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간비행 Jul 24. 2022

타인의 고통 (3)

모피 그리고 가죽

나의 사랑스러운 반려견 루이는 경기도의 한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십수 년 전 유기견을 돕는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안락사를 피하기 위해 임시 호보 차원에서 데리고 나온 것이 인연이 되었다. 통상적으로 유기동물이 구조되어 보호소에 입소한 뒤 20일 이내 원보호자나 새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 처분된다. 한정된 공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이다. 당시 루이는 4세 추정의 수컷이었는데 원래 가족이든 새 가족이든 누군가를 만나 보호소를 나올 확률이 아주 희박해 보였다. 왜냐하면 순종 몰티즈가 아니었고 덩치가 컸으며, 결정적으로 성기가 노출되어 있어 인간에게 인기 있을만한 외모가 아니었다. 루이의 안락사 예정일 하루 전, 나는 동호회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다급한 마음에 보호소에 연락을 취했다. 그 아이는 내가 꼭 데려갈 테니 사흘만 기다려달라고. 보호소 담당자는 무척 난감해했지만 어쨌든 루이와 나는 안락사 예정일이 이틀 지난 2012년 5월 15일에 처음 만났다.


보호소 직원이 케이지에서 꺼내 품에 안고 사무실로 나올 때, 루이와 나는 서로를 멀리서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루이는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꼬리를 있는 힘껏 흔들어 댔다. 보호소 직원은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루이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들이 이래요. 자기 살리려고 온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이렇게 반가워해요.


루이는 우리가 결국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직감했던 것 같다. 임시보호를 하는 동안 우리는 정이 들어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어 버렸다. 루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나누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 되리라는 것을.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전혀 없는 남편에게도 루이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완전한 가족이다.




루이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자식은 소중하다면서, 가엾은 다른 동물 털은 그렇게 막 입고 다녀도 되는 거야?


어느 날 겨울, 무심코 모피코트를 꺼내 입은 내게 남편이 농담을 건넸다.

'그럼 이미 산 옷을 그냥 버려? 그렇게 따지면 자기도 가죽 벨트 했고, 가죽구두 신었는데? 게다가 나는 고기라도 싫어하지. 자기는 완전 육식동물이잖아. 루이 아빠가 그러면 쓰나?'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 말을 쏟아냈지만, 내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남편의 농담은 나를 무척 부끄럽고 혼란스럽게 했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어디까지 스스로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고, 스스로 정립한 가치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2년 모피를 반대한다던 Lady Gaga가 모피코트 입고 나타나 논란이 되었다. 게다가 품에는 반려견이라니! (출처: huffingtonpost.co.uk)




퍼는 안되고, 가죽은 된다?

일반적으로 모피를 반대하는 주장들은 윤리적 측면을 강조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패션이라는 허울 아래 수많은 동물이 희생되는 것이 합리적인가 라는 문제를 말한다. 이를테면 단 한벌의 코트를 위해 평균 50-60마리, 많게는 100마리의 밍크가 소요된다는 점. 

또한 경제논리에 따라 공장식으로 운영되는 열악한 모피 동물 축산 농장의 상황과 잔인한 도축과정 등에 대한 이슈도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관념이 있는 모든 동물은 죽음을 원하지 않을진대, 인간은 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동물을 학살하는가라는 문제를 거론해 양심에 호소한다.

     

그렇다면 모피가 아니라, 가죽으로 이루어진 모든 상품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 

재킷, 가방, 지갑, 벨트 같은 패션 상품뿐만 아니라 거실의 소파를 비롯해 자동차 시트 등 동물의 가죽은 우리 생활 곳곳을 채우고 있다. 심지어 작은 열쇠고리부터 필통까지, 가죽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생활 필수 원자재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모피보다 가죽제품에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털 제거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둘 다 같은 상태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털이 제거된 채 상품으로 가공되면 그 원형, 즉 도축 이전의 '동물'과 '죽음'을 연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한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모피 생산은 중단하지만, 가죽 제품은 포기하지 않는다. 


모피를 안 쓴다고 했지, 가죽 안 쓴다는 말은 안 했다. 왜냐면 모피는 촌스럽거든! Gucci 2022 Resort collection


또한 가죽은 축산업의 부산물이라는 인식이 크다. 가죽은 먹기 위해 도살된 동물에서 나온 것인데, 그냥 버리느니 제품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육식 산업의 부산물로 우피, 돈피, 양피 등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낙농업과 별개로 오직 가죽 산업용으로 사육되기도 한다. 특히 우유를 만들어내지 못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수컷 송아지는 평생 동안 밖으로  한 발 나가보지도 못한 채 사육시설 안에서 5-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가죽으로 거래된다. 




윤리 그리고 환경

윤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적 측면에서도 가죽 산업은 비난을 면치 못한다. 동물의 가죽을 피혁으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무두질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무두질에서 털을 뽑아내거나 깎으면 가죽이고, 그대로 두면 모피가 된다. 이때 부패를 방지하고 가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공정을 거치는데, 가죽산업에서는 일반적으로 크롬, 포름알데히드, 비소, 아연 등의 화합 용액을 이용한 크롬 태닝(chrome tanning)을 한다. 식물성 탄닌(tannin)을 이용한 제혁 방법으로 생산하는 베지터블 가죽(Vegetable leather)도 있으나, 더 복잡한 공정과 인력,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적은 비용으로 더 빨리 가죽을 양산하기 위해 대부분의 피혁은 크롬 태닝을 거친다.

그런데 제혁 공장들은 대체로 저개발 국가에 밀집해 있어 오염물질을 처리할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가죽은 그 어떤 의류 원자재보다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되고 있다. 

크롬과 같은 중금속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피혁 속에 잔류하여 인체에도 매우 유해하다. 크롬은 간질환과 유전적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발암성 물질이다.


가죽 무두질을 하는 모로코의 노동자들 (출처: unsplash)




여기까지 읽고 나면 '아니 그럼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가죽이나 모피나 모두 윤리적・환경적 책임이 있으니 아무것도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 동물보호단체가 제안하는 완전한 비건 패션과 비건 식단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 역시 동물을 사랑하고 모피 산업의 잔혹한 현실을 규탄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가죽 가방과 구두들을 처분하지는 못하고 있는 보통의 사람이다. 고기를 즐겨 먹지는 않지만 생선은 좋아하고, 캐시미어 코트와 앙고라 니트를 아낀다.

하지만 동물로부터 얻는 패션 원자재가 동물에게 어떤 고통을 유발하고, 인간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에 이제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덜 사고, 아껴 쓰고, 조금 더 윤리적인 기업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고, 내 소신에 따라 조금씩 실천 범위를 확장해 나간다면 루이 엄마로서 더 떳떳할 수 있지 않을까?

제인 구달(Jane Goodall)의 말처럼 세상을 바꾸는 일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지금의 선택이 자신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우리 모두가 매일 조금씩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다.

이전 12화 타인의 고통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