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참 스펙타클하네요
퇴사 하기 전, 건축 설계 일을 하다보면 설계사사무소 직원은 아무 힘이 없다는 걸 느끼고는 했다. 건축사사무소 직원을 건축 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직이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데 비전문가가 전문적인 지식이나 감각이 없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서툴러 말도 안되는 대화를 할때가 많다. 가령 어떤 분은 “왜 제 땅은 정사각형이 아니에요? 설계사사무소에서 대지 형태 좀 바꿔주실수 없나요?”라고 질문하기도 하고, “법대로 안하면 안되요?”라고 건축가에게 같이 불법행위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최종 결정권은 클라이언트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웃으며 대응해야한다.
그런 일을 방지 하기 위해서 PM사라는 회사도 존재하는데, 비전문가인 클라이언트와 전문가인 설계사 사이에서 조율해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그들 마저도 건물이 지어지는 일을 대충 알고 있기 때문에 — 그냥 대한민국의 이 많은 회사들이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는지 신기할 뿐 — 그저 시어머니가 2명 생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들은 가령 “클라이언트 분이 이렇게 원하시는데 불법으로라도 건물 지으면 안되나?”라던가 “나는 그건 모르겠고 이렇게 해줘 쀍!!!!”을 외치는 비상식적인 대표들도 있다 — 물론 유능한 PM사 직원 및 대표는 그러지 않겠지만.
건설업계에는 몇 년전 한 아파트를 공사하던 중 철근이 보강되어야했지만 누락되어 지하주차장 슬래브가 무너진 사례가 있었다. 전국민이 아파트를 가고 싶어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은 아주 크게 보도되었고 사람들은 건설업계에 대한 매우 강한 질타를 하염없이 날렸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전국민이 자신의 보금자리가 그렇게 무너질수도 있다고 상상하니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겠는가. 건설업계의 설계, 감리, 감독, 시공이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 건축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 싶은 — 큰 사고가 있었다.
퇴사를 하며 완벽히 무너진 나의 일상과 생각 회로는 내가 건축설계를 하면서 겪었던 건설업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클라이언트(마음)는 불안정한 일상에 불안해 하면서 전문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렸고, PM사(머리)는 중간 역할을 커녕 그저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된다고 나를 연신 쪼아댔다. 그렇게 취업을 진행하다보니 감리(감정)와 감독(이성), 시공(몸)이 모두 총체적으로 망가진채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느 건축사사무소 직원과 다르지 않게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외치며 눈가리고 아웅을 시전 했다.
다시 풀어 말하자면, 나는 주5일 하루8시간 일하는 바리스타 자리를 구했고, 정규직이므로 책임감이 꽤나 필요하며, 스케쥴 근무로 일상을 루틴화 할 수 없는 직장을 구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적인 생각만 하면서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기도마저 통하지 않았는지 — 하나님도 호락호락하지 않으시다— 첫 퇴근을 하고 내 마음과 일상은 다시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잘 회복되었다고 생각했고, 다시 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함께 일을 시작했는데 하루만에 무너져내리는 내 모습에 당혹감, 정신적으로는 극심한 우울감을 느꼈다. 그리고 더 무서웠던 것은 그 우울감은 병원에서 받은 약으로도 잠잠해 지지 않고 나를 송두리째 잡아먹었다. 마치 건축사사무소에 휴직을 신청하기 직전처럼.
나의 상황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과 의사 선생님께 이 사실을 전달했다.
나 :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길래 이렇게 다시 무너지는 걸까요? 내가 했던 선택들이 모두 잘 못된 건가요? 지금 자신감도 자존감도 모두 무너졌어요!
주변 사람들, 의사 선생님 : 그건 재민 님에 철근을 빼먹었기 때문이에요.
나 : 철근이요? 그렇게 중요한 걸 제가 빼먹었다고요? 지금 저는 순살인건가요?
주변 사람들, 의사 선생님 : 그래서 의아했어요. 왜 중요한걸 안챙기고 주 40시간 근무하는 정규직 바리스타일을 골랐을까? 왜 이렇게 모든 것을 확인 없이 빠르게 진행했을까?
나 : 저는 빠르게 일상을 찾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빼 먹은 것은 무엇인가요?
주변 사람들, 의사 선생님 : ‘글쓰기’요.
이제야 나의 혼란스러움이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첫 퇴근 후 느낌 혼란은 “이 정규직 바리스타 일을 하면 절대로 글 못쓰겠다”에서 비롯된 불안감과 우울이었고, 글쓰기가 없는 내 일상은 철근을 빼먹은 부실공사 아파트와 다를바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어떻게든 잘 해결 되겠지 생각했지만, 내 일상을 잡아주는 철근 없이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슬래브가 무너진 것처럼 나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깔끔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급하게 세웠던 재건축 계획은 지어졌어도 조만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을.
결국 나는 정규직으로 들어간 카페에 일주일도 안되어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물론 나의 불안정한 상태에 대해 한치의 거짓말 없이 말했고, 담당 점장님은 불쾌한 기색 하나없이 퇴사 절차를 안내해주셨다. 며칠간 혼란스러움으로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극심한 우울과 불안의 늪에 빠져 지쳤던 나는 그제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록 그 짧은 과정에서 나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희생해야 했지만 끝끝내 나는 다시 나를 부등켜 안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또 살아야지. 다시 희망을 가져야지.”
입사를 했다 일주일만에 폭풍을 겪고 퇴사한 후 며칠이 지난 어느날 느즈막히 눈을 떴다. 아침 일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곧장 일기를 썼다. 잠에서 덜 깼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쭉 써내려갔다. 그리고 서른다섯의 나에게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이루고 싶은 꿈이며 다가갈수 없을것 같아 가장 두려운 존재라는 걸 써 내려갔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어려운 상황을 그 길에서 마주칠까 두려워하는 생각들을 썼다. 그렇게 삼 십분 남짓일지 모르겠는 시간을 써내려가다보니 마음에 작은 알맹이 같은게 생겼다.
그 알맹이는 내가 일상을 다시 회복하려면 글을 써야한다는 믿음이다. 글쓰기로 살아가는게 불안정하고 두려운 일임을 알지만 내가 이 일 없이는 일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고 다짐했다. 아직은 다이아몬드 처럼 아주 단단한 알맹이는 아니지만, 거기서 부터 내 일상의 재건축을 시작해야겠다고 느꼈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내 속의 작은 알맹이를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