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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Feb 24. 2023

휴리스틱 인생

얼렁뚱땅한 삶의 태도에 대한 자기반성

번역을 하다 보면 문장 구조가 너무 복잡하거나 해석이 난해한 경우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이 단어는 이런 의미인데, 이게 지금 이 문장에 쓰인다고?'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문장을 만나거나, 한 문장 안에 쉼표와 세미콜론이 몇 개씩 붙어있어 중심 문장에 딸린 수식문이 줄줄이 있고 그 수식문을 수식하는 또 다른 문장이 있는 복잡한 복문을 해석할 경우 자칫 문장 구조를 잘못 파악하기라도 했다가는 전체 해석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가 있어 참으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해석이 복잡해질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종종 문장을 뜯어보며 해석하기보단, 내 주관적인 생각에 해석을 끼워 맞추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으로 보아 이다음은 대충 이러이러한 내용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문장을 다시 쳐다보면, 신기하게도 그토록 풀리지 않던 문장 구조가 정말 내 생각처럼 해석이 딱 딱 맞아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마치 어려운 숙제를 풀어낸 학생처럼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속으로 우쭐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느낌이 든 경우 결과를 보면 십중팔구는 오역으로 밝혀질 때가 많았고, 그럴 때면 늘 기가 죽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한 때 한창 번역 공부에 몰두할 당시 대체 내가 왜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문장이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생각에 해석을 끼워 맞추려는 마음이 드는 건 능력의 문제가 아닌 어딘가 조금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 고민에 한 동안 매달린 적이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나만의 결론은 이것이 인간 본연의 사고 기능 자체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물과 현상을 해석한다.

그래서 같은 것을 보고도 저 마다 다른 해석,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해 사람들이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자기 주관대로 보는데 더 익숙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리학 용어 중에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어림짐작' 정도가 되겠는데, 우리의 뇌가 생각할 시간과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빠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을 거의 생략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일종의 자동 사고 모드' 비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길을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술에 취한 아저씨가 비틀대며 걸어오고 있다고 하자. 그럴 경우 대개는 술 취한 아저씨를 피해 돌아가거나 거리를 둔 채 조심스럽게 지나친다. 술 취한 아저씨와 자칫 시비가 붙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거나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가 그러할지 아닐지를 판단하기도 전에 별다른 의식작용을 거치지 않아도 이렇듯 조심하는 행동 반응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사고작용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상황이 아니어도 나타난 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휴리스틱을 경험한다.


저 남자는 장남이라 그런지 고지식해.
저 여자는 막내딸이라 그런지 철이 없어.
쟤는 외동이라 그런지 이기적이야.


휴리스틱은 에너지의 경제성이란 측면에서 유리하다. 

만일 일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뇌가 일일이 처리한다면 우리의 뇌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또한 진화심리적인 관점에서 해석했을 때, 위협을 마주한 경우 정보를 처리하기보다는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이는 편이 과거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그런 식으로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겠지만 이 휴리스틱의 프로세스는 사고의 과정을 상당히 생략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고 과정은 취합한 정보를 따져보고 논리적 근거를 생각하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자동 사고 모드에 너무 의존하면 자칫 아집이나 편견에 빠지기가 쉬워진다는 단점을 갖는다.


번역을 공부하면서 내가 겪었던 반복적인 실수도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과, 정보 부족으로 인해 일종의 휴리스틱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일도 그렇지만, 여기에도 왕도는 없다. 

가장 우선은 내가 자동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게 아니라, 우선은 스스로의 생각에 제동을 건 뒤, 비판적 사고를 통해 논리적으로 문제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 (매우 귀찮고 번거롭다는 사실에는 십분 동의하는 바이다) 

디테일한 상황이 맞지 않고 해석에 의구심이 남는다면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문득 내 이제껏 삶의 태도 역시 휴리스틱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까지 이어졌다. 


디테일한 차이를 보지 못하고 선악의 이분법적 구조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에게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 지로 적과 아군을 구분 지었으며,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맞지 않으면 틀린 생각이고 그들이 이상하다고 단정 지었다. 
과거의 아주 작은 성공의 경험에서 배운 한정된 공식을 삶 전체에 적용한 뒤 상황이 그 기준에 맞지 않게 흘러가면 세상을 탓했다. 


과거인 마냥 말했지만,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생각과 어긋난 행동을 하고 난 뒤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휴리스틱적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 적절한 중도를 찾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살다 보면 매 순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에서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더 나아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노력하는 수 밖에는 없지 않을까? 

그저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뿐이다. '지름길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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