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이서 원만히 합의 하심이...
업무 하나가 완료되기까지 촘촘한 보고 과정이 있음은 앞에서 설명했다. 담당자-팀장-과장-국장-실장으로 이뤄진 직위체계에서 '실무라인'으로 묶이는 직위는 담당자, 팀장 정도다. 과장부터는 실질적 결정권을 가진 '관리 라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결재를 올릴 때도 팀장이 검토, 과장이 결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보통 담당자가 팀장 검토를 받아 과장에게 보고한다.
짬이 꽉 찬 팀장은 과장과 경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그래서 베테랑 팀장은 담당자가 파악 못하는 부분을 짚어주는 식으로 과장의 역할 일부를 수행한다. 그런데 팀장이 원하는 방향과 과장이 원하는 방향이 다른 경우가 왕왕 있다. 글로만 적었을 뿐인데도 벌써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지 않는가. 대부분은 결정권자인 과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지만 그 과정에서 수달같은 담당자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된다.
'이 안 말고 ㅇㅇ안으로 다시 한번 검토해 보세요'란 과장 피드백을 팀장에게 보고하는 순간 시작되는 최악의 상황은 쓸데없는(수달의 짧은 생각일 뿐입니다...) 것들로 딴지 걸며 팀장이 몽니를 부릴때다. 사안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시비가 붙은 술자리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테이블을 치워야 할 아르바이트생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수달맘도 모르고 팀장은 짜증이 한가득이다. 수달은 입으로는 '제가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눈으로는 '직접 가서 얘기해...'라 말하고 자리에 앉는다.
면접 단골 딜레마 질문
이런 상황이 변질되면 과장은 팀장을 거치지 않고 담당자와 직접 업무를 처리 하려고 한다. 면접 단골 질문이다. 모범답안은 '과장의 지시를 받아 처리하되 그 내용을 팀장에게 보고 한다'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관리자 지시가 가장 우선순위가 높지만 그 경과는 반드시 팀장에게 보고해서 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간에 낀 담당자가 어떤 눈치를 보는지, 최고 상관의 지시를 따르는게 맞다는 것까지 팀장도 안다. 그런데 담당자가 옳거니 잘됐다 식으로 팀장을 우회하면 둘 간의 미묘한 감정 싸움에 휘말리는 꼴이 된다. 결국 당신과 직장생활을 더 오래하는 사람은 과장이 아니라 팀ㅈ..
사람이 하는 일
결국 규정에 어긋나거나 OX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업무와 별개로 두 '사람'을 대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고래 싸움에 낀 새우지만 보고서는 담당자가 쓴다는 걸 기억하자. 과장은 과장대로 팀장은 팀장대로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를 최대한 살리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모든 직장인들이여...화이팅...) '과장님이 아니랍니다 -> 두부 썰 듯 팀장 검토 본 덜어냄' 식의 태도 보다는 팀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논리나 용어, 편집을 최대한 살리는게 좋다. 빽빽한 글 속에서 내가 쓴 문구나 논리는 신기하게도 보이기 때문에 담당자의 가상한 노력을 팀장은 알아볼 것이다. (모든 직장인들이여...) 이렇게 했는데도 팀장이 히스테리를 부린다? 담당자 수달도 승질이 있다. 나도 그땐 깡패가 되는거야
얘들아 국장님 오신다
좋은 상사를 만나 온 수달임에도 상사는 언제나 대하기 어렵다.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괜히 조심스럽다. 아무리 좋은 상사도 회식자리 끝까지 남으면 눈치 없단 소리를 듣는다.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의전문화 때문이 아닐까. 권위의식 전혀 없는 상사도 회식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는 문화가 우리 현주소다. 과장님이 계실 때와 계시지 않을 때 사무실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화기애애하다가도 상사가 출장에서 돌아오면 급 조용해지는 분위기에 수달은 가끔 상사가 외로워 보일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수달도 상사가 되겠지? 그때 수달은 대하기 어려운 상사가 될까?
여러분 제가 오늘 무두절(無頭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윗분들은 항상 바쁘다. 회의도 많아 출장이 잦다. 과장님이 출장인 날은 다들 편안하게 업무를 본다. 이른바 무두절이라 부른다. 물론 출장업무 담당자는 과장님 수행하느라 하루 종일 긴장의 연속이다. 여러 기관이 함께 모이는 회의 자리에 상사가 참석할 경우 회의 안건과 관련된 담당자는 상사를 수행한다. 회의 자리는 기본적으로 참석자가 테이블에 앉고, 뒤로 담당자가 '배석'이란 걸 한다. 배석(陪席) 이란 웃어른 혹은 상급자를 따라 어떤 자리에 함께 참석함을 의미한다. 배석자는 각종 자료를 준비해 간 다음 테이블에 앉은 상사가 회의 중에 필요한 자료 또는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국회에서 열리는 회의에 장관이 답변을 하고 그 뒤편에 실장급이 배석해 필요할 때 쪽지 등으로 답변에 필요한 내용을 적어주는 경우가 TV로 볼 수 있는 대표적 예다.
함께 한 출장 중에는 함께 식사도 하고, 시간이 비면 차도 한잔 하면서 업무 외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다. 사실 긴장할 필요 없다.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특히 수달 같은 실무자 입장에서는 힘든 점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숫기 없는 김수달은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게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었나 보다. 개념 없는 직원도 아니지만 살갑게 상사를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었기에 어색한 경우도 많았다. 수달은 상사에게 본인 업무를 잘 수행하는 직원으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었다. 아부로 비칠 싹싹함도 없지만 시시콜콜 징징거릴 푸념도 하지 않는 딱 그 정도 직원 말이다. 어쩌면 마음 여린 김수달, 친해졌다 생각한 과장님에게서 지적받을 때 괜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