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엄마의 마지막

엄마, 가지 않으면 안 돼?

by 수빈노

2021.04.24.

가장 중요한 것은 꼭 마지막 순간에 깨닫게 된다


사람의 마지막은 이런 것일까

마지막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데




엄마가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인정할 수 없다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가 이게 내 욕심인지 엄마를 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그야말로 극한의 시간이었다. 나는 자꾸 엄마를 기록하고 밤마다 그 기록을 부여잡았다. 어쩌면 좋을지 더 나은 방법은 없을지, 더 힘을 내보자고 응원해야 하는지 의사의 말대로 약을 더 늘리는 게 맞을지 헷갈렸다. 엄마는 이제 하루에 한 마디 정도를 뱉어내기도 버거워지고 있었다. 엄마가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매 순간 끝일까 무섭다가, 엄마의 버팀에 고맙다가, 미안하다 안쓰럽다 했다. 이제는 내가 울어도 엄마는 모르는 것 같았다.




2021.04.25.


“수빈아 살려줘”

산소마스크가 답답하다고 계속 벗고 싶어 하는 것을 달래고 설득하다

마구 빼버리면 급히 힘을 주어 억지로 다시 채우기를 반복.

살려달라니 엄마. 이거 빼면 엄마 숨 못 쉰다니까.



“그만해,

슬퍼하지 마 울지 말고”


첫 임종실. 엄마 외에 그 무엇도 보이지 않던 날

언니랑 교대하고 집에 오는 길 바이탈이 떨어진다는 소식에 조마조마하더니 도착하기 무섭게 다시 병원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날듯이 다다른 14층. 꽤 많은 숫자의 간호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엄마의 침대를 옮기고 있다.

"잠시 나가 계세요. 정리가 끝나면 불러드릴게요."

문밖에서 커튼 틈 사이로 엄마 얼굴을 보다 잠깐도 혼자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일었다.

나는 몰래 가까이로 가 엄마 발을 주물렀다.

"엄마, 괜찮아? 걱정 마. 나 여기에 있어."

대답 없는 엄마의 눈에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당최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모를 마지막 인사 시간을 부여받았지만 그 틈에도 자꾸만 밖으로 불러내 서류를 들이미는 바람에 그 정신없는 와중에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치의는 자꾸 포기할 것들을 설명하고 결정을 재촉했다. 그냥 엄마가 덜 힘들기만, 그 외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일단 엄마랑 같이 있게 좀 해주세요."


우리는 많이 울었고 비슷한 말들을 반복했다. 엄마는 말없이 우리를 보다 허공을 보다 했다.

엄마는 힘들어 보였지만 나는 왠지 이게 마지막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내 손을 잡아주는 엄마의 손, 미미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 힘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 감촉이 이제 정말 끝인 걸까, 혹시 그렇다면 대체 난 어찌해야 하지?

슬퍼 말라고. 울지 말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만하라는데, 뭘 그만하라는지 알 수 없었다. 알았대도 그만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밤새도록 그렇게 애가 타는 시간을 보내고 엄마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 밤을 기억하지 못했다.



2021.04.26.

16pm 석션 1 > 140선까지

19pm 심전도

21pm 석션 2 찐득찐득 가래 조금

이후에도 가래가 낀다

헥헥 힘든 거 아직. 답답하진 않다고 함

엄마는 석션을 너무 힘들어하고... 가래는 너무 위험하고..


주치의 방문 ㅡ 가래가 자꾸 문제가 될 수 있다. 많이 뱉게 독려


"졸려"

22pm 수면 시도

혀가 말라있다. 딱지가 진 것 같은 모습..



2021.04.27.

0:38

“수빈아 엄마 잘게”

계속 일령아라고 하더니, 이번엔 수빈아 라고 하네


2:11

몰핀 투여 후 30분. 여전히 잠은 이루지 못하는 엄마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마음이 아프다


가래를 뱉지 못해 나는 숨소리인 걸까?

헥 헥 소리가 난다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


몰핀 2


9:00 엑스레이



2021.04.28.

“이쁘다.”

엄마가 멍하니 나를 보다 씩 웃더니 하는 말.

엄마는 항상 예쁘다고 해줬었는데. 평생 가장 많이 말해준 사람이 엄마였는데.

엄마... 엄마.. 가지 않으면 안 돼?



2021.04.29.

몰핀 5*2

혹시 약이 두배로 들어갔을까?

하는 찰나 깊은 잠이 들더니 세 시간이 넘도록 꿈쩍을 않는다

이렇게 가버리는 건 아니겠지?

부리나케 깨워보니 초점이 허공에서 날아다니기를 한참

당혹감과 두려움이 심장에 꽂혔다

끝이란 이런 것일까?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낀다


엄마는 어디쯤에 가고 있을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한 것일까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웃는 걸까



2021.04.30.

“이제 집에 가자"

못 갈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었다

웃는 엄마 얼굴에 천국이 보인다

이래저래 힘든 몸 상태일 테지만 여전히 다 듣고 있는데

어떻게 보내


오늘도

집에 가자

배고프다

목마르다

힘겹게 뱉어내는 말에 무너져 내린다

엄마 입 속이 딱딱하게 마르고 있다

물 줘. 과일 줘.

