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규칙 없음
책을 읽으면서 꼰꼰 건축에 답답함을 느끼며 내 성향과 회사의 시스템이 좋은 합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새로운 생각이 피어올랐고 이에 따라 회사에 대한 불만도 커져만 갔다.
꼰꼰 건축은 왜 이렇게 보수적인지, 일은 시키는 것을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정치에 권력 싸움에, 결재 받을 건 왜 이리 많은지. 이렇게 불만만 늘어놓고 다니면 계속 부정적인 감정만 남을 것 같았다. 아쉽게도 나는 내채공 만기까지는 회사에 다녀야 하는데, 불만만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소비적인 일인가! 그래서 오히려 회사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더더욱 회사가 미워서 퇴사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면 내가 후회할 것 같았고 반대로 희망적인 이유를 가지고 퇴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을 바꿨다.
‘내 잘못도, 회사 잘못도 아니야.’
먼저 회사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똑같이 내 탓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누구 한쪽의 잘못이 아니라 나와 꼰꼰 건축은 그냥 안 맞는 조합인 걸 인정 해야 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꼰꼰 건축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아서 지원서를 넣었고 회사도 나를 뽑을 때 같은 생각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합이 잘 맞지 않는 걸 한쪽 누구에게만 탓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회사에는 정말 변수들이 많았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도 누구와 일하는지도 변수였다. 나에게 가장 큰 변수는 그 누군가와 내가 맞을지가 변수는데 다행히 1년 차에는 용 대리님과 잘 맞아서 괜찮았고 제천 프로젝트는 김 부장님과 잘 맞아서 일을 수행해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본 몇 개의 프로젝트는 맞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불만도 많았었다. 어쨌든 잘 맞는지 보려면 직접 일해봐야 알 수 있다. 또한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할지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일이 들어오면 매출을 위해 일하는 게 회사니까 결국 하게 되었지만.
회사도 나와 일하는 것에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을 것이다. 나도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첫 번째로 가족이다. 가족 행사가 있거나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회사로서는 손해 보는 것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100%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고민도 있고, 거주하는 집에 대한 문제라거나 내가 아파서 일을 못 하는 것도 변수일 수 있다. 나도, 회사도 어느 정도 선 까지는 내 사생활에서 오는 임팩트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월급이 깎이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나도 회사에서 야근을 하거나 주말 출근을 하면서 서로 돌봐주듯이 그렇게 주고받았다.
하지만 좋게 하려고 해도 안 맞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런 것이 정말 누구의 잘못도 아닌거다. 원래 꼰꼰 건축이 그런거고, 원래 내 모습이 이런 거다. 물론 서로 본연의 모습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일하면서 알아가는 거다. 막상 꼰꼰 건축의 환경에서 일해보지 않으면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리스크를 안고 회사도 나를 채용하고, 나도 회사에 입사했다.
사실 안 맞는 건 화가 난다기보다는 안타까운 일이다. 나로서 아쉬운 건 회사와 내가 좀 더 맞았으면, 내가 회사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요즘 같은 대퇴사 시대에 근속연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가끔가다 보면 회사랑 잘 맞아서 오랫동안 다니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잘 맞는 회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으니, 요즘 같은 시대에는 평생직장을 생각하게 하는 회사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 아닐까 싶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은 사람도 부럽지만, 자신에게 맞는 회사를 찾은 사람도 무척이나 부럽다. 역시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나 보다.
어쨌든 나는 더 이상 회사나 나 자신을 탓하지 않기로 했고 사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잔잔해졌다. 부정적인 마음이 줄어들어서인지 회사 생활도 차츰 평화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