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오백이십 번의 월요일
늦잠이다. 허겁지겁 집을 나선다. 차에 시동을 거는데 꿈쩍 않는다.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하더니 인중에도 맺힌다. 회의에 늦겠다. 일요일 밤이면 월요일 아침에 생기지 말았으면 하는 시나리오를 괜히 상상하며 맘이 가라앉아 울적하다. 여덟 살 이후 대부분의 월요일은 심기일전이 필요한 날이었다. 주말에 껐던 스위치를 켜야 하는 시간, 재 부팅에 두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천육백구십 번 정도의 월요일이 나를 지나쳐 갔어도 월요일은 피곤하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시간을 7일 단위로 만드신 그분이 원망스러워진다. 3일이나 4일이었으면 좋지 않았겠나. 그런 바람을 비웃으며 50년이 넘도록 내 삶은 7일 단위로 정확히 쪼개져 흘러갔고, 그중 천오백이십 번의 한주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주말을 지나 월요일에 다시 출근하는 진자운동으로 채워졌다. 내 역사책의 수많은 페이지가 틀림없이 정확한 진자운동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인간의 유구한 역사로 시선을 돌리면 산업혁명 이전에는 굳이 정확한 시간을 알 필요가 없었고 월요일을 식은땀 흘리며 맞이하는 진자운동도 없었으리라.
재 부팅을 반복적으로 강요하는 현재의 월요일은 폭력적이다. 공장과 기계가 만들어 낸 폭력이다. 짧은 역사의 이 진자운동은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계를 장악했다. 그 장악이 너무 교묘해 원래 시간이란 그렇게 정확히 쪼개져 7일 단위로 흘러가는 거라는 과학적이지 않은 결론을 당연한 자연으로 수용하게 만들었다. (아니, 7일 단위로 흘러가는 게 과학적인 건가?)
하지만, 도대체 누가 돌리는지 결코 알 수 없는 공장의 톱니바퀴 아래에서 겨우 놓여 난 사람이 “오늘 무슨 요일이지” 하는 질문을 듣게 되면 문득 깨닫는다. 시간에 무슨 딱지가 붙은 것도 아니고, 월화수목금토일이라니. 누가 이름 붙이기 전 자연의 리듬이었던 시간을 기억하는 건 중요하다. 그 게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첫 인식이므로. 부단한 진자운동을 잠시 멈추고 월요일 딱지를 하루 떼어보자. 일요일이 48시간이 되도록. 늘어난 일요일에 놀러 나가면 월요일도 세상 한산해 한가하다. 언젠가 진자 운동에서 이탈하여 쭉 일요일로 점철되는 시간을 맞는다면 일요일 대신 월요일 딱지를 그리워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아직 진자 운동 중인 지금 월요일뿐만이 아닌 화요일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의 딱지도 떼어 뒤죽박죽 섞어 붙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순간이어도 그렇게 이름을 뗀 시간을 보낸 후에야 조금은 다르게 보고 인식하는 눈과 뇌를 가질 수 있다 믿기에 매일 호시탐탐 그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