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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ug 28. 2023

“사는 건 그냥 사는 거예요.”


어젯밤 남편과 유튜브로 이런저런 시골집들을 구경하다가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어느 지방의 산골짜기, 첩첩산중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곳에 100년도 더 된 집을 얻어 살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 남편은 한국인이고 아내는 독일인인 이들의 집은 여느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예쁘게 꾸며지지도 않았고, 이들이 먹는 음식은 알록달록 화려하지도 않았다. 아침에는 시리얼 한 그릇을 우유에 말아먹고, 저녁이면 된장국에, 조물조물 무친 밑반찬을 차려 먹는 일상. “아무튼 도보 거리에 편의점이 있어야 해!”를 외치던 남편도, 이들의 일상에는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연신 말했다. “너무 부럽다...”


이들의 일상이 부러웠던 이유는, 이들의 모습에 어떤 꾸밈도 없었기 때문이다. 촌집을 고쳐서 살면 흔히 하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 듯했고 그저 해맑게 자연에서의 노동과 쉼을 즐기는 모습에 “와, 이건 찐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 보니 이들의 촌집은 주말살이용 집이었다. 하지만 주중에 이용하는 원룸도 소박하기 그지없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소박함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걸.)


독일인 아내는 말했다.

“한국인들 너무 열심히 살아요. 왜 열심히 살아요? 그래서 어디로 가요?” 그는 이어 “일은 열심히 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열심히 사는 건 이상해요. 사는 건 그냥 사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그렇지. 사는 건 그냥 사는 거지. 열심히 사는 건 이상하다.


그러고 보면 다들 정말 열심히 산다. 힐링을 위해 시골에 내려가 사는 사람들도 인스타며 유튜브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다가 잘 되면 카페를 차리거나 책을 쓰며 또 열심히 무언가를 이어가겠지. 자신의 힐링마저도 콘텐츠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 나조차도 어제의 감동을 이렇게 글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낄 만큼 열심히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남편이 어제 “글 쓸 소재 하나 생겼네?”라고 했을 때 “아니야, 이건 안 쓸 거야.”라고 답했지만 결국 이렇게 써버리고 있다.)


그냥 사는 거, 솔직히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SNS를 멀리 하면 가능하려나. 자신의 행복이나 재능, 또는 자신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끊임없이 전시하고 증명해야만 하는 이 한국사회에서 ’그냥‘ 살아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제 본 부부의 모습에서 조금의 힌트를 봤다. 보여주려,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사는 모습. 소박함에 모든 것을 맡기고 흘러가는 듯한 자연스러운 그들의 웃음들. 그 웃음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KBS 다큐멘터리 사람과 사람들 <독일 아내의 산촌 별곡> 2016년 5월 25일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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