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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y 26. 2021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엄마

딸, 엄마가 간다

딸이 아프단 말엔 가슴이 철렁했다

 딸이 병원엘 다녀왔단다. 벌써 두 번째란다. 집에 있을 때는 감기만 걸려도 같이 갔던 곳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홀로 찾았다 하니 안쓰러움과 걱정이 밀려왔다. 혼자 사느라 못 먹어서 그런 건 아닌지, 정말 몸이 안 좋아 찾은 병원행이면 어떡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청춘인데 설마 큰 병이야 걸리겠어 싶다가도 감당하기 힘든 병명이라도 들으면 어쩌나 불안했다.


 초조했던 마음은 결과를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두 번 다 걱정할 만한 병은 아니어서 약만 먹으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딸이 성인이 되었지만 병원을 동행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 아픈 몸에 불안한 마음까지 덤으로 얹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음만이라도 안심시키고 싶었던 거다.


 혼자 병원을 찾았을 때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어 물었다. "많이 놀랐지? 무섭지는 않았어?" "뭐,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크하게 대답했지만 결과를 듣기까지 딸의 마음도 내 마음 못지않게 불안했을 것이다.


 딸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급해졌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용돈을 보내 먹고 싶은 걸 맘껏 사 먹으라고 할까 하다 직접 얼굴을 보고 오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다행히 올해 5월은 토요일이 5주여서 1주의 수업을 빼도 되는 상황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출발하면 이틀 정도는 딸과 지내다 올 수 있다. 간 김에 청소도 해주고 못다 한 얘기도 나누고 오면 좋을 것이다. 걱정으로 나서려는 길 위에 딸과 보낼 시간들을 올려놓으니 소풍 앞둔 아이처럼 가슴이 설렜다. 걱정에서 시작한 일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모처럼 나서는 길이니 딸을 위해 뭐라도 장만해야 했다. 딸을 떠올렸다. 익은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니 새 김치를 담아야 했고, 고기도 좀 먹여야 하니 고기반찬도 만들어야 했다.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진 딸이 예상외로 좋아하는 음식 양파장아찌는 일찌감치 만들어 놨으니 역시 챙겨야 한다.


 양파장아찌,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돋는 음식이다. 이런 게 바로 누군가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음식인 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남편은 아이들과 노는 걸 좋아했다. 아들의 몸을 밀가루 반죽하듯 주물러 피자를 만든다고 히면 아들은 웃음을 참으며 뻣뻣하게 누워있었다. 자신의 몸이 오븐에서 구워지고 손바닥을 칼처럼 세워 자르기라도 하면 깔깔대며 좋아라 했다(동화책을 읽고 따라한 행동이다). 딸은 어떠했던가? 입맛이 까다로운 딸은 양파장아찌를 여덟 조각으로 잘라 통통배 모양으로 만든 후 '통통배가 입속으로 들어갑니다'하면 입을 크게 벌려 그것들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그게 맛있어서 먹은 것인지 단순히 놀이가 재밌어 먹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먹은 음식이 입맛에 맞았던지 지금까지도 즐겨 먹고 있다. 물론 고약한 입맛 탓에 다른 장아찌는 쳐다도 안 본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준비한 음식들을 팩에 담아 테이프로 꽁꽁 밀봉하고는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은 후 딸을 향해 떠났다. 딸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역에 도착할 즈음에 나의 도착 시간을 맞췄다. 역에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 딸은 아직 도착해 있지 않았다. 늦은 시간의 역은 썰렁했다.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몇몇의 사람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이따금 기차가 도착할 때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들은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고 그 자리엔 또 다른 쓸쓸함이 남았다.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딸을 찾는 인간 cctv는 입구가 되는 곳이면 모두 다 찍어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털털한 걸음거리의 딸이 나타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용산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 한다. 더군다나 그날은 딸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날이기도 해서 학생들에게 인사까지 하고 오느라 더 늦어졌다고 했다. 더 이상 입시 학원에서의 아르바이트는 없다고 했다. 다만 와플은 좀 더 굽겠단다. 참 열심히 사는 딸이다.

딸은 스스로를 열심히 사는 딸이라고 말하고 있다.


 집에 와 딸과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몸은 건강했다. 안타깝게도 나처럼 빈혈이 있어 약을 먹는 거 빼고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턱이 부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멀쩡했다. 무리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한다. 주중 이틀간 6시부터 10시까지 학원 알바를 했는데 그것이 끝났으니 주말에 와플 굽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그 일은 이미 익숙해졌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누굴 닮아 이렇게 생활력이 강한 것인지. 나는 아닌 거 같다. 남편의 부지런함이 분명하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모든 걸 책임져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딸은 용돈만이라도 자기 손으로 벌고 싶다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남편에게 용돈을 줄여달라는 말까지 했다. 내년부터는 공부하느라 이마저도 못하게 될 테니 올해는 더 열심히 하고 싶단다. 코로나로 학교엘 가지 못해 방에만 갇혀 있었는데 아르바이트가 그나마 숨통을 트여주었단다. 일석이조의 행운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다음 날, 딸이 아르바이트를 나가 있는 동안 난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방안을 치우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우리 집에서 이렇듯 꼼꼼하게 청소한 적이 있나 싶게 남의 집을 열심히도 청소했다. 여름 전에 다시 못 올 수도 있으니 에어컨 필터도 뽑아 청소했다. 집에서라면 당연히 남편이 하던 일들인데 딸을 위한 일이다 생각하니 힘든 줄도 모르고 하게 되었다. 몇 시간을 투자한 덕에 방안이 깔끔해졌다. 딸을 찾은 보람을 느꼈다. 뭔가를 해주고 간다는 뿌듯함에서다. 부모 마음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어 대견함에 스스로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딸이 집에 와 자기가 청소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을 했을 땐 서운함에 곳곳에 있던 먼지들을 지적하며 폭풍 잔소리를 했다. 알았다며 고생했다는 딸의 말을 듣고서야 오붓하게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딸과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와 아들 방을 보는데 정돈된 딸의 방이 떠올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쏟아냈다.


 "아들, 책상이 이게 뭐야. 좀 치우고 살아. 못 치울 것 같으면 엄마가 치우고 갈게. 엄마가 치워줘?"


 "아니요 어머니, 괜찮습니다. 제가 바로 치우겠습니다. 그만 나가 주시지요"

그러더니 다정스럽게 나의 손을 잡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어머니께서 누나 집에 조금만 더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지금쯤 누나는 '자유 만세'를 부르고 있겠군요"


 "뭐야. 너 지금 엄마의 사랑을 뭘로 보고"

 "어머니, 가끔은 무관심도 사랑이 됩니다. 저에 대한 사랑은 잠시 접어두시고 자, 이제 그만 나가주시지요"


 아들의 말에 내가 집에 왔음을 실감했다. 소나기 같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짧았지만 충분히 젖어든 시간이었다. 늘 마음으로만 걱정하고 있었는데 숙제 하나를 해결하고 온 기분이다. 엄마는 자식의 문제 앞에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어떤 것도 그것을 우선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몰랐던 일이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했는데 자식 앞에서 엄마는 늘 약한 존재였다.

집에 핀 천리향이다. 이 꽃을 지날 때는 발길을 멈추게 된다. 향기로움으로. 나도 딸에게 천리향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향기로 남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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