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마지막 29개월
회한remorse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한 번 더 깨무는 행위를 뜻한다
- 줄리언 반스
솔직히 길어야 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작업은 9월까지 그러니까 세 달이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실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것보다 그 마음을 먹기까지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막상 그 시간에 몰입하기에 나는 너무나 아팠다. 엄마의 힘든 순간은 힘든 대로 엄마의 좋았던 시간은 또 그대로, 떠올리기 너무나 아픈 것이었다. 엄마와의 추억도 엄마의 사진도 엄마를 지키며 썼던 일기조차 꺼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 한참. 그러다 이제 정말 해야지 작정을 하고는 완전히 파묻혀 집중하고 싶었는데, 그 시간에 잠겨버린 나는 자꾸만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려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대로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자칫 이 생명 또한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두렵지가 않았다. 나는 파묻혀서는 안 되었다. 결국은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무리하지 말아야지. 괜한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지. 버틸 만큼 몰입하다 또 며칠은 밖으로 나가 세상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를 자꾸만 깨워주어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파도를 만나고 마음의 고비를 넘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런 게 만들어졌다. 신파라면 질색이지만 덤덤하기엔 절절한 날들이었다.
엄마가 몇 킬로그램인지 오늘은 어디가 얼마나 아팠는지 무엇을 먹고 몇 시간 잠을 잤는지 참 촘촘히도 적어둔 종이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아등바등 엄마를 사랑했는지 생각하며 그리워한다. 그날의 내가 엄마 옆에서 얼마나 행복에 겨워야 하는지 알면서도 또다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잠든 엄마 얼굴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오늘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다짐처럼 소곤대던, 그런 이유가 담긴 시간들. 그때 글로 태어나지 못하고 얼렁뚱땅 엮여버린 그 노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슬픔 속에서 찾고자 했던 간절한 숨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벅찬 하루의 틈 어딘가에는 또 다른 흔적도 조금쯤 남아있으면 했다. 나 이렇게 살고 있다고, 우리 이렇게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해야 할 슬픔과 언제나 기억해야 할 기쁨을 정면으로 기록하는 것. 그것이 얼마쯤은 고단한 하루의 해소가 되기를, 누군가에게는 공감으로 누군가에게는 다짐으로 그렇게 또 하루 살아갈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시간이 조금 더 온전하게 채워지길 희망하면서. 막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면서 생각을 손으로 옮겨보는 밤이 있었다.
다만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쓰이는 일만으로
저마다의 능력과 힘을 가지는 것이라 믿는다.
마치 마음속 소원처럼.
혹은 이를 악물고 하는 다짐처럼.
박준
투병하는 엄마를 도우며 엄마로 전부였던 그간의 날들에는 힘에 부친 순간도 많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벅찬 행복의 감정들을 배울 수 있었다. 효녀보다는 철부지 망나니에 가까운 딸이었지만 내 엄마의 유난했던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주고픈 마음으로, 마지막 시간만큼은 늘 정성과 최선을 다했다고 여겼지만 돌아보니 역시나 아쉬운 장면들이 아프게 마음에 남는다. 어떻게 해도 후회가 남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진하게 앓고 훨훨 보내드려야지, 라는 생각은 그 자체로 오류임을 알았다. 이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이고, 애당초 정리되지 않을 마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마음 한 켠에 두고 복닥이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엄마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아프게 행복했던 29개월
다시없을, 나와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아직은 어려운 마음이 엄마 이야기를 더 많이 담아내지 못하게 하지만 가능해질 때도 오리라 믿고 있다)
나의 시간을 딛고 더 나은 삶을 살아낼 누군가가 혹시나 있다면
느닷없이 찾아올지 모를 어떤 악몽에 조금 덜 괴롭기 위해서
오늘의 사랑을 조금 더 아껴 들여다보자고
다짐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오늘도 그렇게 사랑을 보듬고 행동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더할 것 없이 기쁘겠다.
엄마.
엄마는 정말 언제나 최선을 다 하고 있었어.
돌아보니 내가 너무 힘내라고만 했나 봐. 미안해.
이제 더는 힘내지 않아도 돼. 그냥 다 놓고 편히 쉬어. 이제 그래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