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송전탑 위로 붉은 해가 천천히 기울 무렵, 유정과 가족은 동네 고깃집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연기와 기름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는 소리, 테이블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뒤엉켜 저녁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민종은 유정의 옆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팔 하나 들어갈 만큼의 간격이 있었지만, 그 거리는 이상하리만치 멀게 느껴졌다. 젓가락이 불판 위를 가로지를 때마다, 서로의 손등이 스칠까 봐 미묘하게 각도를 틀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이 놓인 것같았다.
“민종아, 특목고에서 날고 기는 애들이랑 경쟁하려면 든든히 먹어야 해. 더 먹고 싶은 건 없어? 냉면도 있고, 된장찌개도 있네.”
이모는 집게로 고기를 뒤집다 말고, 민종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고기가 익어가는 냄새 속에서도, 시선은 오롯이 아들에게 가 있었다.
이모부는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그래, 너희도 오랜 기간 서로 못 봤었다만은, 엄연한 사촌지간 아니냐. 나이도 같고. 민종이가 기숙사에 있다 보니 자주 못 보긴 해도, 이번 기회에 친해지면 좋겠네.”
유정은 낮게 “네.” 하고 답했다.
그 한마디가 공중에 잠시 매달렸다가 조용히 떨어졌다.
민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식어가던 고기 한 점을 파무침 위에 얹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는 소리가 잠깐 식탁 위를 채웠다. 씹는 리듬은 일정했고,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색함을 거두려는 듯 이모와 이모부는 몇 번 더 말을 건넸지만, 민종의 대답은 끝내 단어 몇 개로만 흩어졌다.
“물.”
“휴지.”
그리고 앞접시에 고기가 쌓이면, 짧게 “그만.”
이모는 그 말에도 얼굴 한 번 굳히지 않고 물을 채워주고, 휴지를 건넸다.
그 손길에는 익숙한 순응이 묻어 있었다. 아들의 요청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집.
유정은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먹었다.
처음엔 자신이 있어 민종이 불편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건 자신 때문이 아니라, 민종은 원래 이런 아이였던 것이다.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말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오래 있었던 아이.
멋쩍은 듯 혼자 맥주잔을 비우던 이모부는 술기운이 오르자 점점 말이 많아졌다. 불판 위 고기보다 그의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래… 맞아, 너희 둘 다 같은 해에 태어났지? 누가 생일이 빠르더라… 민종이는 9월이었고…”
잠시 말을 더듬던 이모부가 유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정이는 생일이 언제니? 내가 이제야 물어보네.”
“3월이요.”
유정의 목소리는 불판 위 연기 사이로 조용히 섞여 들어갔다.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유정의 앞접시에는 고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집게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점씩. 하지만 어른이 말하는 중에 젓가락을 드는 게 괜히 버릇없어 보일까 싶어, 유정은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접시 위 고기는 점점 식어갔다.
“맞아. 유정이가 봄에 태어났지. 생각난다… 여보, 기억나? 처형이 유정이 가졌을 때, 형님이랑 같이 우리 넷이서, 아니지 유정이도 배 속에 있었으니까 다섯이네. 다섯이서 상실천 유등 축제에 갔었잖아. 그때 형님 술 드시고 장난 아니었는데 말이야…”
이모부의 목소리는 어느새 추억에 젖어 있었다.
유정은 그 장면을 상상했다. 물 위에 떠 있던 불빛, 웃음, 젊었던 엄마의 얼굴. 그러나 그 그림은 끝까지 완성되기 전에 멈춰 섰다.
이모가 팔꿈치로 이모부의 옆구리를 툭 쳤다.
“당신은 술만 마시면 꼭 쓸데없는 얘길 꺼내. 애들 밥 좀 먹게 놔둬.”
말은 가볍게 던졌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유정이 본 것 중 가장 들뜬 얼굴로 옛이야기를 늘어놓던 이모부는 그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맥주잔을 괜히 만지작거리며 눈을 피했다.
잠시 뒤, 유정 앞에 수북이 쌓인 고기를 본 이모가 집게를 멈추고 말했다.
“유정아, 너 고기 안 먹고 뭐 했어. 식기 전에 얼른 먹어.”
그제야 유정은 젓가락을 들었다.
식어버린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자, 기름기가 굳어 질긴 감촉이 느껴졌다. 씹을수록 맛은 잘 느껴지지 않았고, 목으로 넘기는 데에만 신경이 쓰였다.
