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정이 된듯한 기분
선호와 기피는 상대적
정규 인사 시즌이 되면 작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서이동을 한다. 어느 조직이든 선호 부서가 있고, 기피 업무가 있다. 선호와 기피는 상대적이다. 같은 자리가 처한 입장에 따라서 가고 싶은 자리가 되기도, 가기 싫은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승진을 앞둔 사람은 고생한 만큼 제대로 평가받으려고 남들이 인정하는 격무를 선호할 것이고, 당장 좋은 평가를 굳이 받을 필요 없다 생각하는 사람은 격무를 기피할 것이다.
그래서 격무부서 배치나 해당부서 내 핵심업무 담당은 승진을 앞둔 고참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일 한만큼 평가받는데 문제없는 자리에서 일 많이 하게 되는 구조로 인사가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 총괄업무를 담당하는 주무국, 주무과, 주무팀이 격무부서로 불리는데 주무 라인에는 승진을 앞둔 베테랑 직급이 포진한 경우가 많다.
인사는 만사
서로 다른 업무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순위를 매긴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평가는 점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누구나 납득할 만큼 고생하는 자리에 높은 평가가 필요한 사람이 배치되도록 인사가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인사는 말 그대로 사람의 일이라 변수가 넘치고, 성향에 따라서도 선호와 기피가 갈리는 경우도 많아 이상적인 공식을 대입해 답을 도출할 수 없다. 그야말로 눈치와 견제, 모종의 합의, 책략, 떼쓰기...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활극이 펼쳐진다.
체스판 같은 인사
이렇다 보니 인사시즌이 되면 조직은 마치 하나의 체스판처럼 보인다. 누군가 원하는 자리에 가려면 현재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누군가는 이동해야 한다.(당연한 소리..) 이렇게 자리를 비우고, 채우는 일이 줄줄이 엮여 있기 때문에 한 자리의 변동만 생되도 줄줄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력을 배치하기 위해 인사부서가 밤낮을 고민하겠지만 인사는 사람의 일이라 모두에게 딱 맞는 자리를 배치할 수는 없다. 수요와 공급이 정확히 들어맞을 리 없고, 누군가는 원치 않는 곳에 배치받아야 될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사시즌을 앞두고는 누가 이동하려 하네, 어느 자리가 비네 등 각종 정보가 복도를 뒤덮으며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가령 A는 B로 이동하고 싶다. B는 C로 이동하고 싶으며, C는 D로 이동하고 싶다. 'A -> B -> C -> D' 라는 하나의 인사이동 세트가 만들어 지게 된다. 즉 D의 이동이 A의 이동까지 영향을 주는것이다. 만약 D가 어떤 연유로 이동하지 않게 되면 인사이동 세트 안에서 줄줄이 영향을 주게 되어 A의 이동도 불투명 해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인사이동은 예를 든 것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하나의 세트로 이뤄진게 아니다. 수백 명의 인사가 거미줄처럼 엮여 있으니 쉽사리 예측하기도 단언하기도 어렵다. 한자리 변화가 나비효과처럼 뜬금없는 인사이동을 변동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상황 변화나 정무적인 변수는 넘쳐나다 보니 '공문 나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갈수 있겠다 싶은 자리도 알고보면 묘종의 합의가 이미 이뤄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D가 이동하면서 후임자를 E로 이미 내정하고, 부서장과도 합의가 이뤄졌는데 그 정보를 모르고 A -> B -> C 가 가능할것으로 보여지고 넋놓고 있다보면 어디로도 갈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표면에 드러나는 정보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정보에도 밝아야 한다.
움직이기 어려운 말
실타래처럼 엮인 인사판은 역설적이게도 움직이기 어려운 말이 열쇠가 되어 풀린다. 이동하기 싫다고 버티는 사람이 움직일 때 인사가 원활하게 풀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전보는 당사자 동의가 필수적이지만 대부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순리적으로 인사부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신이 원치 않는 인사이동을 엄격한 방식으로 동의하지 않는(이라 쓰고 '노발대발' 하는 이라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연결된 모든 줄줄이 인사가 정지되거나 틀어진다.
결국 움직이기 쉬운 말들이 소위 기피부서나 업무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씁쓸한 기분은 기분 탓인가)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더 열악한 근무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거나 딴지를 거는 사람이 오히려 대우 받는 인사이동 되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그래서 줄줄이 엮인 인사를 풀기위해) 좋은 제안을 하는 참 웃픈 일들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서와 업무의 선호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지만 누구나 기피하는 부서나 업무도 있기 마련이라 누군가는 그 자리에 가야만 다른 인사가 자연스레 풀리는 경우가 있다. 고분고분한 사람은 소위 움직이기 쉬운 말로 쓰이면서 소모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자신의 의사를 강력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과 자리에 움직이면서 전체적인 인사는 실타래를 풀어내는 역설적인 일들이 인사시즌이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소는 저만 키우나요
씁쓸한 건 이런 일들이 한번 일어나면 다음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단 것이다. 특히 초임이던 수달처럼 잘 모르는 직원들이 이런 식의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묵묵하게 또 그 일을 해내면 그게 곧 꼬리표가 되어 저 직원은 '움직이기 쉬운 말'로 꼬리표가 붙는 게 웃픈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원하는 자리에 이동하거나 원하지 않는 자리로 이동하지 않기 위한 이전투구가 난무한다. 이런 정글 속에 뛰어들기보단 '너네 맘대로 해라'식으로 어디 가서 든 자기 할 바를 다하겠다는 마인드 김수달을 응원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