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난민의 제주표류기 ⑥
제주도로 비상탈출 한지도 9개월째가 되었다. 지금도 나에겐 두 개의 마음이 공존한다. 언니 집에 그만 민폐를 끼치고 어서 상하이로 돌아가 6개월째 홀로 있는 남편과 재회하고, 상하이의 친구들을 만나고, 무엇보다 내 집으로 돌아가 본래의 일상을 찾는 것. 하지만 공식적으로 중국은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또 하나는 아직 공황장애 치료가 완전히 끝난 것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잡힌 것도 아닌데 돌아가는 게 과연 괜찮을까 불안한 마음. 만약 상하이에서 다시 패닉어택이 온다면 (아직 위험할 것 같은)병원에 가지 않고, 나 스스로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선생님은 약을 충분히 주시겠다고 했지만.
돌아갈 수 있는 한 번뿐인 기회가 생기긴 했다. 체류비자가 남아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긴급비자'를 받아주기로 한 것. 긴급비자를 (어렵게)신청하고, 10월 말에나 잡을 수 있는 (표값이 10배가 오른) 비행기표를 구해서, PCR(핵산) 검사를 받아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준비하고, 코로나가 재 확산된 서울로 올라가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가서 다시 시설 격리 14일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당장 상하이에 돌아야만 하는 이들은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비행기에 오른다. 내 체류 비자 만료는 11월 초. 그마저 유효기간이 끝나면 긴급비자조차 신청할 수 없다. 10월이 지나면 나는 입국 금지 대상의 외국인 신분으로 돌아간다.
상하이에서의 일이 급하거나 자녀의 개학이 닥친 사람들은 상하이 직항 편을 구할 수 없어, 옌타이나 항저우 등 몇 시간 거리의 다른 도시로 먼저 가서, 그 도시에서 시설 격리를 끝낸 후,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좋으니 상하이로 빨리 돌아오라, 는 친구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차마, 내가 아직 온전히 불안함을 떨치지 못해, 상하이에 아직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공황장애 이후로 비행기를 한 번도 타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내 자율신경계가 요란을 떨지 않을지 모르겠다. 일단 서울부터 가 봐야 알지 않을까.
어제 229일째 일기를 쓰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 제주 표류기의 끝을 맺을 수 있을까. 언제일까. 365일을 넘기고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할까. 그때 내 자율신경계는 마침내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길고 긴 공황장애 치료의 터널을 나와, 그 기억마저도 사라지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도 남편의 독거생활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남편과는 대화 끝에 '한 번의 겨울을 더 보내고 돌아가는 걸로'라는 결정을 내렸다. 내년 봄에 중국이 외국인을 받아줄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열아홉에 제주를 떠나, 성인이 되고 난 후 고향에서 이렇게 오래 지낸 적이 없었다. 제주도는 어린 시절 내게 늘 '답답하고 막혀있는 곳'이었는데, 위기의 순간이 되니 '난리통에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서울에는 내 평생의 커리어와 현재의 일, 거의 모든 친구들이 있지만 '내 집'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곳이었는데 이상하게 하루하루 마음이 흔들린다. 내 무기한의 표류를 차분히 지켜봐 주는 곳, 가족과 고향의 향기가 있는 곳, 그 옛날 내가 그리도 탈출하고 싶었던 곳, 하지만 훗날 언젠가는 정착해서 살고 싶은 곳, 바로 제주라는 곳에.
고맙게도 제주는 머무를 수 있는 고향 이상의 것을 준다. 인적 없이 편하게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바닷가도, 사계절을 눈으로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한라산의 숲도, 지구가 '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곡선의 푸른 하늘도 마음껏 내어준다. 코로나의 영향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일어나 약 한 알을 먹고, 자기 전에도 약을 먹는다. 이것들이 현재의 편안한 나를 만들어 주는 것일 테지만, 분명 내 고향의 모든 것들이 다시 나를 회복시켜 주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노력할 것은 단 하나. 세상의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숨을 고를 것. 내 자율신경계도, 세상도 조금 더 평온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