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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Sep 29. 2019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소년에게 여름날의 이팝나무 꽃을 보여주고 싶어.

         


나는 욕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남을 부러워하는 일이 별로 없다.

남을 부러워하지 않으니, 

세상 사는 것이 그리 힘들지도 불만스럽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나도 부러워하는 대상이 있으니 나와 같은 시기를 살며,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룬 사람들이 바로 그 부러움의 대상이다.


요즘 내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 아니 가장 부러워한 분.

바로 우리나라 유일의 맨 부커상 수상자 한강 작가이다.


감히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녀와 내가 같은 도시에서, 같은 시기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듯 어쭙잖게 객기를 부려 본다는 걸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혼자 부러워하고, 혼자 초라해하는 이 어이없는 행동의 반복. 착각은 자유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게

확실하다.


내 부러움의 대상 그녀에게 너무도 감사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을 남겨주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채식주의자'로 상을 받았지만

난 이 작품 '소년이 온다'를 써준 것이 하염없이 감사하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두 작품은 모두 폭력에 대해 경고를 한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단체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개인이나 단체 그 누구에게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공포며 고통이다.


5.18은 현재 진행형이니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기록으로 남지 않을 것이기에...


'소년이 온다'는 5.18 당시 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중학생 동호, 고등학생 은숙, 미싱사 선주 그리고 혼이 된 동호 친구 정대, 대학생 진수를 한 사람씩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한다.


맨 처음  어린 새에서 죽은 친구 정대를 찾아 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동호,

그는 여린 어깨에 총을 메고 도청에 남지만 총을 쏘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군인의 진압 앞에서도 총을 쏘지 않아 죽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


은숙은 동호를 두고 도청에서 나오던 날 자신의 영혼은 부서졌다고 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은숙은 살아있었어도 도청에서의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평범한 볼펜이었습니다. 모나미 검정 볼펜"

진수는 조사실에서 고문을 당한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으로

손가락 뼈가 하얗게 드러나게...


그를 고문했던 이들은 말한다.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 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움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이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진수는 짐승들을 만들려는 그 공간 안에서 끝까지 인간으로 살아남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치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음 앞에 스스로 놓아버린다.


그리고 선주는 입을 다물었다.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그녀는 그 기억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일을 진술하며 그날의 공포를 되살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있는 자들은 결코 살아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날의 일을 자랑스럽게 떠벌릴 수도 없었고, 무섭고 두려웠다며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숨죽이며 살아야했다. 5.18은 그렇게 그들의 삶을 잔인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자료를 열심히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동호 형의 부탁대로

동호를 모독할 수 없도록 

제대로 잘 써 주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동호의 바람대로 작가는 소년을 데리고 우리에게 왔다.

80년의 여름을 보지 못한 그 여린 소년을.

더 밝게 빛나는, 이팝나무 하얀 꽃이 아름다운 이 여름 속으로.


5월이면 광주는 이팝나무가 지천에서 얼굴을 밝힌다. 가장 슬픈 날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기라도 하려는 듯.

이제 곧 가을도 가고 겨울이 올 것이다. 

올 해가 가지도 않았는데 이 책을 소개하니 벌써 이팝나무 꽃의 그 환한 웃음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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