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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노 Oct 22. 2023

03   Legian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나도 세상도

도보로 바다에 닿는지, 산책하기에 좋은지, 동네에 구경거리가 많은지를 기준으로 가장 말끔하고 수영장이 귀엽고 레스토랑이 훌륭한 숙소를 골라내 또 며칠 머물기로 했다. (어머 완벽하네?) 일단은 몸을 편안하게 누이고 체력을 충전하면서, 흥을 예열하는 것으로 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바다에서 또 수영장에서 물에 뛰어들고 파도 타고 책 읽다가 해지는 하늘 보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물속에서 신나 하는 언니 얼굴을 보는 게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손을 잡고 바다로 마냥 뛰어드는데 그렇게 덩달아 신이 날 수가 없다. 특히 파도를 타면서 방방 뛰는데 나이를 잊을 뻔했다. 수영을 잘하지 못하면서도 바다를 좋아하는 내가 어찌나 대견한지 모른다. 하마터면 이런 기쁨을 모를 뻔했지 뭐야.


처음 이 바다에서 석양을 보던 날, 마침 너무 드라마틱한 일몰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만났다. 언니는 오래오래 말없이 바다를 보았다. 내가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언니는 이 바다가 너무 좋다고 했다. 나도 꾸따의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동안 몇 번을 오가면서도 좋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마음이 이렇게 쉽게 옮아올 수 있다니, 그 덕에 얼떨결에 좋아하는 게 하나 더 늘어날 수 있다니 참 예쁜 일이다.


‘마음의 일’로 많은 문제가 생겨나고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 그 자체에 집중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마음의 일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쉽게 전염되는 것이라면 나는 따뜻한 마음을 많이 찾아다니고 자주 옮고 옮기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타인의 마음을 궁금해하듯, 스스로의 마음에 자주 귀 기울이고 나답게 존재하는 법을 자주 깨우치는 여행이 되길 기대한다. 


하필이면 우리가 고른 이 숙소는 정말, 정말 천국처럼 다정해서 이 세상이 이렇게 평화롭기만 하다고 오해하게 만든다. 나는 화려한 것보다 다정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정의 품에서는 누구나 가장 자기다워지기 좋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덩달아 따뜻한 사람이 되기 좋다. 사랑받는 사람이 또다시 사랑을 나눠 줄 마음에 이르듯, 애정으로 나를 ㅡ 그리고 타인을 두루 들여다보는 마음을 기억하게 된다. 깨끗한 물에서 수영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걷고, 눕는데 딱 그런 마음이 되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 이런 마음이 되는구나… 예쁘고 다정한 마음이 되는구나….

지도를 많이 꺼내보지 않고, 그냥 마냥 걷고 보는 자유를 누린다.  오늘은 바다를 따라 걷다가 석양이 잘 보이는 카페 2층에 앉았다. 맥주 대신 스무디. 술에 취하지 않아도 기쁜 밤들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언니는 바다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패드를 건네주고 나는 그냥 멍하니 있었다. 휴양지에서 처음 사 먹어보는 달달한 스무디가 이상하게 맛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들 스무디를 그렇게 파는 거였어? 술을 잃었지만 스무디를 얻었네.

대체로 언제나 시간을 쪼개 쓰는 강박에 매여 사는데, 그저 파도와 함께 색이 변해가는 하늘과 언니 얼굴을 번갈아보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이 충만해진다는 게 참 이상하고 좋았다. 무엇을 하지 않고, 그저 나와 세상이 존재하는 그대로 두어도, 그냥 별 일 없이 괜찮았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토도토도 바다를 따라 다시 걷는 길, 매쿰한 버터가 묻은 옥수수를 사 먹었다. 희한하게 맛있는 자궁바카르 jagung bakar(그릴에 구운 인도네시아 옥수수. 해변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음)는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까지 잔돈을 챙겨 다니게 만드네. 느지막이 들어와 풀 베드에 앉았다. 우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자. 발리라는 엄청난 곳을 단 세 단어로 대변하는 바로 그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자. 


‘돌체 파 니안테 Dolce Far Niente’. 달콤한 게으름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잊고 지낸 감각을 기억해 내는 시간이다. 곤히 잠든 언니 얼굴을 카만히 보았다. 때로 자는 얼굴에 대고 더 많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언니가 존재 그대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구름 한 점 없이 사르르르 웃는 얼굴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애틋하게 여기는 만큼 스스로를 아끼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나 또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이 시간에 온전히 존재하기를ㅡ 이 땅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를. 그렇게 좋은 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실컷 힘주어 바랐다. 14년 만에 떠오른 슈퍼 블루문을 만난 날이었다. 느끼한 생각을 무더기로 하면서 주접을 떨기 좋은 밤이었다.


슈퍼블루문 by 아이폰 13 프로 (ㅎ..ㅎ)
코코넛과 아얌(닭). 바다와 태양. 좋아하는 것 옆에 좋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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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TA 쿠타

쿠타는 공항과 가까워 언제나 붐비는 편이고, 있을 건 다 있지만 어쩐지 구도심스러운 곳. 파도가 적당히 좋아서 초보 캠퍼들이 주로 모인다고 하는데 멋진 묘기를 부리는 고수들도 많이 봤다. 쿠타/르기안쯤에서 바다를 쭉 따라 올라가면 발리의 청담이라 불리는 스미냑이 있다. 스미냑은 나름 고급스럽다는 음식점과 쇼핑 스폿들이 있어 놀기에 좋지만 늘 교통 체증이 심하고 붐벼서 딱히 가지 않게 된다. 더더욱이 이번에는 물에서 너무 재미있게 노느라 뭐…. 아 맞다 비치클럽은 가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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