옆자리에서 민종은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집어 먹고 있었다. 그의 젓가락질은 망설임이 없었다.
연기 속에서 유정은 문득 깨달았다.
이 식탁은 네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지만, 중심은 언제나 한 사람에게로 기울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그 가장자리에 놓인 접시처럼, 채워지긴 해도 결코 먼저 손이 가지는 않는 존재라는 것을.
식당을 나와, 각자 마트에 들려서 산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든 채 걷기 시작했을 때였다.
입안에 남은 고기 냄새 위로 차가운 단맛이 겹쳐지자, 유정은 문득 발걸음을 늦추었다.
“저는 배가 너무 불러서요. 조금만 걷다가 들어갈게요.”
말은 가볍게 꺼냈지만, 목 안쪽은 이상하게 마른 느낌이었다.
막 한 입 베어 문 아이스크림을 든 채 이모가 돌아봤다. 의아함과 걱정이 반쯤 섞인 눈빛이었다.
“같이 집 앞까지 가자. 아파트 단지에 공원도 있잖아, 거기서 좀 걷지 그래?”
“날도 선선한데, 겸사겸사 동네 구경 좀 하려구요.”
유정은 웃으며 둘러댔다. 그러고는 가족이 사라진 방향과 반대쪽으로,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손에 쥔 아이스크림이 조금씩 기울며 녹아내렸다.
민종이 오랜만에 집에 온 날이었다. 가족끼리의 시간을 굳이 끼어들어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각자의 방에 흩어져 지냈지만, 유정에게는 오늘따라 숨을 고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식탁 위에 앉아 있을 때도, 불판 연기 사이에서도, 자신이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 계속 계산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처음으로 이모 없이 걷는 동네 골목은 어쩐지 낯설고도 가벼웠다.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길을 눕혔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설렘이라기보다는, 묶여 있던 끈이 살짝 느슨해진 감각에 가까웠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초등학교가 나왔다.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운동장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지만, 골대 사이로 몇 안 되는 아이들이 축구공을 쫓고 있었다. 공이 차일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저녁 공기를 갈랐다. 그 옆 인도에는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이 천천히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강아지 줄을 잡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은 채 혼자 걸었다.
유정은 운동장 옆 스탠드에 앉았다. 차가운 콘크리트의 감촉이 엉덩이로 전해졌다.
아이들이 공을 쫓아 달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어릴 적 놀이터가 딸린 식당 마당 이야기가 스쳤다.
손을 맞잡고 뛰었다던 그 장면.
그때의 웃음은 자신에게 없고, 이야기 속에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서늘했다.
잠시 후, 옷깃을 털고 일어나 산책로로 향했다. 학교와 아파트 단지를 이어주는 길에는 지압용 돌이 박힌 작은 길이 나 있었다. 유정은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맨발로 그 위를 천천히 걸었다. 발바닥을 찌르는 자잘한 통증이 올라왔다. 아프면서도 또렷했다. 그 감각이 오히려 좋았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서 있다는 걸 분명히 알려주는 느낌이어서.
사람 없는 산책로에는 풀숲을 헤치는 작은 동물의 부스럭거림과, 바람이 잔머리를 건드리는 소리만이 있었다. 어둠은 서서히 내려앉고, 하늘은 남은 빛을 접고 있었다.
유정은 잠시 눈을 감고, 깊어지는 저녁의 숨결을 들이마셨다.
아무도 자신을 부르지 않는 시간.
아무도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자리.
산책로가 끝나고 아파트 단지로 접어들자, 멀리 야외 주차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이 빛나고 있는 게 보였다. 천막처럼 펼쳐진 하얀 화면 위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스크린 앞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은 가족들과 연인, 친구들이 집에서 싸 온 간식을 나눠 먹으며 웃고 있었다. 팝콘 봉지가 바스락거렸고, 아이는 엄마의 무릎 위에서 까르르 웃었다. 영화 속 배우가 과장된 몸짓으로 재롱을 부리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유정은 화면 속 익숙한 배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용히 주차장 옆 벤치에 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은 이미 반쯤 녹아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스크린을 응시했다.
불빛은 따뜻했고, 사람들의 웃음은 분명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유정에게 마치 유리 너머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달려가면 닿을 것 같으면서도, 발을 내딛는 순간 더 멀어질 것 같은 자리.
벤치에 앉은 유정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그림자만이,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증거처럼 바닥에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