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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6

토요일의 주문

Shanghai #54

직장인도 아닌데 토요일은 좋다.

학원도 알바도 없고, 아직 놀수있는 일요일 하루가 더 남았다는 생각에 

더 격렬하게 좋다.

집에서 늘어지게 퍼져있어도 좋고, 하루종일 쏘다녀도 좋다.

주중에 바쁜 멀더가 주말까지 바빠서 나와는 아무런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아도, 나쁠거 없다.


어남멀. 어차피 남편은 멀더니까.

오늘의 카페는 [코스타]. 집 바로 코앞이고, 따뜻했고, 커피 1+1 쿠폰도 있었으며, 공짜커피를 나눌 아랫집 친구도 있었다.


아랫집친구 N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눈다.

오랜기간 자신의 체력이 매우 좋은 줄 알고살았던 그녀는, 깡마른체구로 힘쓰는 일을 많이도 했다.

MD라면 그정도는 해야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녀의 체력을 과신했다. 아니 잘 몰랐다.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쌓여가면 자신이 인정받고있다는 생각에 (그것은 일종의 마약) 

체력이 급격하게 닳고있는 줄은 모른다.

연차만큼 나이도 당연하게 쌓여가므로, 체력은 연차와 반비례.


그렇게 체력은 주인도 모르게 닳고 닳다가 

결국 그날이 갑자기 오고야 만다.

때아닌 관절염이 오고 디스크가 재발하고 면역이 떨어져서 

자신이 알던 몸이 아닌, 

고칠게많은 중고차가 되어버린 몸을 발견하는 날.


그녀는 그렇게 되기까지 사인을 받지 못했다.

몸은 원래, 미리 경고하는 법이 없다.

내 이렇게 될줄 알았어. 

몸이 주인에게 말하는 방식은 늘 그렇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드는 서러움에는

그렇게 사인없이 갑자기 당하는 체력고갈에 대한

억울함이 담겨있는 것이다.


N이 억울한 심정으로 커피를 마실때, 

어릴때부터 타고난 B급체력으로 살아왔던 내가 

맞은편에 앉아 병약한 인생에 대한 적응 방법을 펼쳐놓는다.


알고보면 단순한 솔루션, 

몸을 사려. 좀.


나처럼 어릴때부터 병약한 사람은

그런면에서 서러움이 적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는 말로 

나는 언제나 내 B급 체력을 위로했었다.


헤드폰 배터리 잔량 표시 기능처럼

몸에도 체력(혹은 영혼) 고갈에 대한 표시기능이 생긴다면

요즘 화두인 '일과 삶의 발란스'같은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지 않을까.


우리가 늙어가는 몸의 서러움을 이야기하고 있던 그 시각,

멀더는 늙어가는 몸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멀더의 두번째 문신. 

K팝스타 양현석의 문신을 보고, 바로 저 자리를 확신했다.


저 곳에 새기는게 가장 이뻐. 나도 동감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 몸이다.


요즘 과도한 업무와 통제 불가한 스케줄로 매우 예민했던 멀더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주문을 팔뚝에 새기고는

단번에 자신과 사랑에 빠졌는지

헤벌쭉 웃으며 돌아왔다.


그래 병약해진 몸이든

더 병약해질 몸이든

자신이 아니면

누가 사랑해주겠나.


201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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