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과 반응 사이

by 프로스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고.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그가 말하는 공간은 자극과 반응의 완충 지대이며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자유와 힘은 나에게 있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독일에 본사를 둔 회사는 다른 유럽 회사에 인수되었고 그 단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인수하는 회사에서 갑질은 예상했지만 나의 미국 지사 마케팅 리더 포지션이 위험한 지경에 이루게 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 번의 짧은 미팅으로 나의 능력에 대해 태클이 들어왔고 내가 미국 담당 마케팅 리더로서 적합한지 모르겠으니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들어왔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함부로 평가받는 것만큼 직장인에게 자존심이 상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이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가를 며칠을 두고 민했다.

더럽고 치사하니 이력서 업데이트해서 다른 회사에 들어가야 하나? 어차피 이렇게 불신으로 시작되는 일은 잘 될 일이 없을 테니 그냥 그만두자. 내가 아시안이라서 싫어하는 거 아니야? 혹시 그들이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어서 나를 밀어내려고 하는 걸까?


며칠 동안 온갖 생각들과 상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화는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3일 정도 시간을 보낸 후에 나의 반응을 결정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하고 자기 맘대로 평가하는지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결심하였다. 마케팅 기획안을 써서 발표하기로 결심하였고 이건 오히려 나에게 좋은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 회사에 대해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이고 난 멋지게 기획안을 작성해서 나의 실력을 뽐낼 수 있으니까.


준비를 하는 며칠 동안 난 요즘 유행하는 노래 환불 원정대의 “Don’t’ touch me”를 무한 반복 들었다. 내 마음속으로 칼을 갈면서 약해지는 마음을 잡아야 했다. 너희들 사람 잘못 건드렸어.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냐? 너희들 선 심하게 넘은 거야.


예상 질문을 준비하고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연습하고 준비했다. 그동안 많은 미팅과 프레젠테이션을 했지만 이번이 가장 긴장되고 나의 신경은 누가 머리카락을 건드려도 온몸이 쭈뼜할것 같았다. 발표 5분 전에는 호흡을 가다듬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 미팅에 들어갔다. “ 쇼타임”.


난 바로 오프닝을 돌려서 말하지 않고 미국식으로 바로 직선적으로 시작했다. “ 여러분들의 저에 대한 피드백으로 인해 내가 마케팅 플랜을 발표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라고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확실히 집고 넘어가고자 했다. 애매한 접근이 아닌 직선적인 대화가 미국 사람들에게는 더 잘 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짝 유머를 넣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난 준비한 대로 자신 있는 목소리로 발표를 진행했고 중간중간 들어오는 질문에도 문제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로 질문한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한 시간 가량의 나의 발표는 무사히 끝났고 나의 발표를 들은 세명의 상대 회사 부사장들로부터 자세한 자료와 발표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끝으로 “ 난 내가 그동안의 경력과 전문성으로 나에게 맡겨진 일을 잘할 자신이 있다. 그리고 결국 같이 일을 해 봐야 저를 제대로 알게 되지 않을까요?”라는 그들의 잘못된 평가에 대한 나의 도전의 질문으로 나의 프레젠 테이션과 미팅을 끝내었다.


프레젠 테이션을 마치고 다음날 마케팅 부사장이 세일즈 부사장들의 피드백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나의 Fighting sprit에 그들이 크게 감동했고 내가 미국 본사 마케팅 리더의 자격이 있다고 다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그리고 일주일 후에 내가 정식으로 미국 마케팅 리더로 선정이 되었다.


나는 미국에서 일하면서 항상 따라다니는 나의 컴플랙스가 있다. 나이 서른에 미국 실리콘 벨리에 와서 토종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제일 잘해야 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일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다. 생각해 보면 삼성이나 다른 한국 회사들은 한국인을 두고 외국인을 완벽한 한국어를 요하고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경험해야 할 수 있는 마케팅 홍보일을 맡기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채용한 미국 회사가 정말 오픈 마인드인 것일까? 내가 그 정도로 소름 끼치게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난 다른 사람들보다 두배 세배의 노력을 했고 나의 커리어를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다져갔다. 미국 사람보다 느렸지만 그래도 지난 20년간 미국 본사에 있는 다국적 회사들의 마케팅 간부 자리까지 올라오기까지 피 땀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내가 속한 업계에서는 나의 마케팅 명성은 세워져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자부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번의 도전은 갑자기 신인 배우로 다시 돌아가 오디션을 봐야 하는 배우 처지가 된 것이라 나의 자존심은 정말 상할 때로 상한 것이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에 반응하는 것은 내 몫이다. 외부의 부정적인 자극에 다른 회사로 옮기려는 결정을 하지 않은 이유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되었고 그러면 나 스스로의 자존심이 더 상할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난 이 도 전을 그들과 정면으로 대응하기로 결심했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결국 이건 나의 성장의 기회이고 나의 실력을 미리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이다. 2021년부터 두 회사는 정식으로 같이 일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날 알아가면서 그들의 한말을 후회하고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할 것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완충 지대에서 내가 한 선택은 나의 자긍심을 지키며 성장하게 했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동안에 20년 동안 미국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


몇 번이나 때려치우고 한국에 가고 싶었던 나의 좌절과 슬픔.

이번에도 잘 남겼다.


이번 주말은 밀린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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