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반의 교육, 삶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
같은 글 1편에 이어서-
또한 그 위에 얹어진 다양한 시선이나 여건들은 너무나도 복합적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덕에 어떤 시기에는 이주민들로 인해 주택난이 있었을 정도 였고, 그로 인해 집 값도 오르게 되었던. 혁신교육의 시초로서의 새로운 시도가 없었다면 진즉에 폐교되었을 오랜 전통을 지닌 학교지만 폐교를 막기 위해, 시작된 사투에 가까운 시도로 인해 모인, 새로운 이주민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은 그야말로 복합적이다.
졸업 후에도 우리 마을을 영원히 삶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그리워할 우리 아이들과 구성원들은 과연 뜨내기일까?
애향심과 뜨내기 그 두단어의 그 간극은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전혀 닿을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간극에서 우리같은 학교일수록 마을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 적극적이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뿐만 아니라, 마을이라는 지역 사회에서 이 학교가 ‘우리 학교’로 여겨져야지만, 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이 완성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앞서 말한대로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울 뿐 아니라 마을에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교와 마을을 우리의 고장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고 성장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학교와 마을을 떠나서도 이 곳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들을 ‘뜨내기’로 부를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이 곳을 떠난 후 학교가 위기를 만나게 됐을 때 무엇을 중심으로 위기에 대응해야 하느냐면, 결국 마을을 중심으로 위기를 함께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위기는 통폐합이 될 수도, 폐교가 될 수도 자연 재난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실례로 우리 마을에 큰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위기에 대응하고 지역민들을 위해 손을 맞잡고 일어난 것이 바로 우리 학교 학부모들이었다. 이 마을에 '청년'이라 부를만한 세대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이 우리 학교의 학부모들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문제 상황은 전국의 다양한 작은 학교나, 혁신 학교나, 대안 학교들이 겪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과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해답은 지역 밀착, 마을 중심의 교육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삶을 바탕으로 한 실제적 교육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