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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연 Jul 01. 2024

가끔 운동이 무서운 날이 있다.

달리기, 아직은 갈길이 멀었나 보다.


나는 현재 런텐츠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달리기를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신청해 진행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오래 달리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받아 뛰는 것은 중학교 2학년 트라이애슬론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나의 달리기 여정은 '순항 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런텐츠 시작 직전 나간 서울신문하프마라톤 10k를 내 멋대로 2-3개월 준비해서 46분 20초로 마무리했다. 하드웨어가 나름 괜찮고, 중학생 때 쌓아놓은 심폐능력 재산 때문인지 준비 기간 대비 기록이 좋다고 주변에서 놀랄 정도다. 런텐츠를 시작하고 저강도 구간에서는 전혀 힘을 못 쓴다는 것을 알았지만 선생님의 프로그램과 리딩 덕에 많이 발전하고 있다. 1주일이 흐를 때마다 좋아지고 있는 기록들을 보며 처음으로 달리기도 눈에 띄게 늘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프로그램을 짜는 입장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될 정도로 푹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주 목요일, 나는 갑자기 달리기가 무서워졌다.


기존 계획 상 수요일 저녁 달리기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가족 식사 중 무르익은 분위기 때문에 맥주를 마시게 되었고 그렇게 목요일 아침으로 나의 달리기를 옮겼다. 주량껏 마신 것이 아니라 가볍게 한 잔 한 것이기에 다음날 오전 컨디션엔 큰 무리가 없었다. 쥐가 날 포인트도 없었고 다리가 무겁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목요일 오전 달리기의 과제는 4분 20초 - 30초/km 페이스로 6km 달리기. 예상된 심박수는 160대였기에 최대강도 90%에 못 미치는 런을 예상하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5주 간의 데이터가 쌓였기 때문에 '이 정도 심박이면 이 정도 느낌이겠지.'를 가지고 달렸다. 주법도 좋아지고 날씨도 너무 덥지 않은 이른 오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예상된 페이스보다 5-10초 정도 계속 빠르게 달리게 되었다. '가볍다. 좋다.'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코로 호흡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내쉬는 숨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까지는 예상된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코로 들이마시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무너졌다. 자꾸 시계를 쳐다보며 차오르는 심박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무서워졌다. 평균 160대가 예상되어 있던 내 심박수는 3km 반환점을 돌기 전부터 175 bpm를 웃돌았다. '이러다 큰일 나는 것은 아니겠지?' 숨이 더 차올랐고 계속 내 시선은 시계로 갔다. 


3km 반환점을 돌고 300m 정도 뛰었을 때였을까? 내 호흡 템포는 망가졌고 내 마음은 이미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멈췄다. 걷기로 했다. 괜찮다며 내게 계속 자기 위로를 했다. 맛있는 커피를 들어도 보고 풍경을 보기도 하며 최대한 평화로운 척을 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실패가 아니라 시도예요. 경험이에요.' 회원님들께 하는 말을 내게도 보내보았지만 영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두 번째 숙제가 남아있었지만 왠지 이번 주 그 숙제를 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이어졌다.



일요일이 되었다. 오늘은 숙제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밤에 꼭 달리기를 하리라!' 하지만 오전부터 클래스 들으러 갔다가 파워리프팅 훈련했다가 친구를 만나는 하루 스케줄에 점점 달리기를 하고 싶은 열망이 줄어들었다. 맥주도 마시고 싶었고 그냥 드러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요일 저녁에 같이 뛸래?"라고 여자친구에게 말해뒀기에 함께 결국 밤에 한강으로 향했다. 서로의 페이스로 뛰기로 약속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숙제보다 천천히 뛰어야지!'라고 생각했던 마음도 막상 뛰기 시작하니 사라졌다. 그래도 힘들었다. 배가 다 안 꺼진 탓인지 초반부에 호흡이 조금 흔들렸다. 1km 나아갈 때마다 또 겁이 났다. '오늘도 실패하면 어떡하지?' 뭉게뭉게 피어나는 마음. 오늘은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되뇌었다. '오늘은 성공할 거야. 오늘은 끝까지 뛰자.' 결국 끝을 봤다. 약간의 오버페이스라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괜찮다. 나는 무서움을 떨쳐내고 싶었다. 달리기를 내가 싫어하는 운동의 분류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체대입시 시절 수영 기록 재는 것이 무서워서 결국 입시까지 망쳤던 기억까지 소환되었던 며칠. 겁쟁이인 나는 트레이너이지만 가끔은 운동이 무서운 날이 있다. 이 감각 또한 소중하게 가져가야지. 그리고 힘들 때는 이번처럼 주변의 도움을 받아, 내 힘을 믿고 이겨내 봐야지. 그렇게 꾸준하게 해 봐야지. 고통스럽지만 돌아보면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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