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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Jun 13. 2020

<14> 애인 말고 친구랑 잘 이별하는 법



진부한 표현들은 대체로 맞는 말을 한다. 어떤 끝이던간에, 끝이라는 것에는  이별이 기획 상품처럼 딸려 있다. 학기가 끝이 났고, 코로나를 함께버티며 덴마크에 남아 도란도란 함께 살아왔던 친구들 떠날 시간이 되었다.


 오늘 새벽 안녕을 주고받은 친구들은 인도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인도 정부에서 '지금 제시하는 선택지들이 아니면 덴마크에 거주하고 있는 인도 국민들에게 귀국 기회를 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메일로 두어 개의 항공편 선택지를 제시했다고 했다. 답장으로 비행기를 타겠다는 회신을 하면, 우선순위 (1순위는 임산부, 환자 등이고 2순위가 교환학생들이었다고)에 따라 항공편을 배정받는 듯했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정말이지 위독한 상황이라서,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셔서, 돌아가서 인턴을 해야 해서 등 개인의 사정은 늘 그렇듯 제각각이었지만,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메일 두어 통이 오고 간 뒤, 그들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고작 삼일뿐이었다.


그들은 하루는 다시 가보고 싶은 곳에 다녀오는 것에, 하루는 짐을 싸는 것에, 하루는 식탁에 둘러앉아 이별 파티를 하는 것에 삼일을 썼다. 오랜 시간을 타국에서 보낸 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에서 오는 울렁임 반, 이곳에 더 남고 싶다는 섭섭함 반이 뒤섞인 얼굴들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모든 유럽 여행을 취소했어야 했고, 온라인 수업만을 지겹도록 듣고, 기숙사 칩거 생활을 했을지라도 지금 교환학생을 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모두 말했다. 함께 담배를 자주 태우곤 했던 친구에게 물었다. 뭐가 제일 그리울 것 같아? 친구는 연기를 두어 번 뱉는 시간 동안 생각을 하고는, '이 기숙사'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친구들을 버스 정류장에 배웅하러 가는 길


새벽 다섯 시 반, 나를 비롯해 배웅을 하기 위해 일어난 다른 이들까지 하나 둘 모여 캐리어를 나눠 들고는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사람답게 커다란 가방, 수면베개, 물통, 간식 가방 따위를 주렁주렁 매고 있었다. 아홉 개의 캐리어가 도보 위를 덜덜덜 하며 굴렀다. 캐리어 바퀴가 땅을 구르는 소리가 울적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이 소리와 함께 기억하는 감정은 보통 여행 전의 설렘뿐이었는데. 12분 후에 도착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포옹을 나누고, 잘 지내고 우리나라에 꼭 놀러 오라는 보통의 안부들을 나눴다. 캐리어와 사람 모두 빠짐없이 태운 버스에 손을 흔드는 것으로 마침내 이별을 마쳤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 이별한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만큼 정이 든 친구들이었기에 괜스레 마음이 그렁그렁 했다. 누구 한 명이 울기 시작하면 다 같이 울 거 같지 않냐?, 나 울면 못생겨서 안돼, 그럼 보기 좋게 울면 울어도 되냐? 남은 사람들끼리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다시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줄줄이 캐리어


돌아온 기숙사는 예상했던 대로 조용했고, 인기척이 없었다. 그 친구들이 자주 쓰던 초록색 그릇들과 줄줄이 세워두고 간 위스키 빈 병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함께 깔깔대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친구랑 이별하는 법을 아는 것도 필요하겠다. 좀 더 잘 안녕을 주고받고, 좀 더 잘 다음을 약속하거나, 좀 더 잘 그들의 빈자리에 익숙해지는 방법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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