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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an 07. 2021

퇴직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퇴직 후에는 안온한 삶만 남을까?

 "애미 너도 참~ 인정이 없다. 지금까지 일한 것으로도 부족해서 니 남편을 퇴직하고서까지 일을 시키려고 그러냐?"

 "어머니, 요즘 사람들 퇴직하고도 다 일해요. 누가 나이 60에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해요. 노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어요. 뭔가를 해야지"

 "그러니까 그 뭔가를 일로 하지 말고, 취미 생활로 하면서 즐기라고"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취미 생활을 하긴 하는데 취미 생활을 하면서 돈까지 벌면 더 좋으니 그런 취미 생활을 찾아보자는 거죠"

 "돈을 벌려고 하면 그게 어떻게 취미 생활이 되냐? 그건 그냥 일이지"

 "왜요? 취미로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어요"

 "아니, 두 분. 왜 이러세요?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왜 두 분이서 제 퇴직 후를 걱정해요. 저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전 퇴직하고도 잘 먹고 잘 살 테니 두 분은 걱정일랑 하덜 마세요. 그리고 당신, 퇴직 후에도 나보고 일을 하라고? 이 사람 완전 무서운 사람이네"



 난데없이 어머니와 나 사이에 남편의 퇴직을 두고 언쟁이 붙었다. 올해 퇴직하시는 큰 아주버님의 얘기를 하다 비롯된 일이다. 어머니께서는 마음속에 담고 계셨던 본심을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아들에 대한 배려에서였는지 남편에 대한 편애를 가득 담은 말을 하셨다. 그건 분명 편애였다. 편애가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고모부와 둘째 아주버님은 큰 아주버님보다 일찍 퇴직을 하셨고, 두 분은 지금까지도 일을 하고 계신다. 정년이 길어 다소 늦게 퇴직을 하시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큰 아주버님도 65세까지는 일을 하셨으니 남편 또한 5년 정도는 너끈히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거다. 한데 어머니께서는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나이 든 남편이나 부려먹으려는 악처쯤으로 여기고 계셨다. 다른 자식들이 퇴직 후에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당신의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인가. 남편의 퇴직이 눈앞인 상황에서 벌어진 언쟁이었다면 얼굴을 붉힐 뻔한 일이다. 아직은 먼 날의 일이기에 우리의 대화가 농담처럼 오갔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분위기는 북극의 한파를 몰고 온 바깥 날씨만큼이나 냉랭해졌을 게 분명하다.


 나도 한 때는 남편이 퇴직을 하면 당연히 쉬어야 한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두 팔 벌려 그동안의 삶을 격려하고 노고를 치하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될 때까지는 일을 해야 했다. 난 그 마지노선을 남편의 나이 65세로 정했다. 그때까지 노동을 하고 그 대가를 받다 보면 남편은 연금을 받게 되니 그 후는 큰 변화 없이 안온한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동안은 남편이 퇴직을 하면 바로 연금을 받을 거란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의 생각도 바뀌었다. 퇴직 후 연금 수령까지의 공백을 어머니의 말씀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남편에게 일을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행히 남편이 퇴직 후에 일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지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남편의 말이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이 의외여서 놀라웠다. 은연중에도 어머니는 남편만을 생각하고 계셨다. 그 옆에서 난 남편에게 지울 의무를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말만이라도 남편을 위하는 척 생색을 낼 걸 그랬나 싶다. 쌈짓돈 버는 학원이지만 그 일이라도 열심히 해서 남편을 먹여 살리겠다고. 가능성이 없는 말에 풍선이라도 달아 띄울 걸.


 우리의 삶이 평면이었다면 앞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가다 꺾이고 다시 도는 일을 반복하는 큐브가 되었기에 생각을 수정하고 고뇌하는 것이다. 나이가 드니 꿈꾸던 노후가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장 좋은 것만을 외치는 이상은 현실 앞에서 균열을 일으킨다. 현실은 편안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나른함의 연속이 아니다. 스펙터클 어드벤처다. 그게 인생의 맛이라기엔 마음이 참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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