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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6

어느 상하이 여행사 사장의 고백

Shanghai #47

상하이에서 터득한 불변의 진리가 있다. '노랑머리(서양인)가 가득 찬 (웨스턴)식당은, 무조건 맛집'이라는진리. 주말 브런치 때마다 노랑머리가 가득해서 점 찍어둔 집이 있었다.이곳, 우캉루(武康路). 미칠 것같이 춥지만 않다면 사시사철 낭만이 폭격하는 거리. 그 한가운데서, 한적한 갤러리 안의 홀로 서있는관객처럼. 길의 모든 풍경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곳. [Rachel's] 햄버거집이다


처음 그 맛을 본 이후로 봄 여름 가을, 한국에서 손님이 올 때도, 손님이 오지 않을 때도 정기적으로 찾아가 그 매력에 기꺼이 빠지곤 했다. 물론그곳 최대의 맛은 '츄르릅'이 폭발하는 쥬이시한 육즙의 햄버거다. 하지만 미각보다 시각/청각에 더 민감한 나는 햄버거도 좋지만 그곳의분위기, 제대로 말하면 '그 집이 그곳에 존재하는 태도'에 매료되었다.

10월 가족들이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쯤엔, 모든 나무들이 그녀(레이첼)를사랑하는 듯 보였다. 그녀를 향해 연초록 잎들을살랑대는 나무들과 함께, 그들은 가을의 절정을 맞았다. 그리고 11월, 서울에서 온 손님 R과찾은 그곳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R에게 보여주고 싶던 풍경은 사실 10월의 그것이었는데. 나뭇잎들이 벌써 다 져버렸네. 하고 R은 눈치채지 못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바라본 위.

천창이 있었네. 머리 위의 풍경은 보여주고 있었다. 철마다 변하는 나무들을, 한때는 자신에게 연초록 잎을 흔들며 구애했던그것들의 변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풍경 속에서 잘난체하지도,쉽게 묻히지도 않는 관조하듯 교감하는 태도. 이런 모습을 좋아했었지 그래. 언젠간 이런 천창이 있는 집을 갖고 싶어. 사진을 찍으며 그렇게혼잣말을 했는데 R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팠으니까. 


R은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오래된 편도선염이재발했다. 운이 그렇게 없기도 힘든데. 이거 회사에서 일년에한번 주는 '리프레시 휴가'였는데. 사실 나는 그때, 그곳의 새로운 풍경에 빠져서, 오랜만에 흡입하는 쥬이시한 육즙에 미쳐서, 그녀의 상태를 제대로알아차리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아침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때도 예전의 '발랄했던' 그녀와는 사뭇 달랐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R의 상하이 여행은, 그날유일하게 하루를 즐긴 것으로 끝이 났다. 다음날도 다 다음날도 그녀는 호텔에 누워만 있다가 하릴없이서울로 돌아갔다.


여행의 운은 노스트라다무스도 어쩔 수없는 복불복이란걸. '의지'같은 건 체력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지며, 괜한 객기를 부렸다가 더 큰 화를 당한다는걸. 나는 숱한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깨달았다. 여행지는 다 자기인연이 따로 있다는 것도. 올 사람은 또 오게 될 것이고, 만나게 될 사람은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상하이에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손님과 함께 갔던 식당에 갈 때면 어김없이 그 손님이 생각나는 것이다. 손님과나눴던 이야기들도, 그들이 음식을 즐기던 모습도 그들이 정말로 즐기고 있는가.를 눈치 보며 살피던 내 모습도 떠오른다.


나는 여기서 그런 것들을 곱씹으면서 산다. 친구가 많이 없는 생활도 이제 익숙해졌지만 낯익은 친구가, 상하이의 내 앞에 놓여있는 생경한 풍경도 좋다. 


손님이 오면 어김없이 과로를 한다. 하지만 손님이 왔다 갈 때마다 곱씹을게 많아진다. 나는 소처럼 성실하게그들은 안내하고 소처럼 그들과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상하이 생활을 체하지 않게 소화하고 있다. 혼자다음 손님을 점쳐보기도 하면서.

지금은 그렇게 산다.


201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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