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는 이유
나는 일기를 쓰는 걸 좋아한다. 일이 많을 때도, 일이 없어 공백기를 가질 때도 쓰지만 특히 마음이 많이 힘들거나 우울할 때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일기들을 꺼내 읽는 것도 좋다. 그 안에는 그때는 너무 아팠지만 지금은 조금 괜찮아진 것들이 있고,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일기를 읽다 보면 내 안에 아직 다 크지 못한 아이 같은 마음도 보이고, 그때는 몰랐던 나의 의외로 단단한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이라 해도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기를 쓰고 나면, 그 순간의 나를 가장 솔직하게 끄집어내 놓은 기록이 남는다.
오늘은 4년 전, 오늘 쓴 일기를 다시 읽었다. 졸업을 막 하고, 졸업비자를 받은 뒤 앞으로의 나에게 써 내려간 글이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이렇게 불렀다.
승민아, 내 안의 승민아,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로봇 같아 보이는 승민아. 나는 마음이 여리지.. 상처받기 전에 내가 숨어버리지. 그게 나의 방어막이었지. 그래도 괜찮아, 올해 만나 사람들 중 몇몇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지만, 어차피 시간 지나가면 스쳐 지나갈 인연들이야. 그런 것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자. 말했잖아, 나는 이미 나의 좋은 친구이고, 좋은 어른이고, 내가 나의 창과 방패가 되어줄게. 남한테 의지하기보다 나에게 의지하자, 문들 1년 뒤면 나는 뭐 하고 있을까, 2년 뒤, 5년 뒤엔 뭐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나는 나의 앞날이 기대가 되고, 잘 자리 잡고, 멋진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있을 거야~ 내가 목표했던 것들 꿈꾸던 것들이 현실로 되게 실현시킬 거야. 그리고 보여줄 거야 내가 이런 사람이란 것을.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댔어. 1년 뒤에는 영화의 크레딧에 내 이름이 명단에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때의 기분은 어떨까? 뿌듯하고 행복하겠다. 2년 뒤엔 스칼렛요한슨의 영화나 드라마에 참여하는 vfx 아티스트가 되길 원하고, 2년 동안 졸업비자로 런던에서 vfx 공부를 계속 열심히하고 내 실력을 키울 거야.
4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그때 바랐던 대로 한 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영화 '쥬라기 공원: 새로운 시작'의 크레딧에 내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그 일기를 다시 읽으며 느낀 건, 20대의 나는 패기도 넘쳤고, 에너지도 많았고, 한 번 넘어져도 금방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30대가 된 나는 그때보다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업계의 현실을 알아버려서일까, 환상이 사라져서일까.
그래도 후회는 없다. 후회 없이 부딪히고, 도전하고, 경험했던 20대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올해도, 나는 아주 조금의 기대를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