 거구요. 스케쥴 근무라서 평일이랑 주말 상관없이 일하실수 있어야 하는데 괜찮으시죠?


썩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면접관은 면접이 끝나고 카페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한 잔 내려주어 기업을 어필했다. 커피는 맛있었고 이틀뒤에 합격 전화가 왔다.



세번째 면접은 50대 부부가 운영하는 딸기케이크로 유명한 작은 베이커리 카페였다. 면접관으로 온 사람은 부부 중 남편이었는데 카페 운영을 전반적으로 맡고 있는 듯 했다. 급하게 사람을 뽑고 싶어하는 기색이 많아보였으나, 카페에는 별 도움이 아되는 내 이력 때문에 선뜻 결정을 못하는 눈치였다. 짧게 면접을 볼줄알았으나 이 면접도 1시간이 조금 넘어서 끝이났다.


면접관 3 : 저희도 다른 면접자들이 있어서 한번 비교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특별한 말 없이 끝난 면접은 다음날이 되서 바로 연락이 왔다. 문자로 다음주 수요일에 보건증과 주민등록 등본을 지참해서 오라는 문자였다.


두 가지 선택지가 생긴 나는 고민끝에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평소 그 카페를 즐겨다녔기에 브랜드 이미지가 좋았고,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니 이모저모 기술을 배우면 쓸일이 많겠다라고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일하는 카페이니 분위기도 좋을 것이라 예상했고, 현재 매장 수도 늘리고 있다했으니 성장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입사일은 2주 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편했다. 애초에 예상하고 있던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도 구했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다시 글을 쓸수 있는 일상을 되찾을 것 같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 이 소식을 전했다.


의사 선생님 : 그럼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시는 거세요?


나 : 하루에 8시간씩 해서 주40시간 일한다고 했어요.


의사 선생님 : 그럼 평범한 직장이랑 똑같은 시간이네요. 보통 하루에 글을 몇시간씩 쓰세요?


나 : 저는 서너시간은 쓰는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 서너시간…. 퇴근 후에 글을 쓰실 수 있으실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드셨나요?


나 : 네. 밸런스를 맞춰보려고요.


의사 선생님 : 요즘 상태는 어떠신가요? 갑자기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한건 없으셨어요? 공황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구요?


나 : 요즘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공황 증상도 아예 없었고, 불안하거나 우울하지도 않아요. 확실히 많이 좋아진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 그래도 약은 꾸준히 복용하시고요. 그럼 저희는 3주 후에 뵐까요?


3주치 약을 받아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맑은 하늘이 무더운 여름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더운 것보다 맑음이 더 잘 보이는 걸로 봐서는 앞으로 할일들이 잘 풀릴것 같았다.


입사전 2주 동안은 아주 평안하게 지냈다. 아침에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고, 돌아와 건강한 식사를 하고, 집중해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용 릴스도 만들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영화나 OTT 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늘 하루도 알차게 살았다고 기쁜마음에 잠에 들수 있었다.




그리고 카페 바리스타 되기 전날 밤에는 약간의 긴장감과 약간의 설레임을 가지고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바리스타일과 글쓰기 일을 병행하며 북페어에서 사람들에게 드립커피를 내려주었다. 어쩌면 내 앞의 새로운 날들을 미리보여주는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는, 공황장애를 이겨낸 멋진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는 나에게 일어날 일들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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