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의 엄마
2014년 4월 16일 나는 돌이 갓 넘은 아이와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때처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여객선 침몰’이라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평소 아이를 위해 티브이를 잘 켜지 않는데 그날은 티브이를 틀어놓고 아이들이 구조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작고 소중한 내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루 종일 눈물을 훔쳤다.
‘나는 이 아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
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숨 막히게 무겁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이 작은 아이가 앞으로 만날 수많은 결정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니… 정말 나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며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오늘 먹이는 간식 하나, 보여주는 세상까지 온통 다 부담으로 무거웠다. 언제까지 나는 이 아이의 앞 날을 걱정할까? 유치원? 성인? 이 부담감은 언제쯤 사라질까?
‘아! 나는 눈 감는 그날까지 이 아이의 앞 날을 염려하겠구나’라고 깨달았다. 부모라는 존재는 평생 자식을
가슴에 품고, 그들의 안전과 평안을 기도하는 사람이구나…
자수를 혼자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다른 사람에게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검색 끝에 여러 선생님을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작업을 하는 선생님의 수업이 궁금했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10시부터 12시 반 선생님의 수업시간이었다. 대책 없는 나는 수업료를 오빠에게 빌리고 부모님께 아이들을 부탁했다. 친정부모님은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김포에서 성북동까지 한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오셨다. 오직 딸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서…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부모님께서 도착하셨다. 아이 둘과 나는 짐을 싸서 아버지 차에 올랐다. 구불구불한 성북동 길을 지나 광화문이 나오면 내가 먼저 내리고 아이들과 부모님을 보내드렸다. 두 아이를 보냈다는 죄송한 마음과 함께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1층에서 커피를 시키고 2층에 올라가면 많은 여인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수를 놓고 있었다. 기초 시작반으로 열 명 정도가 모인 자리에 앉아서 재료들을 꺼냈다. 보드라운 원단에 수틀을 끼우고 울지 않도록 팽팽하게 당겨 놓는다. 그리고 오늘 쓰기로 마음먹은 실들을 꺼내두면 수업 준비가 끝난다. 선생님의 설명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내 것으로 모두 담기 위해 온몸을 집중한다. 하나하나 수를 놓다 보면 2시간 반의 시간이 아쉽게도 훌쩍 지난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수를 되짚어 보며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빠르게 몸을 움직여 짐을 챙긴다. 예쁜 카페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눈길을 끌지만 ‘다음에 아이들이 크면 와봐야지, 다음에… 다음에…’ 다음을 기약한다. 뛰고 있지는 않지만 바쁜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그래봐야 10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 맡겨둔 아이들을 얼른 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엄마는 그렇다. 맡겨둔 그 마음이 죄인이다. 엄마는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훨훨 꾸지 못하는 딸이 안 쓰럽다. 더 도와주지 못하는 그 마음이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