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영웅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살핍니다. 다섯 살 되던 해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어린 임영웅도 그러했던 듯합니다. 홀로 되신 엄마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궁핍한 삶이었지만, 엄마는 “영웅이는 울지 않았어요. 항상 엄마 내가 뭐 도와줄까? 가 인사였어요”라고 말합니다.
주차장 안 녹슨 쇠 양동이에 얼굴 광대를 찧어 왼쪽 뺨을 깊이 베였을 때에도 상처에 약을 바르며 엄마가 눈물을 훔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 내 얼굴엔 나이키가 있어! 이거 보조개 같지 않아?”라며 자신의 얼굴 상처 보다 엄마의 마음의 상처를 먼저 어루만졌다고 합니다. 가진 백은 없었지만 중학교 삼 년 내내 반장이 되어 힘겹게 일하시는 안쓰러운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 했습니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는 실용 음악 학원에 간다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친구는 학원 자체 시험에서 떨어지고 자신만 척 붙고 맙니다. 이때부터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한 임영웅의 아르바이트 인생이 줄기차게 펼쳐집니다. 편의점, 카페와 식당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를 책임지는 사람이 됩니다. 무명 가수로 데뷔한 후에도 행사 스케줄과 병행하면서 택배 상하차 알바와 군고구마를 팔며 보컬 팀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함께 월세방에 동거하던 후배 가수는 그때 임영웅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형이랑 살면서 트로트 가수를 꿈꾸며 가요제를 다니던 때였는데 여행을 가기 전날 밤 자신이 잠들었을 때 임영웅은 쪽지와 함께 지갑에 5만 원을 넣어줬다고 합니다. ‘맘 편히 다녀오니라 -형-’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지만 주위를 먼저 챙기며 그 가난을 스스로 헤쳐나간 사람, 첫 번째 영웅의 모습이었습니다.
영 미스터트롯은 아버지가 하늘에서 엄마에게 드리는 선물이라는, 효심영웅이 있습니다
막상 트로트 가수가 되었지만 그의 한 달 벌이는 30만 원. 모든 무명가수들이 그렇듯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노래하면 민폐일까 봐 살아남기 위해 비상구에서 연습을 하곤 했답니다. 2014년 현 소속사 대표님을 처음 만났을 때 대표님께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어린 마음에 ‘멋진 가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때 대표님께서 우리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께 위로가 되고 감동을 드릴 수 있고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가수가 되도록 노력해 보자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그렇게 노래를 불러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트로트는 나이 드신 분들이나 듣는 한 물 간 노래라는 인식 때문인지 군중들이 밀집된 무대에 서는 일이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회가 찾아옵니다. 전 국민 누구나 아는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이었습니다. 먼저 경연이 펼쳐진 <미스트롯>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기에 그에게 이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하늘이 주신 일생일대의 찬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의 하나 하늘이 도와 일등이라도 한다면, 그 상금으로 1년 전 수첩에 써 둔 ‘엄마에게 생일 선물로 1억 주기’도 지킬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지 <미스터트롯>의 임영웅 무대는 유독 어머니로 시작해 아버지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홀로 남겨져 아들을 키우신 어머니와 먼저 떠나가신 아버지를 향한 사모곡과 사부곡은 트로트 가락에 유난히 짙은 감동이 배어 듣는 이들을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드라마틱하게도 결승 생방송이 있던 3월 12일은 임영웅 아버지의 기일이었습니다. 경연을 마치고 드디어 <미스터트롯> 진으로 트롯왕좌에 오른 임영웅은 그날 우승 소감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상은 엄마 혼자 남겨 둔 것이 미안해서 하늘에 있는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것 같아요"라고요. 노래로 한 번, 우승 소감으로 또 한 번 시상식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노래실력 보다 부모님을 향한 효심이 더 애틋했던 임영웅의 무대는 듣는 사람도 숨 죽이고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듣게 만드는 굉장한 마력이 있다고 음악적 평가를 받았습니다. 후일담이지만, 치열하게 경연 전쟁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탈락자를 위해 위로 통화나 문자를 보낸 경연 멤버는 임영웅이 유일했다고 합니다.
