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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메리 Jun 29. 2023

10화. 메리를 찾아라.

[연재소설] 벚꽃 맨션의 비밀

    (9화 내용에서 이어집니다.)    

   

     “그럼 다 같이 메리를 찾아보는 게 어때요?”

    

    미지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설득이라도 하려는 듯 한 명씩 눈을 쳐다보았다.

    

   “오늘 낮에 ‘가’동 앞 정원에서 봤으니까 어디 멀리 가진 않았을 거예요.”

   

    오서가 황급히 가방을 뒤지고서, 고양이 캔 몇 개를 찾아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방에 영양 사료와 물도 가지고 왔어요. 어서 찾아봐요. 아까 잠시 봤지만, 메리의 건강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아 보였어요. 오늘 새벽부터 태풍이 온다고 했는데, 이대로라면 위험할지도 몰라요.”


    자현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고, 쌍둥이 형제는 여전히 생각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화에 모두가 비밀의 방 문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어두운 계단 실에서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울렸다.


    “이 방은 전쟁 났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건가요?”


    미지의 목소리가 헉헉대는 숨소리를 가로지르며 울렸다.


    “아니요. 저희 재단 설립자가 부인을 위해 마련한 비밀의 지하방 이랍니다. 벚꽃 맨션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죠.”


    자현이 친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유럽에서 작가 겸 교수로 활동하던 故김부석은 27년 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면서 한사랑 재단과 한목대학교를 설립하였다. 당시 가난하던 한국 사회에 유럽과 같은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제공하고자, 세계 각국의 거장을 초대하려 노력했다. 치요코도 그중 한 명이었고, 애당초 이 벚꽃 맨션은 당시 외국에서 초빙된 교수 및 강사들의 숙소로 제공되기 위해 건립되었다. 십 수년이 지난 후 유지 관리비 문제로 몇 동을 별장 형태로 분양하게 되면서, 벚꽃맨션 하면 많은 이들이 별장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치요코가 머물렀던 ‘가’동 201호는 벚꽃 맨션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었다. 김부식 설립자가 영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아내 캐리를 데려오고자 신경 써서 설계에 참여한 곳이기 때문이다. 수영을 즐기는 아내를 생각해, ‘가’동 앞에 수영장을 배치하였고, 아름다운 조경을 위해 일본에서 직접 왕벚나무를 가져와 심는 정성을 다했다. 201호의 경우 필로티 구조로 밖에서는 1층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 안에서는 비밀스러운 통로를 통해 절벽 쪽 1층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창이 정원을 향하고 있는데 반해, 비밀의 방만큼은 언덕배기 마을 아래로 부산 도심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도록 큰 통 창을 내었다. 특히 해 질 녘의 절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실은 여기 슈퍼를 관리해 주시는 분들이 저희 재단 설립자의 아드님들이세요.”


    자현의 말에 미지와 오서는 깜짝 놀라며 앞서 계단을 올라가던 쌍둥이 형제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들은 제법 살찐 뒷모습으로 묵묵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미지는 쌍둥이의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칼을 보며 혼혈이 아닌 모습에서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짐작했다.




    ‘가’동 밖으로 나오니 습한 바람이 세게 불어 네 사람을 휩쓸고 지나갔다. 검푸른 하늘이 아무것도 모르는 회색 구름을 심상치 않게 끌고 다녔다. 미지는 짧은 단발머리가 얼굴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듯 휘날려, 자꾸만 손으로 머리를 넘겨야 했다.


    “정말 태풍이 오긴 오나 봐요. 저랑 오서는 여기 잔디밭과 수영장 주변을 살펴볼게요. 두 분은 슈퍼 주변을 부탁드려요.”


    나이답지 않게 씩씩하게 지시를 내리는 미지의 머리 위로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색깔로 변해버린 하늘이 번쩍 거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많은 비가 후두두 쏟아져 내렸고 천둥소리가 벚꽃 맨션을 뒤흔들었다.

    

  “서두르자. 너희들, 특히 조심해.”


   금세 머리칼이 흠뻑 젖은 자현이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다들 흩어지던 시점에는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렸다. 굵은 줄기가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빗줄기가 어디든지 있는 힘껏 내리치고 있었다.


    미지는 ‘가’동 주변을 둘러싼 커다란 향나무부터 살펴보았다. 온몸을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잔가지들 사이로 들이밀었다. 다행히 얼굴 쪽은 향나무가 비로부터 막아 주었지만, 등부터는 인정사정없이 비가 내리쳤다. 마치 냉탕 폭포수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잔가지를 들어 올려가며 정신없이 고양이를 찾느라 향나무 옆 시멘트 벽에 팔이 여러 번 긁혔다. 얕게 패인 상처에서 피가 비를 타고 흘러내린 들 미지는 아랑곳 않고 치요코가 아끼던 고양이를 찾았다.

    

   오후에 메리가 도망쳤던 ‘가’동 양쪽 벽에 심긴 향나무를 모두 살피고 나서야, 미지는 허리를 펴고 잔디밭 한가운데로 나갔다. 신발에 진흙이 질퍽거리며 달라붙는 게 상당히 불쾌했다.


   잔디밭 한가운데에 서니, 이곳에서 치요코 할머니를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하늘을 보려고 잔디밭에 종종 누워 계시던 할머니는 그날도 여기에 누워 계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의 죽음에 얼떨떨했지만, 이곳에 오니 슬픔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따뜻한 눈물이 눈 속에 가득 차버렸다. 닭 똥 같은 눈물이 한번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하니 감정에 북받쳐 서럽게 엉엉 울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할머니와의 따스한 추억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 오를 때마다 미지는 더 큰 소리로 목놓아 울었다. 시커먼 구름은 비를 계속해서 쏟았다. 미지의 머리 위에서 하늘도 펑펑 울었다.


    수영장 쪽에 있던 오서는 한 소녀의 진실되고도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고선, 서둘러 그녀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혹시나 하고 정원에 있는 벤치 서너 개 눈길이 갔다. 그중 박스가 올려진 벤치 아래에 웅크린 검은 형상을 발견했다. 그의 눈동자가 커지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메리였다.


    “ 메리야. 이리 온.”


    오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웅크려 앉아 손을 내밀었다. 번뜩이는 눈빛으로 오서를 발견한 고양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잔뜩 야윈 고양이는 내딛는 발걸음조차도 연약하고 힘겨워 보였다. 조심스럽게 오서 곁으로 다가온 고양이는 눈이 반쯤 풀려 있는 듯도 했다. 가까이서 보자 등과 다리에 난 검은 털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고, 갈비뼈가 심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심지어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꼬리에 큰 상처가 나 털에 피가 흥건했다.


    “날 알아봐 줘서 고마워.”


    오서는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는 고양이를 안아 올리고는, 목놓아 울고 있는 미지에게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그들을 향해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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