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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an 30. 2022

뭐가 그렇게 서럽니?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2)

Because (2019 Mix) · The Beatles

요즘 자꾸 별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하루에 한두 번, 많으면 서너 번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눈물이 잠깐 흐르는 정도가 아니고, 10여분에서 30분 혹은 1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운전하다가. 장 보다가. 우리 루이 산책시키다가. 또 루이 약 먹이다가.

일기 쓰는 중에. 핸드폰 속 사진  훑어보다가. 또는 친구들 카톡 프로필이나 인스타그램 들여다보다가.

옷장 정리하다가. 화분에 물 주다가. 세수하다가.


뭔가 자꾸 울컥거리면서 나를 온통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이번엔 글쓰기를 통해 내 마음속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도대체 이 감정이 뭘까,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 보려 한다.




요즘 나의 반려견 루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 그래서 어제저녁 남편에게 루이를 맡기고 루이용 식재료를 사러 급하게 대형 마트에 갔다. 여기저기 많이 아픈 노령견 루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상당히 제한적인데, 식욕이 떨어져 근육량이 빠지는 것 또한 지금 상태에서는 위험하기 때문에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내가 장을 보러 간 곳은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이마트인데, 설 연휴를 앞둔 대목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카트를 이리저리 부딪히며 인파 속에서 장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요즘 수행하는 연구과제 때문에 지난주 며칠 밤을 새운 탓에, 현기증이 나고 유난히 더 피곤했다. 그래서 내가 장 보던 몇몇 물건이 담긴 카트를 한쪽 구석에 밀어 두고, 마트를 빠져나와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사실 요즘 정용진 때문에 이마트와 스타벅스 불매 운동하고 있는데, 체력이 안되니 멀리 갈 엄두가 안 났다.)


어쩌면 카페인을 다량 투여하면 힘이 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나는 혈압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사실 대학생 때까지는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헌혈 증서를 콜렉팅 하는 것을 하나의 취미처럼 여겼으니까. 그때 혈압은 정상 범주였을 것이다.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 헌혈을 했더니 우연히 그 바람을 성취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나에게 헌혈이란 행운을 가져다주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내 피를 내놓을 테니, 내 소원을 들어다오!')


그런데 20대 후반 프랑스 유학 시절, 항상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해가 짧은 유럽의 긴 겨울을 보내며 문득 깨달았다. 기압이 낮은 날, 즉 궂은 날씨에 나는 유난히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는 것을.

나와 비슷한 현상을 겪던 아시아계 친구들은 두통약 대신 진한 에스프레소 한두 잔이나 다크 초콜릿 또는 와인을 마셔보라고 조언했다. 친구들 조언대로 카페인과 알코올은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었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니까, 조금 기운이 났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네이년! 에 빠르게 정보 검색을 해 보았다.

'아니. 카페인이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알겠는데, 요즘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야? 요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ENFP 답게 산만한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목적을 잃고 헤매다, SNS 알람을 타고 들어가 친구들 계정을 훑어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돌아다닌다. 어제 회의 때 찍은 자료사진도 보고, 설 지나면 뭐 먹지 하면서 다이어트 식단 검색도 해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눈물이 툭! 하고 터져 나왔다.


아니. 왜 또 여기서 눈물이 나는 거야!

하필 내가 앉은자리는 카페 문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정면으로 보는  곳이라서, 나는 빨리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하지만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마스크로 가린 턱이 덜덜 떨리고, 급기야 어깨가 들썩들썩 춤을 추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너무 창피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야외 주차장 구석 벤치에 앉아서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어제는 그 상태로 한 시간 정도 울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에 흘끗 거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서, 후드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떨구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누가 보면 친지의 부고라도 받은 줄 알았을 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자꾸 울게 되는 까닭을.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눈물이 그나마  아는 사람 없을 때, 나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라서 다행인 건가.


예상보다 훨씬 늦게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남편은 루이를 안고서 내게 장난을 걸었다.

"루이야~ 엄마 왔다! 계모 엄마라서 아픈 아들 팽개치고 어디서 놀다가 늦게 왔나 봐~"

늘 하는 장난이지만, 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남편은 흠칫 놀라는 듯했지만 '누나 왜 그래? 갱년이 우울증이야?' 하고 웃겨보려고 농담을 한다. (우린 동갑이지만 내 생일이 더 빠르기 때문에, 남편은 가끔 '누나~' 하고 장난친다.)


뭣이라~? 개앵년~기이히~?!

그 단어가 가슴에 콕 박혀서 눈물샘을 더 자극했다. 아직 나는 뭘 시작도 못해본 거 같은데, 이제 인생의 주 무대에서 꺼지라는 거야 뭐야? 어젯밤 나는 서재 문을 걸어 잠그고, 나라 잃은 백성처럼 목 놓아 울었다.

설마. 정말? 아니야. 그럴 리가... 그런가? 아닐 거야.




지금 남편은 골프 치러 나갔고, 루이는 책상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너 왜 그렇게 우니? 뭐가 그렇게 서럽니?'


음.. 나는 말이야.

떨어진 꽃잎이 가엾고, 이 집으로 이사 와서 시들해진 콤팩타 나무가 애처롭고.

옷장에 걸린 빛바랜 옷들 보면 그거 사던 순간순간 하나하나가 모두 생생한데,

마냥 신나고 자신감 넘쳤던 그때가 너무 그립고.    

깨진 머그컵 버릴 때 이거 남편이랑 어디 어디 여행 갔다가 산 건데 생각나면서, 그때 우리가 아련하고.

기침하느라 잠 못 자는 루이 보듬으며, 루이와의 이별이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까 봐 두렵고.

연로하신 엄마 아빠 언젠가 가시고 세상천지 고아 될 거 생각하면 무섭고.

나는 그렇다.


아니, 왜? 인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은 거지?

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걸까? 다른 시공간으로 갈 수 있다는 웜홀은 어디 있어?

못돼 쳐 먹은 인간들은 저렇게 떵떵거리고 갑질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착한 이들은 왜 아프거나 다치거나, 마음에 상처 투성이일까?

내가. 우리가 한없이 불쌍하다.


인생이 원래 고난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누가 이 따위로 인간 세상을 설계했는지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다.

삶이 원래 피고 지는 것이니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다음 생에는 차라리 돌멩이로 태어나련다.


그냥.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2XyuywVao7g

Because (2019 Mix ver.).  The Beatles  (Original 1969) ℗Universal Music Gruop

갱년기 우울증? 노노노.

비틀스의 노래 ⟪Because⟫가사처럼... 세상이 둥글기 때문에 나를 깨우고. 바람이 불기 때문에 내 마음이 흩어지고. 하늘이 파랗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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