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조탁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관심 밖 일이다. 그러다 어느 밤 라디오에서 DJ가 읽어 주는 시 낭송을 듣다가 시인의 의도와 다를지 모르는 맹렬한 욕구가 솟구친다. 단어들을 붙이고 이어서 시를 지어 보고 싶다는. 이 말과 저 말을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 짧은 시 한 편을 만들어 보려다 이 것도 시인가 겸연쩍어 그만 내려놓는다. 시를 지어 본 지 꽤나 오래되었다. 마지막으로 시를 썼던 게 언제였더라 더듬어 보니 중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 만들면서 적었던 시에 기억이 가 닿는다.
친구들에게 건넬 카드는 짙푸른 바탕에 흰 눈이 펄펄 내리는 밤 풍경이었는데, 눈 사이사이 시를 적었다. 짧은 해가 지고 난 저녁 그 저녁의 푸른 어둠을 닮은 깊은 청색을 골라 꼼꼼히 칠하고 조금은 쓸쓸하게 눈 덮인 길과 이제 막 쏟아지는 함박눈을 점점이 그려 넣고는 그림에 어울리는 시 한 편을 지어 적어 넣었다. 그림의 색깔과 분위기는 어렴풋이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데 그림과 함께 했던 시어들은 눈발 날리 듯 훨훨 날아가 버렸다. 같은 카드를 여러 장 만들었으니 한 장쯤 남겨 둘 걸. 내 십 대의 편린을 미련 없이 다 줘 버렸다.(미련이란 게 없던 때다.) 친구들은 그 카드를 아직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훨훨 날아 간 시어들을 불러 모아 지금 읽는다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투박하고 엉성한 시라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그건 그대로 가진 힘이 있을 텐데 오랜 세월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온 조각이 그 안에서 작게나마 반짝이고 있을 테니. 그 작은 조각을 다시 꺼내 볼 수 있다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문득 멀고 먼 오래된 옛날 추운 겨울 저녁 친구들에게 줄 카드를 기쁜 마음으로 만들며 고심 끝에 썼던 시 덕에 여기까지 무사히 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DJ는 시인의 의자라는 코너에서 한 편의 시를 읽어 준다. 앉으면 시가 술술 써지는 의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해도 시라는 게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게 내게 의자가 없어서는 아닐 텐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남에게 내어 놓을 필요도 없다.(요즘엔 크리스마스 카드도 직접 만들어 보내지 않으니까). 나만 혼자 보는데 그냥 한 수 지어보자. 내 방 시인의 의자에 앉아 언어를 조탁하는 순수한 기쁨을 만끽하며. 이번엔 이 시 조각들을 버리지 말고 적어 보관해 두기로. 언젠가 그 시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