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토피아와 현생 사이 그 어디쯤
용평에서의 마음이 생생하다. 아침저녁으로 한숨을 받던 천장. 백화수복과 예거를 양손에 쥐고 차게 걷던 까만 밤. 막막하고 혼란스러웠다. 웰-니스를 배우러 갔는데 웰과는 점점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 마음을 앉히려 굳이 괴로운 몸을 일으켜 뜨는 해를 보고 차를 마시고 스트레칭을 했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홀가분한 척 입꼬리를 끄집어 올리며 일정을 소화했다. 꾸역꾸역 철저히 부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여유'의 조약돌을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 퐁퐁 솟아나는 행복감에 문득 그날의 마음을 떠올린다. 두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사이 이렇게나 바뀐 세상을 살고 있다니… 이 긍정의 근원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든 이 감각을 꺼내 쓰기 위함이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불편한 날이 있듯 영문 모를 행복도 있어야 공평하긴 하다. 그래도 궁금한걸?????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 날에는 내 힘으로 직접 데려다 놓고 싶은 충만함을 자꾸 만나고 있다. 오늘도 별일 없이 즐겁고 예쁜 하루였다. 무심하게 지나치기에 너무 소중하다.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나는 너무 오래 괴로워해왔기 때문이다.
수업 강의를 다시 보면서 다시 그때의 그 날들로 돌아간다. 가뜩이나 심한 기복을 어느 때보다 정면으로 겪은 시기였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나면 탈진처럼 뻗어 "이게 뭐지???????" 한참을 벙쪄 있는 날이 많았다. 여러 명상 기법을 배우고 체험하며 모르던 나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더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교육 이후 한 동기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화가 나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지루해 보였는데 혼자 불안해서 지켜봤어요. 중간에 사라질 줄 알았는데 끝까지 남아계셔서 신기하다 다행이다 했어요." 줌 화면을 뚫고 나간 나의 불편ㅋㅋㅋㅋ에 빵 터져 웃었고, 무엇이 그리 불편했는지 되돌아본다. 나는 스스로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는지 끝없이 의심하고, 우리가 함께인 것이 맞을지 영원히 판단하고 싶었다. ‘비판단. 판단하지 않기’. 명상을 하며 배운 주요 지침 하나를 까마득히 모르는 채로...
수업을 다시 보니 그때보다 조금 더 앎의 범위가 넓어짐을 실감할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좀 더 나은 일상을 지내고 있다는 사실도 느껴진다. 앞으로도 이렇게 스미듯 나아지고 깊어지겠지 생각한다.
‘웰토피아’라면서 깔깔깔 웃지만 나에게는 2000% 정도 진심이었다. 나는 건강한 에너지를 수혈받듯 웰니스 동기들을 만난다.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짧게 그리고 길게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방금까지 건설해 둔 나의 세계와는 분명히 다른 이 세계에서 명확하게 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오랜 친구들에게 인간적인 신뢰와 애정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있듯, 웰니스 동기들에게는 나와 유사한 데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믿음, 어떠한 것이라도 괜찮으리라는 수용과 존중에 대한 믿음이 있다. 각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지와는 관계없이 비슷한 대상에 마음을 들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연결감과 안정감을 준다. 어쩌면 당장의 성취와는 거리가 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일정한 에너지를 쏟는 행위는 언제나 감격스럽고, 나의 마음이 더 이상 의아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따뜻하고 편안하다.
알코올 사랑이라면 둘째 가기 좀 곤란하고 새로운 자극에 열광하는 호르몬 노예인 데다 일탈을 기꺼이 즐거워하는 나란 인간에게 어쩌면 웰니스라는 단어는 얼토당토않을지 모른다. ‘웰토피아’에서 나는 여전히 물음표사냥꾼이고, 자주 두 눈을 꾸움뻑 꿈뻑대며 할 말을 잊고 잃는다. 내가 이들과 같은 종족이 맞는지(?), 우리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언제는 뭐 명확하게 알 것 같은 답들이 있었나? 쎄게 겪은 고3 입시준비 이후로 내 삶에 그런 답 같은 건 없다. 단지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인생에 무엇이 중요한지, 그 답을 찾고 싶은 사람들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 답을 어디서 찾고자 하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가 다를 뿐.
웰토피아와 현생 그 사이 어디쯤을 옮겨 다니며 즐거이 혼란의 파도를 타고 있다. 어렵고 재미있다. 이런 일상을 보낼 수 있음에 자주 감사하게 된다. 잘 모르겠는데 어떤 느낌만 존재하는 세계를 파헤치고 다니며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원래의 노수빈으로 돌아와 안온함을 느끼기를 반복한다. 잘 살고 잘 죽는 방법을 찾기 위해 기꺼이 헤매고 싶다. 손에 든 술잔이 하루아침에 찻잔이 되어버릴 일은 없겠지만 이제 가끔은 술 대신 차를 마시고 싶은 노수빈이 있을 수도 있겠지. 술에 취해 좀 더 멍청해지는 시간과 유난하게 기쁘고 슬픈 나도 여전히 사랑한다. 그리고 온전한 삶에 각별한 마음을 들이는 나도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완벽한 때란 없는 것 같아요’
완전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조금씩 더 나아지기 위함이다. 물론 이 마음 또한 매 순간 움직이고 있음을 최대한 활짝 열고 감각하면서. 나는 내 마음이 궁금하다. 내 마음을 좀 더 정성껏 알아보고 싶다. 내 방식으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다. 마음을 지키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여정을 기록해보려 한다. 혹시 모르지. 이렇게 헤매다 진짜 내 삶이 되어버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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