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왜 하필 엄마가, 도대체 내 엄마가 왜

차라리 나였으면

by 수빈노


2019.02.04.

그 누구보다 나를 의지한다고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하고 아픈 순간들이다.

오늘은 ‘진짜인가 봐, 여기가 아픈 것 같아.’라고 말하며 여린 얼굴을 했고

나는 아니라며 손을 잡았다.

사랑해 엄마. 내가 지켜줄게 언제나.





잔인한 악몽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엄마의 몸 상태는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도 모자란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우리는, 나는 무엇을 했나? 폐부터 시작해서 간, 부신, 온갖 림프 하며 뼈 군데군데까지... 내 엄마는 천둥처럼 하루아침에 시한부 암환자가 되었다.


실패한 것 같았다. 정성껏 디뎌온 내 삼십여 년 걸음이 모두 잘못된 것 같았다. 되돌아봐도 답 모를 후회의 순간들만 가득했다. 선명한 일은 선명한 대로, 흐릿한 기억은 흐릿한 대로 모든 장면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왜 하필 우리였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현실은 원망스럽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싫었다. 이 무능한 손과 무지한 머리가 만들어낼 미래가 절절히 두려웠다. 그럼에도 지고 싶지 않았다. 되돌릴 수는 없어도, 이렇게 실패한 기분만으로 엄마를 보낼 수가 없었다. 목표라고는 하나뿐인 날들이었다. 엄마의 숨,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지키고 싶은 것이었다. 아는 것도 없었지만 지체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바닥부터 시작된 보호자 역할. 무엇이든 손에 쥐고만 싶던 그런 간절한 날들...


나는 바로 모든 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간 노수빈의 삶은 그대로 멈춘 채 ‘엄마 딸’이자 보호자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일단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 밥 정도야 뭐 당연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라... 모르겠네. 얼마나 한심한지,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지식 습득과 실전이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살림 공부 건강 공부 항암 공부. 엄마를 돌보고 지키는 것으로 온통 채워지는 하루. 모든 것이 생소한 나의 새로운 세상. 나는 예감했다. 이전의 삶은 이제 나에게 없을 거라는 것을. 이전과는 그 모든 것이 달라졌고 또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 먹어야 더 좋은지 어떤 영양제가 필요한지 어떤 환경이 좋은지 어떤 관리를 해야 하고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방법은 무엇이 있고 현재 국내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해외에서는 또 어떤지 병원은 어디가 좋고 어떤 교수가 유능한지 이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것들이 뒷받침되면 좋을지... 도무지 끝이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그 광대한 세계는 안팎으로 참 벅찬 것이었다. 몸이 바쁜 하루를 빠듯하게 보내고 나면 급한 공부를 하느라 가득 찬 새벽이 지나갔다. 엄마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며 그저 편안히 잘 자기만을 바라는 애틋함,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엄마 딸로 태어나 예쁘게 돌봄 받으며 30여 년간 받은 마음을 무슨 수로 갚겠냐만은 조금이나마 돌려드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감사한 일이었다. 오래오래 행복하자 내가 더 잘할게 엄마.


최고의 것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하나부터 열 엄마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에 들 때까지 모든 것을 집요하게 돌보고 관리했다.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톱 끝까지 온몸 구석구석 닳을까 아깝고 아플까 불안해하며 노심초사 엄마의 삶을 함께 살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보다 아끼는 타인의 존재를 처음으로 경험했고 ‘정성'이라는 마음을 배웠다. 엄마가 나에게 하셨듯 그렇게 엄마를 보살피고 싶었다. 하루아침에 아가가 된 것처럼 사사건건 보호가 필요해진 엄마 손을 잡고 천천히 걸으며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 생각했다. “엄마. 나는 아가 안 낳을래. 내 인생에는 이제 그런 거 없어도 돼. 나한테도 모성이란 게 있다면 다 엄마한테 쏟을래. 엄마한테 몰빵 할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게. 엄마는 내 사랑 실컷 받으면서 행복만 해, 건강만 해.” 엄마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것이 무슨 표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종종 마음이 무너지는 상황을 만나도 엄마 앞에 선 나는 언제나 세상에서 강한 사람이 되었다. 엄마 앞에서만큼은 모든 감정을 삼켜낼 수 있었다. 이제 나의 엄마는 엄마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엄마 딸의 애달픈 마음은 영영 모르길. 엄마의 건강과 희망만 온통 가득하길. 엄마의 몸에 처음 칼을 대게 되던 날, 항생제 반응에 꽃이 피어난 엄마 얼굴을 보고 걱정 말라며 엄마 손을 꽉 잡고 웃던 나는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태풍 맞은 파도처럼 대책 없이 들썩거렸다. 그 거리 그 날씨 그때 그 하늘, 그리고 불긋 푸릇한 엄마 얼굴까지 여전히 너무나도 생생해. 마음이 미어지는 것이 이런 걸까. 왜 하필 우리 엄마지? 왜 하필 내 엄마가 이렇게 아프게 됐지? 처음으로 엄마의 병이 눈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다잡았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리라 여기던 과거의 내 무심함에 가슴이 찢겼다. 되돌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치리라. 아니 그만 여기 이 정도에서 머물렀으면 좋겠다. 내 운을 다 줄게 내 건강을 다 줄게. 아프지 마 엄마. 제발.. 조금만 힘내줘. 조금만 기다려줘. 괜찮을 거야. 괜찮도록 만들 거야 내가.


내 남은 삶을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에 할당된 운을 다 당겨 엄마에게 숨을 더해주고 싶었다. 열심으로 선하게 지내게 되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덕을 차곡차곡 쌓아서 엄마 주려고.

가진 것을 모두 긁어모아서라도, 가진 게 없다면 새로 쌓아서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건강히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그 무엇도 할 수 있었다.

그냥 툭. 기침을 하듯 간단하게 그런 마음이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은 병마 앞에서 자주 무력해졌다.

의사조차 손을 쓸 수 없어 보이는 상황이 생겨났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 무엇이라도 붙들고 매달릴 뿐이었다.





엄마가 많이 아파요 / 015B, 윤종신


https://youtu.be/0oU-ZCJRpiY?si=T6EiPViL6A2j3V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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