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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an 14. 2021

자식을 외면한 부모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고

 정인이 사건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학대로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가정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다.


 지금껏 우리는 가정에서 행해지는 폭력을 훈육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해왔다. 부모가 매를 드는 것은 자식을 위한 일이니 타인은 방관자로 남아있으라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감각이 무뎌질 정도가 되었다. 안타깝다는 말로 한탄하기엔 인정(人情)이 용납할 수 없다.


 정인이 사건을 보다 전에 읽었던 <위저드 베이커리>를 떠올렸다. 현실의 어둠을 접하다 소설의 어둠을 대하니 그 무게가 깃털처럼 가볍다. 소설이 현실 같고 현실이 소설 같은 세상이다. 주객이 전도된 카오스 세상인가.


 처음 제목을 보고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더랬다.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를 닫았다. 아이들에게 권하기가 힘들었다. 날마다 바라보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 더욱 그랬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혼란마저 느꼈다. 소설 속 아버지는 부도덕함의 극치였다. 여자와의 문제로 자신의 아내를 자살하게 만들었고, 재혼한 여자의 딸까지 성폭행했다. 거기다 그 죄를 자신의 아들에게 뒤집어씌우는 파렴치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라기엔 너무도 절망적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며 읽었다. 사건의 시작이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다시 읽게 되었을 땐 시선이 주인공과 베이커리 점장에게 넘어가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부정의 시선이 긍정으로 이동한 것이다. 애써 그런 부분을 찾아내어 생각을 이동시켰는지 모를 일이지만.


 엄마가 죽고 아빠가 재혼을 했을 때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아픔을 잊게 만들어 줄 평범한 가정을 꿈꿨을지 모른다. 뭐 그리 대단한 요구 조건이 아니었기에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그 일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모범적인 가정을 꿈꾼 배 선생(새엄마) 또한 아버지의 무관심송곳처럼 날카로워졌다.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주인공은 위저드 베이커리의 단골손님이  수밖에 없었다. 배 선생의 외면으로 자신의 식사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 다. 동생 무희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의심의 눈초리는 돌고 돌아 주인공에게로 향한다. 아무리 부인하고 소리쳐도 배 선생은 주인공을 믿지 않는다. 경찰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곳이 위저드 베이커리. 제목처럼 마법사가 운영하는 빵집이다.


 주인공은 단골손님이라는 특혜를 적용받아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파랑새로 변하는 알바생과 마법사인 점장이 있는 곳에서. 알바생인 파랑새는 친절했지만 점장인 마법사는 냉정했다. 주인공과 점장은 말만 하지 않으면 정상인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선 서로 닮았다. 한데 주인공은 말을 하면 말더듬이가 되고 점장은 독설가가 되었다. 심지어 점장은 몽마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에게 "..... 낄 만한 데 껴. 누가 너더러 그 따위 짓을 하랬냐."라는 말을 할 정도로 독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제품들은 마법사의 작품답게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저주하고 싶을 때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을 때 베이커리의 제품을 주문했다. 주문의 효과는 탁월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효과에 놀란 사람들은 후에 발생한 일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베이커리에 떠넘긴 것이다. 베이커리의 제품을 먹은 학생이 죽게 되면서 베이커리가 수사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집에 돌아온 그날, 그 순간 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가 동생 무희에게 한 행동을 목격하고 만다.


 이 소설은 결론이 두 개로 나뉘어 있다. 집으로 오기 전 점장이 주인공에게 준 타임 리와인더 쿠키(시간을 자기가 원하는 때로 돌릴 수 있는 쿠기)를 먹은 경우와 먹지 않은 경우. 둘의 경우 모두 결론엔 큰 차이가 없다. 타임 리와인더 쿠기를 먹어 아버지가 재혼하지 못하도록 막은 경우나 쿠키를 먹지 못해 배 선생과 재혼한 경우 모두에 아버지의 성폭행이 존재했으니까.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의 성폭행. 끔찍한 환경에 놓인 주인공에게 위저드 베이커리는 어떤 의미였을까? 타임 리와인더 쿠기를 먹고 기억이 지워졌을 때도 주인공은 빵집을 지날 때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그곳에서의 위안이 무의식 속에 각인된 것처럼.  선생의 방해로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먹지 못했을 때도 부두 인형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 부두 인형은 배 선생이 주인공을 저주하기 위해 주문한 것이었는데 점장은 속을 채우지 않음으로 제품의 효능을 없앴다. 주인공을 위한 점장의 마음이었다. 마법사가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점장의 마음을 읽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냉정함 속에 숨은 점장의 따스한 마음을 느끼면서.


 세상에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는 없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일로 주저앉고 싶을 때 몸을 받쳐주며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은 있다. 난 이 사람들을 현실 속에 존재하는 마법사로 생각한다. 정인이의 사건을 보며 분노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힘이 되는 점장과 같은 사람이 현실 속 마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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