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운전할 때 여간해선 전화기를 들지 않으신다. 차내에서 전화를 먼저 거시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되고, 가끔씩 업무상 오는 전화도 간단히 받고 운전 중이라 이따 전화한다며 금세 끊으신다. 여든 살 노인도 환갑 먹은 자식에게 길 조심하라고 한다더니, 안전, 안전, 안전은 내가 운전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 친구들, 나의 세대 남자들에게 있어 전화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역시 운전할 때이다. OECD 국가 시민들 모두가 시시각각 바뀌며 집중력을 빼앗는 화면의 노예가 된 SNS와 숏츠의 시대, 유일한 구성 요소가 나긋한 목소리인 라디오나 전화는 더 이상 일상에서 찾는 컨텐츠가 아니다. 그래서 손도 눈도 통제된 운전을 할 때, 그마저도 온전하게 집중을 다하기가 싫을 때 우리는 전화를 건다.
아버지의 유전적 뿌리 덕분인지, 수면 공부법 마냥 수도 없이 속삭임 당한 학습의 효과인지 나도 운전을 하다 전화를 할 상황이 오면 멈칫, 머뭇거리게 된다. 낯선 길을 내비게이션 찍고 갈 때는 여간해선 전화를 하지 않고, 익숙한 길에서 난잡하지 않은 도로 상황일 때에나 전화를 한다. 나름 안정된 주행 중에 가끔 아버지나 어머니가 생각나서 안부 전화를 드리면, 일-이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운전 중이니? 운전은 항시 조심하고 전화는 가급적 하지 말아라’, 하고 이내 끊으신다.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우리 과에는 전공 교수님이 직접 오셔서 몇몇 신입생을 맡아 학교 생활을 지도해 주시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를 담당하셨던 교수님의 첫인상은 나긋하고 친절하신 캐릭터셨는데, 첫 수업부터 유독 강조하신 금기 사항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오전 출근 시간(8-10시)에 함부로 전화를 걸지 말라는 것(문자도).
“여러분이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 연락처로 물어보거나 문자나 메일을 보내도 괜찮아요. 하지만 내가 뻔히 운전하는 시간에 전화나 문자를 보내는 행동은, 이건 사실상 나보고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운전 중 수신된 연락을 살의를 가득 품은 사이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교수님이기에, 나를 포함한 신입생들은 ‘언제든지’ 학교 생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는 신신당부에도 번호 하나 누를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운전은 안전과 직결되기에 음악도 자제하고 최대한의 집중을 하라고 하시긴 했지만, 그렇다고 걸려온 전화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해 시도라고까지 말하진 않으셨다. 당연하게도 전화를 받고 송신인에게 대뜸 화를 내신 적도 없고. 하여튼, 뭐든 적당한 게 좋단 생각이 든다.
우리 세대가 운전 중 전화에 관대한 것은 블루투스가 차에 당연히 등록된 기능인 시대부터 운전을 접했기 때문일까? 과거, 운전 중 전화를 하는 행동은 경미한 음주 운전 수준의 위험도를 가진다는 - 사고 확률이 3배 더 높다 했었나 - 뉴스/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건 아마 화면을 직접 보고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는, 한 손으로 귀에 밀착해야 하는 전화기 시절이기에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블루투스 전화도 운전에 투자할 집중력의 일부 지분을 가져가긴 하겠지만, 음주 운전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사실 요즘에는 그것보다 운전 중에 카톡을 하고 인스타를 위해 화면을 보는 미친 행동들이 꽤나 만연한 것이 더 문제다.
오늘 친한 형과 이런저런 연락을 하는데, 이렇게 메시지가 왔다.
“야, 나 이제부터 운전하니까 심심하면 전화하셈 ㅋㅋㅋ”
아버지와 지낸 세월이 더 길다 보니 ‘이제부터 운전하니까’라는 구문 뒤에는 어째 ‘이따 연락하자’가 나와야 할 거 같았는데, 짧은 지루함을 덮기 위해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요청이 이 날따라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작고 간접적인 고백이 아직까지 설레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운전하느라 심심해서 걸었다는 전화와 굳이 시간을 내서 내게 걸어준 전화가 괜스레 구분되기도 했는데, 근래에는 어찌 되었든 나를 떠올려주고 연락하려는 의지를 행동에 옮겨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 뭐, 자기 말만 내내하다 도착했다고 뚝 끊어버리면 괘씸할 때도 있긴 하지만.
아버지는 요즘 매일 여섯 시쯤 산책을 하시고, 길을 걸으실 때면 종종 내게 전화를 거신다. 그 시간이면 나도 퇴근길이거나 저녁 약속이 있기에, 마냥 길고 편하게 받기가 어려운 상황일 때가 많다. 아버지는 아홉 시, 열 시면 일찍 잠자리로 주무시러 가버리신다. 가끔 좋은 소식이 생겨 전화를 드릴까 해도 어째 그런 마음은 밤과 운전대 앞에서만 드는지. 내 효성도 참 청개구리의 마음이다.
2호선을 타고 사당역에 내려, 4호선을 기다리는 안전승강문 건너편 의자에 앉아 글을 적는다. 매끈한 검정 유리 안엔 누런 타일 벽 앞 벤치에 앉아 구부정하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내가 정반사되어있다. 좋은 소식도 전할 겸 아버지가 생각나 전화를 할까 하다, ‘떽’ 소리 들을까 싶어 그냥 앉아서 이렇게 일기를 쓴다.
아버지는 지하철역, 공공장소에서 전화를 거는 아들에게는 뭐라고 하실까. 그래도 운전 중에 걸려온 전화보단 덜 혼나지 않을까 - 적어도 내가, 당신의 자식이 전화 때문에 다칠 일은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