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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Sep 30. 2022

구기자 향에 물드는 가을

피부에 닿는 계절의 온도가 차갑다. 그 차가움 앞에서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높아진 하늘은 바람에 묵은 먼지를 털어낸 듯 맑디 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 청명하다는 이름이 어울리는 하늘을 향해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기도를 한다. 모든 것이 결실을 맺는 계절에 삶의 공허 같은 건 느끼지 않게 해 달라고. 마음이 외로워지는 감정의 형벌 따위는 내리지 말아 달라고. 여름의 정열을 열망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을의 쓸쓸함을 동경한 것 또한 아니니 이 계절이 쓸쓸하지 않게 해 달라고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다.


쌀쌀해진 날씨에 이유 없이 하늘을 우러른 것처럼 이 계절에는 유독 많은 것에 눈길이 간다. 여름날 더위를 신경 쓰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이다. 말없이 세상을 감싸고 도는 단정하고 시원한 바람이나, 길가에 뭉텅이로 늘어서 작은 바람 한 자락에도 한들거리는 여리디 여린 코스모스, 도로변에서 힘을 잃은 듯 옅어져 가는 여름날의 초록빛 그리고 마음을 후리는 찐한 시구 하나에 눈길이 간다. 그렇게 눈길이 머무는 곳에서는 말없이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 따뜻한 찻잔을 살포시 감싸 쥐고 싶다.


구기자를 볶다 생각했다. 가을은 구수한 향을 담은 계절이라고. 여름에 구기자를 볶을 때는 인덕션의 열기에 눌려 그 향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이 계절에는 구기자의 진한 향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커피 향보다 구수한 구기자의 향을 느끼고 있다. 향기는 자신의 진함을 주체하지 못해 주변을 물들인다. 옷이며 피부에도 침투한다. 집안 전체를 물들일 기세로 전진한다. 구기자의 향이 온 집안을 점령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좋은 향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주변을 선한 눈으로 바라보게도 해준다. 구기자 향 같은 사람이 되는 건 멋진 일일 것 같다. 다른 이를 향기로 물들이고 마음까지 너그럽게 만들어주는.


뜨거운 구기자차를 마신다. 커피의 쌉쌀함과 고소함은 없다. 향에 비해 맛은 밍밍하다. 그럼에도 몸이 반응을 한다. 좋다. 좋다고 연신 말한다. 밍밍해도 미소를 주고 건강을 주니 좋다. 가을에 마시는 뜨끈한 구기자 향에 물들 수 있어 이 가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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