무슨 과일 먹고 싶어?

사과.

물을 줄 수 없어서 적신 가제수건으로, 작은 구강스프레이로 겨우 겨우 입을 축여준다.

언니는 자꾸만 몰래 물을 주자고 한다. 나는 그 물로 엄마가 잘못될까 두렵다.



2021.05.01.

동공 반응 저하

왼쪽 눈 바깥쪽 눈물막

슬퍼 보이는 얼굴


찌푸려진 미간 허공을 내젓는 손

빨라진 맥박에 헉헉 가빠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엄마를 살리는지 죽이는지

돕는지 괴롭히는지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기분이 든다

엄마를 편하게 해 준다는 것에 대한 고민

보내고 싶은데 보내기 싫고

그래도 내 착한 엄마는 천국으로 갈 테니

아마도 지금보다 좋은 것이겠지


오늘은 엄마가 힘이 없어 보인다

갈 준비를 하는 걸까

이러다 또 반짝하면 우리는 기뻐 날뛰겠지

이봐 맞지 우리 엄마 가는 거 아니었잖아 하면서



2021.05.02.

다섯 시간.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다

엄마의 새 집을 둘러보고 좋아 보이는 자리를 잡기

장례식장 상담과 가장 잘해주고픈 꽃 준비, 엄마 예쁜 사진 찾아보기.

종일 약을 안 넣었다는데 웬걸 눈이 돌아왔다. 멀쩡해 보여.


엄마. 내가 콧구멍에 바셀린도 발라주고 그랬는데

이렇게 자꾸 에어보 벗고 진짜 벗고 벗고 또 벗고 이거 약 또 다 묻고

아니 진짜 말썽쟁이 아니야 꾸러기네 꾸러기 누구 닮았지 으으으

엄마 왜 계속 안자~~~~ 이제 잘 시간인데~ 오늘 하루 종일 안자네 어제도 잘 못 잤으면서~

귀에 대고 속닥이고 보니 엄마가 웃고 있다. 엄마, 엄마, 엄마...

한창 꾸러기처럼 날 괴롭히더니만 말썽 부리다 지친 아가처럼 코 잠이 든 얼굴을 가만히 보자니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 것도 같고... 또 보내기 싫어지고...

역시나 아직 아닌 것 같아

엄마 포기하려 해서 미안해

아직 가지 말고 아프지도 말고

어서 가볍게 털고 일어나서 훨훨 살자

엄마.. 엄마...



2021.05.03.

0500

0830

1100

1500-

*시간당 0.5ml 투여


1930

2400



2021.05.04.

4:20 안정이 안 되는 상태

5:20 맥박 100대로 내려감

손떨림이 여전히 심함. 약을 괜히 넣었나? 너무 많이 들어가서일까. 아니면.. 요구량 증가?


5:30 에어보 조정

60/94 -> 60/80


슬픈 눈에

말을 걸면 눈물이 또로로로

어제보다 눈물이 자주 흐른다

엄마는 우는 걸까


감지 못하는 아니 깜빡 조차 않는 눈이

충혈될 수밖에

발간 눈으로 멀뚱멀뚱 허공을 본다


23:30

몸 떨림

혈압 97/68

아침부터 조금씩 낮아지는 중



2021.05.05.

90/60


70/50


23:34

혈압 60/40



2021.05.06.

“고마워.”


주삿바늘과 멍자국

퉁퉁 부운 발과 다리

찌푸려진 미간

두피에 난 칼자국과 목으로 이어지는 관의 표면

얇은 피부 아래로 선명히 보이는 어떤 부피

얼기설기 심장이 조사지는 느낌이었다


그 저린 마음은 뒤돌아 서자마자 잊혀진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꽃처럼 고운 이 엄마를. 내 엄마를.

나는 도저히. 쉽게 보낼 수가 없다

오늘은 난데없이 툭. 고맙다는 말을 한다

며칠 동안 목소리를 듣지 못했었는데...


8:00

혈압 60/38


10:00

혈압 55/34 38.6도


14:17

눈두덩이가 진해짐

동공 반응 없음. 눈 속에 하얀 눈곱처럼 진득한


15:50

혈압 53/37 37.8도



다시, 임종실

엄마는 눈을 뜨고 자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의식은 없는데 눈가가 파랗게 시리도록 내내 뜬눈으로

그렇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엄마의 팔과 다리 깨 한 켠씩을 차지한 채 자다 깨다 했다.

나는 엄마 오른팔을 안고 잠이 들었고

20분쯤 뒤 눈을 떴을 때 엄마는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를 닦아주고 싶은데 어렵다는 언니의 말에 거즈와 면봉을 손에 쥐고 엄마 입안 구석구석을 닦아냈다.

아플까 힘들까 걱정되는 마음에 매번 살살살 힘을 빼느라 속시원히 닦아주질 못해서 내내 마음이 걸렸었는데 이번에는 어쩐지 힘이 들어갔다.

이윽고

멍하니 허공을 보던 엄마의 파란 눈이

문득, 감겼다

거짓말처럼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응?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아니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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