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현생인류의 생존 치트키
나의 생활 속 작은 실천목표는 1일 1 산책이다. 하루 종일 콧바람 쐴 순간만을 고대하는 나의 반려견을 위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첨판 폐쇄 부전증과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나의 사랑스러운 비만 노령견은 집에서는 쿨쿨 잠만 자는데, 산책만 나섰다 하면 신이 나서 뛰어다닌다. 산책할 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온몸으로 알려주는데, 내 몸이 피곤하다고 또는 날씨가 안 좋다고 어떻게 모른 척 산책을 건너뛸 수 있겠는가?
혹한기의 옷 입기
몰티즈이지만 등과 귀에 얼룩 점이 있는 나의 반려견은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다. 등 길이에 맞춰 옷을 입히면 소매가 길어 절반을 잘라내야 한다. 야금야금 살이 쪄서 입양 때보다 두 사이즈 큰 옷을 입히는데 그마저도 빵빵한 배 때문에 단추는 다 채우지 못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앙상한 다리 쪽은 큰 옷이 헛돌아 다리가 빠져 벗겨지기도 한다. 특히 겨울철 산책용 올인원을 입히면 난감한 체형이 부각되면서 따뜻하기는 할까. 싶다.
엄마가 명색이 디자이너인데 어떻게 하나뿐인 외동 댕댕이에게 이렇게 안 맞는 옷을 입힐 수 있냐고. 계모라서 그렇다고. 남편은 나를 질책한다. 미안하다 아들아. 임시방편이지만 엄마가 손바느질로 겨울 외투들은 어떻게 좀 해볼게. 찬바람이 덜 들도록 몸에 더 맞춰볼게.
호모 사피엔스의 경쟁력, 바늘
현생인류의 사촌쯤 되는 네안데르탈인은 흔히들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멸종했다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비 아프리카계 인류에게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1~4% 남아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호모 사피엔스와 교배하며 흡수되었다는 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아무튼 4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한 네안데르탈인이 뒤늦게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시기에 사라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두 종 간에 어떤 식으로든 경쟁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키는 작지만 훨씬 다부진 체격이었고, 심지어 뇌 용량은 더 컸다. 언어를 사용하고, 도구와 옷을 제작했으며 장례를 치르는 나름의 '문화'를 지닌 종이었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체형으로 조금 더 발달한 언어를 사용하며 더 큰 무리를 이루어 생활했고, 더 정교한 도구를 만들고 더 몸에 잘 맞는 옷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문화경쟁력 즉 소통능력, 사냥 기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더 발달되었던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운명을 가른 발명품으로 '투창기(Atlatl)'와 '바늘'을 꼽는다. 투창기를 이용해 창을 더 멀리 던질 수 있었기 때문에 원거리에서 사냥이 가능했고, 바늘귀가 있는 바늘을 사용해 옷을 더 정교하게 제작해서 빙하기를 이겨냈다는 것이다. 특히 브라이언 페이건은 저서 ⟪크로마뇽⟫에서 '바늘'은 '불의 사용'과 더불어 초기 인류의 가장 위대한 혁신이라고 말한다. 일 년 중 겨울이 길게는 9~10개월이 지속된 빙하기에는 항상 저체온증과 동상의 위협이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바늘을 사용해서 몸에 잘 맞는 옷으로 활동성을 높였고, 여러 겹의 옷을 겹쳐 입어 기후변화에 효율적으로 적응했다.
몸에 맞춰 입는다는 것
물론 네안데르탈인도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을 만들어 입었다.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도구가 정교하지 못했기 때문에 돌 송곳으로 가죽에 구멍을 뚫어 긴 섬유나 가죽 끈을 구멍에 넣어 잡아당겨 옷을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펑퍼짐한 바지, 조끼, 망토 등 엉성한 형태의 옷만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 뼈에 구멍을 뚫어 가죽이나 섬유로 실을 꿰어 바느질을 했다. 속옷과 가벼운 셔츠, 여름용 긴 바지, 두꺼운 털외투, 가죽 부츠와 장갑을 만들어 옷의 상황별 용도를 고려했다. 여러 동물에서 얻은 가죽과 털을 혼합해 기능을 높이고,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각각의 몸에 옷을 맞췄다.
개인의 신체 특징과 활동 상황을 고려한 옷을 만든다는 것. 그것은 개성의 존중과 미의식의 발현을 위한 첫 단계이다.
개성의 존중과 미의식의 발현
원시인의 옷에 개성과 미의식이라니. 오바 좀 하지 말라. 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인류가 얼마나 옷의 장식에 집착했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러시아 북부 순기르(Sungir)에서 발굴된 9개의 무덤 중 가장 보존이 잘 된 성인 남자 한 명과 두 청소년의 유골은 후기 구석기 그라베트 문화(Gravettian culture)의 사회상을 잘 보여 준다. 이들 중 성인 남자는 붉게 칠한 편암 펜던트 목걸이, 24개의 상아 팔찌, 250개의 북극여우 이빨로 장식한 벨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유골에서 상아 구슬의 옷 장식이 총 1만 3천 개 발견되었는데, 실험 결과에 따르면 당시 기술력으로 구슬 한 개를 만드는데 한 시간 이상 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누군가의 1만 3천 시간의 가치가 이들의 옷을 장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들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이 특별했음을 나타낸다. 또한 자기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고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몸을 장식하는데 얼마나 큰 투자를 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복식사에서 옷의 착용 동기는 크게 외부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려는 실용적 목적과 인간 내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표현적 목적으로 구분되는데, 사실 둘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인류는 아무리 추워도 아무런 장식 없이는 옷을 만들지 않았고, 천 조각을 걸칠 필요가 없을 만큼 더워도 어떻게든 몸을 장식했다. 장식을 통해 아름다움, 도덕성, 종교적 신념, 사회적 가치 등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자기 배려이다. 그리고 옷은 내가 누구인지를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시각 언어이기도 하다. 옷은 나의 직업과 사회적 성취는 물론 나의 취향, 가치관,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지금 더 날씬해 보이도록 혹은 더 부유해 보이도록 옷을 잘 차려입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 나의 본질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어차피 매일 입어야 하는 옷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금 내가 입은 옷은 내 몸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하는지? 심미적 만족감을 주는지? 그리고 나답게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