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른 나라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있다.
크게 특별하지 않지만, 진한 실감으로 이어지는 정말 별거 아닌 순간들.
노트북이 고장나서 수리를 해야 했던 날이 있었다. 고군분투 끝에 노트북 스크린을 바꾸러 간 날, 수리하는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1층이 카운터였고, 2층에 두명씩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세네개 위치해있는 구조였다. 한쪽에 자리잡고 가져온 프린트물을 보고 있었는데, 열살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나타나선 공간을 쭉 둘러보더니 야물딱지게 테이블을 붙여 자리를 만들었고, 부부처럼 보이는 두 어른이 음료와 빵을 들고 올라왔다. 그렇게 2인용 테이블을 두개 붙인 자리에 둘러앉은 네 사람은 휴일 오후를 소소한 수다로 보내는 것 같았다. 두 어른의 대화는 굉장히 낮은 소리로, 문장의 높낮이도 크게 바뀌지 않은채 조근조근 이어졌는데 그 소리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겹쳐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정말 청아함 그 자체였던지라 불쑥 불쑥 들려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졌다. 태어나서 미세먼지 한번도 마셔보지 않은 목소리란 바로 이런 거구나. 평화로운 주말 오후를 소리로 표현한다면 딱 이런 소리겠다. 이런 평화의 청각화를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었을까. 내가 들을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그 공간과 분위기와 소리들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있어' 라는 실감이었다.
또 다른 소소한 순간은, 길거리에서 꽃을 든 사람들을 지나는 순간들이었다.
덴마크에 도착한 첫날에도, 이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때에도 자주 꽃을 든 사람들을 스쳐지날 수 있었다.
이국이다, 라는 실감이 난 가장 큰 포인트는 빈도도 빈도지만 꽃을 든 사람들이 굉장히 다양한 모습이어서였다.
아주 앳된 얼굴의 작은 아이,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청년, 백발의 노인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꽃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색색의 꽃들이 많은 이들의 손에 들려 오고가는 모습이 굉장히 독특하고 또 사랑스러웠다. 이제까지 나에게 꽃은 졸업식과 같은 경조사때 주고받는 비일상적인, '시기를 타는' 존재였고 그렇기에 꽃은 더더욱 낭만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낭만의 존재가 일상적인 존재가 된 것을 목격하는 순간들은 그렇게 소소하게 실감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도 익숙해지면, 실감이 희석될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한국에서 '돌아왔다' 라는 실감은 어디서 느낄지도 궁금해진다.
아마도 손가락을 몇번 움직이는걸로, 빨갛고 진한 떡볶이를 문앞으로 받아볼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