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만 무작정 모으고 정리해선 안된다
상관이 어떤 판단을 내리기 위한 보고서를 지시할 때 작성자는 관련 정보를 잘 파악해 상관이 내릴 선택지를 잘 추려야 한다. 이때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판단을 내리기 전 단계인 관련정보 정리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다. 모은 정보를 정리하고 요약하는 것보다 정보를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게 막연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쉬운 길을 택하게 되는 것. 관련 정보는 어떻게 모았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장황하게 늘어놓는 보고서일수록 ‘그래서 어쩌라고’ 피드백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판단 기준을 세워 화두를 선점하자
판단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가 막연할 때는 기준을 먼저 세우는 게 좋다. 상관이 왜 보고서를 쓰라고 했는지 의도에 맞게끔 판단기준을 세우면 관련자료를 정리하거나 선택지를 만드는데도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판단을 내리려 애쓸수록 중요하지 않은 구체성 확보를 위한 막연한 자료 정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행사 개최지를 어디로 정할지를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예로 들어보자.
'A컨벤션은 주소가 어디고, 몇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시설장비는 어떤 게 있다. B빌딩 그랜드볼룸은 주소가 어디고, 몇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시설장비는 어떤 게 있다.'식의 접근은 정보만 있을 뿐 판단이 빠져있다. 잘 정리 해봤자 ‘그래서 어디로 해야 된다는 소리야’라는 말이 돌아올 확률이 크다. 단순 정보의 나열은 모든 판단을 상관에게 넘기는 셈이 되므로 좋지 않다.
기준을 세우고 보고서를 쓰면 다르다. 'A컨벤션과 B빌딩 그랜드볼룸이 행사 날짜, 수용인원, 필요시설 등이 모두 구비되어 있으나 내빈 접근성은 A가 좋고, 예산 절감은 B가 더 나을 것... 현재 예산은 충분하므로 내빈 접근성을 우선순위 두는 A가 적절하다'는 식의 접근이 낫다.
담당자 관점에서 생각한 기준과 판단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비용, 인력 투입, 파급효과, 관련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 사안의 맥락에 따라 적절하고 다양하게 설정하면 된다. 그걸 감안해 '판단'하는 게 상관의 몫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앞으로 건립될 공공건축물의 소재를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A소재는 강도가 얼마고, 제곱미터당 비용은 얼마이며... B소재는 강도가 얼마고, 제곱미터당 비용은 얼마이며... 라는 식으로 건축 소재 특성만을 나열해서는 지시자가 원하는 보고서가 될 수 없다.
'A소재를 사용하면 예산지출은 크나 첨단소재로서 우리 지역 내 관련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B소재는 A와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순 없으나 다양한 건축 디자인이 가능한 소재로서 공공건축물을 랜드마크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식의 전개가 더 낫다.
핵심은 사실을 파악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사실을 어떤 기준으로 따져보는 데 있다. 판단해 보려는 고민이 거듭될수록 대체 불가능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보고-또-보고'를 거치며 서식과 문구는 죄다 바뀔 순 있어도 그 고민의 산물인 화두는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초안 작성자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