<미스터트롯> 왕좌에 오른 이후 임영웅은 정규앨범 1집 음반 발매로 각종 음원사이트의 차트를 올킬합니다. 전석 완전 매진 콘서트 신화를 만들어 내며, 임영웅의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선 피가 튄다는 피케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냅니다. 아버지가 남겨 주신 목소리로 엄마와 세상을 웃고 울게 만들며 가요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사람, 두 번째 영웅의 모습이었습니다.
웅 끊이지 않는 미담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진짜 영웅이 있습니다
임영웅이 영웅다운 모습은 우승 후의 일일 것입니다. 사람은 안 좋을 때도 보고 잘 될 때도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미스터트롯> 진이 되기까지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이라면, 이후의 삶은 인간 임영웅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타덤에 오른 임영웅은 TV조선을 떠나 임영웅이라는 자신의 콘텐츠로 최정상에 오르게 되면서 거대 뮤직 플랫폼들인 하이브, CJ ENM 등 대형 기획사들의 엄청난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심보다는 어려울 때 한솥밥을 먹으며 커왔던 인연이 더 소중한 임영웅이었기에 기존 1인 소속사인 ‘물고기뮤직’과 의리를 지키며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답니다.
작은 인연이라도 한 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여기며 은혜를 갚는 임영웅. 어린 시절, 자전거에서 넘어져 다쳤지만 약 살 형편이 안돼 처치를 못했던 상황이었답니다. 그때 그를 치료해 주셨던 동네 식당 이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늦게나마 ‘라디오스타’에서 전하며 지금도 방문해 그 이모 식당은 팬들 사이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2022년 서울가요대전 시상식에서 ‘붐’은 자신이 아는 모든 연예인 중 가장 솔직한 사람이 임영웅이라고 말합니다. 방송에서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똑같은 사람이라고요. 90도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이나 물건을 주고받을 때 한 손은 가슴에 두는 예의 바름이 몸에서 배어있는 임영웅은 콘서트 또한 진심을 다하기로 유명하답니다. 무엇보다 관객을 위한 배려가 남다르답니다. 연령대가 높으신 팬들을 위해 공연장 안에 입장하는 순간 안내요원들이 거의 1:1로 붙어 표에 적힌 자리까지 에스코트해 준답니다. 공연 중간 어르신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이 때도 안내요원이 1:1로 붙어서 계단을 잘 이용하도록 손전등을 쏴준다고 합니다. 특히 중장년층 팬들이 오랜 시간 앉아 있는데 부담이 없도록 모든 좌석에 극세사 방석을 깔아 두고, 끝난 후 기념품으로 챙겨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합니다. 공연도 감동이지만 세심함 배려에 더 큰 감동을 받고 오신다고 합니다.
미담머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록 칭찬이 자자한 그는 오늘도 자신의 팬덤인 영웅시대와 소외된 곳을 찾아 끊임없이 나눔을 실천하며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영웅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님의 영웅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별이 되는 순간
만약, 그때-
임영웅 님이 유복한 가정에서 트롯 가수의 길을 걸었다면?
아버지의 좋은 목청을 물려받아 분명 성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한쪽 바람막이 사라진, 다섯 살의 노래
자신보다 홀로 된 엄마의 상처를 더 감싸던, 열두 살의 노래
없는 형편에 음악 하려 학원비 마련하던, 고등 알바의 노래
기타 들고 기약 없는 날을 튕기던, 월세 단칸방의 노래
삶이 켜켜이 쌓여 가슴 깊이 적신 경연장, 무명의 노래
미스터트롯으로 엄마에게 아버지의 선물을 대신한, 눈물의 노래
이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영웅에 감동하는 것은 영웅담만이 아닙니다. 그 삶의 모습이 가슴까지 울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통해 누군가를 울리는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큰 감동은 아닐지라도 작은 감동으로 누군가를 울리는 사람. 마음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나도 별이 될 수 있다.
써보자, 노트에. 작은 것부터.
(우린 누구나 별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행동하지 않을 뿐. 작은 행동도 좋습니다. 지금, 노트에 적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