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꽃이다. 꽃보다 예쁜 연두다. 휴대폰 사진기 셔터가 바빠지는 계절. 사울 레이터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전시를 보고 난 뒤 사진으로 가득해진 마음에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며 이런저런 사진들을 찾아보다 헝가리 출신의 안드레 케르테츠의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뭐랄까 사진으로 쓴 일상의 시 같다고나 할까. 그것도 구구절절 산문시가 아닌 짧은 하이쿠 같이 짜여 있지만 있을 것만 남아 있는 모습으로. 레이터와 거스키 사진의 원형을 케르테츠의 사진 속에서 본다. 스펙터클한 풍경, 멋진 인물이나 정물, 근사한 장소도 아닌 그냥 거기 있어서 자연스럽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일상의 장면들을 작가의 눈으로 붙박아 정지시킨 사진들이다. (코로나 격리로 방 밖 출입이 금지된 시간 창문을 바라보다 해가 드는 모습을 찍었다. 케르테츠인 양)
"The camera is my tool. Through it I give a reason to everything around me" Andre Kertesz
카메라가 도구라는 말이, 그 도구를 통해 자신 주변의 모든 것에 (존재) 이유를 부여한다는 말이 한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그의 사진들에 담겨있다. 나는 128년 전에 태어난 이 사람이 부럽다.(요즘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를 무한 반복 듣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기 삶의 도구를 가지고 있어 그렇고 그 도구를 자유자재 쓸 수 있어 더욱 그렇다.
내 삶의 도구는 뭘까. 재능이 별 거 없이 고만고만 하니 딱히 특출 난 게 없다고 의기소침해지던 차에 눈에 띄는 말을 발견한다. 생각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 그 생각의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등장한다.
"재능 없어도 돼.. 잘 '맞는' 일 찾아 성장해야" 미나 페르호넨 창업주 미나가와 아키라의 '오래 하는 비결'을 듣는다. "저는 재단 일을 잘 못했어요.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서툰 일을 반복하면서 실력이 쌓이는 것에 흥미를 느꼈지요. 패션은 저라는 사람과 너무 동떨어진 일이었고, 그래서 이 일을 하는 미래의 제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어요."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재능 없음을 핑계 삼아 뭉그적거리며 모른 척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잘해서 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잘하고 싶어 하는 일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서툰 일을 반복하며 실력이 쌓이는 걸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볼 인내심과 끈기가 없었다는 걸 인정한다. 잘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한 땀 한 땀 열과 성의를 다해 매일매일 해 나가는 것. 잘 못해도 나아가고 실패해도 나아가고. 삶이 잘 다듬은 한 편의 시가 되도록 갈고 닦는 것에 지치지 않는 인내와 끈기, 그 게 내가 가지고 싶은 인생 도구다.
중요한 건 잘하고 싶은 일이 있냐는 건데. 생각해 보자. 글도 잘 쓰고 싶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싶고, 노래도 잘 부르고 싶고, 운동도 잘하고 싶고(나열해 보니 음.미.체.)... 문제는 잘하고 싶은 것이 산만히 많고 음.미.체.가 하고 있는 일과 크게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일도 잘하고 싶은 게 함정이다. 음미체와 일이 어느 경지에 올라 가면 한 지점에서 만나려나.(왠지 그럴 것만 같지만) 잘 모르겠다. 오십 줄이 넘었는데도 아직 이런 걸 하나 모른다고! 지금 한심하지만 성장형 인간이니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지혜로워지 길 기대하자. 이 글은 확신이 없더라도, 잘 못하더라도 잘 하고 싶은 것들을 그냥 해 나아가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격려이자 다짐이다. 내 삶의 도구로 하루하루를 벼리는 것이 그대로 일상의 시다. 안드레 케르테츠가 그의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은 일상이 그대로 시가 되었듯이.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
2주 동안 새 글을 안 올리니 브런치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다. 꾸준함. 그래 맞다. 그래서 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